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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무지개를 보다_170726, среда 쓰레다

이삭거름으로 비료 다섯 포대를 뿌렸다. 비료살포기를 이용하자는 아버지의 간곡한 당부에도 기계를 빌리기가 싫어서 그냥 손으로 뿌린다. 그런데, 도구 하나가 추가되었다. 예전에 기계가 없던 시절에 쓰던 방법이라 한다. 1.5리터 플라스틱 병을 잘라서 비료를 퍼 뿌리면 30% 이상 먼 거리까지 뿌려진다. 손으로 쥐고 뿌리면 마찰력 때문에 던져지는게 방해를 받는데, 병을 이용하면 마찰력이 낮아지고 원심력이 커져서 그렇다. 지난 봄에 새끼치기 거름을 할 때 보다 훨씬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다섯 포대를 뿌리는데 1시간 20분 정도.


비료를 뿌리면서 보니까 제법 벼들이 컸다. 물달개비와 가막살이가 계속 자라고 있지만 그들보다 벼가 더 많다. 평년작 보다 10% 정도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렁이가 몰살한 것 치고는 괜찮은 결과를 기대한다. 아니다. 섣부른 예단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봄에, 여름을 예측해 보니, 일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서 무엇을 하고 놀까 고민했었다. 왠걸, 야생오리들의 습격으로 우렁이가 전멸하면서 두 달 동안 논에 묶여 버리고 말았다. 그래, 평년작의 절반만 건져도 좋겠다. 주는데로 받아 먹는다.


빌린 밭의 산소 일차 벌초를 했다. 지금 벌초를 해 두지 않으면 땅벌들이 집을 지어서 벌초 하다가 벌에 쏘이는 사고를 당하기 쉽다. 세 시간 정도 예상을 했는데, 두 시간 만에 끝냈다. 상석 주변을 낫으로 베어 정리한 다음에 손쉬운 평지부터 일머리를 잡았더니 힘도 덜 들고 시간도 절약되었다. 벌초 전에 술 한 잔 올리면서 사고 없이 끝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 드렸더니 들어 주신 모양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벌초가 일찍 끝나고 날도 흐려서 일할 만했다. 산소밭 주변의 풀을 베기 시작했다. 일은 단순한데, 잡스럽게 자란 풀들이 쉽게 베어지지 않는다. 한 시간을 넘어서서 간신히 일을 끝냈다.



버린 줄 알았던 농약병들은 어머니께서 어딘가에 감춰 두셨다고 한다. 고추들이 터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칼슘제를 뿌려야 한다. 내 생각은 칼슘제만 뿌릴 계획이었는데, 탄저병 농약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어쩔 수 없이 농약을 뿌린다. 농약을 뿌리는데, 농약 안개 속에서 무지개가 피어난다. 그 작은 무지개의 색이 너무 영롱해서 농약이 아니라 보석을 뿌리는 것같다. 고추들은 생존을 위한 귀한 것들이니 보석처럼 소중하게 여겨질 지 몰라도 무거운 농약통을 메고, 마스크와 선글라스, 장갑으로 중무장한 나에게는 그 아름다운 무지개가 두렵기도 하다. 다만, 위로는 된다.


장마가 끝나고 나니, 공기 속에 습기가 빠지면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어제 저녁부터 바람이 서늘한 기운을 띄더니 오늘은 오전 열 시 현재,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바람이 시원하다. 등물을 끼얹는 듯한 자연의 격려가 지난 두 달 동안의 생고생을 위로해 준다. 그래, 이 맛이야.


그리고 무일농원을 둘러싼 야산과 하늘과 논과 밭이 하얀 구름과 높푸른 하늘로 아름다워졌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