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러시아여행_바이칼에서 블라디보스톡

그녀들은 시베리아의 폭염을 어떻게 견뎌냈을까_이르쿠츠크의 강행군_170729, суббота 수보따

두세 번을 깨면서 잤으니 푹 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잤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에 몸을 일으켰다. 서늘한 기운이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물을 끓이고 맥심 커피를 탔다. 막심(Максим) 애플리케이션은 잘 작동한다고 한다. 지나친 낙관도 경계해야 한다. 첫날의 혼돈을 잘 극복하고, 오늘 아침은 홀로 고요히 맞는다. 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동안 밖에서는 건설 공사장의 소음이 들린다. 아파트 같은 건물이 계속 지어지고 있다. 8시가 다 되어 가도록 가족들은 일어나지 않는데, 홀로 깨어 아침을 즐긴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집들은 낮고 깔끔해서 그런대로 여행 온 느낌이다. 높은 건물만 아니라면 크라이스트처치와 비슷하다.

 

난처럼 생긴 빵은 아낌없이 설탕을 넣었는데도 짜다. 딸기잼이 듬뿍 들어간 크로아상이 먹기에는 더 좋았다. 커피와 홍차, 짜디 짠 빵으로 아침을 때웠더니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벌써 덥다. 시베리아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어제는 지난 장마처럼 축축 젖더니 오늘은 후끈 달아오른다. 덕분에 하늘은 파랗게 예쁘다. 그것으로 되었다.

 

 

 

 

 

 

 

 

 

 

 

 

먼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복합 쇼핑몰 "마드늬 끄바르딸(модный квартал)"에 가서 심카드를 꼽기로 했다. 숙소는 15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지만 그 주변은 100년도 더 되었을 오래된 통나무집들이 즐비하다. 특히 뿌옇게 먼지가 낀 유리가 살아있는 창문들은 창문 턱에 삐딱하게 걸려 있어서 저것들이 제 구실을 할까 싶다. 어떤 집들은 화재로 거대한 기둥과 대들보만 남겨놓고 다 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황토 빛깔의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진 현대식 주택들과 깔끔한 정원을 갖춘 집들도 제법 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데도, 보행자 도로를 양산도 없이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 버프를 썼다.

 

열 시부터 영업 시작이라는데, 5분이나 빨리 갔다. 그가 넥타이를 매며 열심히 출근 준비를 한다. 550py에 2주간 14기가에 통화는 350분(국제전화는 다르고) 가능하다고 한다. 저렴하다. 핫스폿도 돼서 심카드 하나로 넷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겠다. 신발 가게로 갔다. 사이즈는 290(34)이 있어서 충분하고, 디자인이 다양하다. 더욱 까다롭게 고른다. 우주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대 여섯 켤레의 신발을 보여주며 애를 썼던 직원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신발을 사려고 4개월을 기다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슬라타(слата)에 들렸다. 피스타치오 맛 요구르트는 없었지만 물 вода 과 음료수, 커다란 딸기맛 마쉬멜로우를 샀다. 분수 앞에서 기대를 걸고 마쉬멜로우를 하나씩 꺼내 물었다. 아, 너무 달다. 우리가 원하던 그 맛이 아니다. 간신히 두 개를 처리할 수 있었다. 여행 내내 먹어야 할 모양이다. 나중에 예브게니로부터 들은 말로는 달걀의 흰자위를 모아서 만든 단백질 과자라고 한다. 다 좋은데,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잘 정돈된 130 끄바르딸(스또 뜨리스찌 끄바르딸)은 젊은 디자인의 밝고 경쾌한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길을 주욱 걸으면 아마도 바브르 상이 나타날 것이다. 언덕이 제법 있어서 저 위쪽으로 5개 층 높이에도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햇살에 얼굴이 녹을 것 같다. 우산과 양산을 펴 들고 움직여야 한다. 최고 온도인 31도를 향해 부지런히 고지를 올라가는 모양이다.

 

바브르상 건너편에 교회가 있다. 문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들은 술에 취한 듯하다. 특별한 위험은 없다. 교회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양철지붕을 갖고 있다. 정원에 나무가 무성해서 전체 전경을 담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린라인 투어의 마지막인 30번 교회다. 작은 정원에 예쁜 꽃들을 정성스레 가꿔 놓아 여행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준다. 교회 안에서는 마침 아기 두 명에 대한 유아세례 의식이 있다. 가족들이 십 여 명 모여서 사제의 지휘 아래 열심히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 잠시 뒤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본다. 작은 홀이 소박하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볕을 받아 아름답게 드러나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여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그린 라인을 거꾸로 따라 걷는다. 러시아의 백반 정식이라는 "비즈니스 런치" 사진이 걸려 있는데 깔끔하고 맛있어 보인다. 12시부터인데, 11시 반이다. 또 있겠지. 배는 고프다. '피자 도미노'를 지나 레닌 동상까지 불타는 사막을 걷는다. 역광 때문에 러시아를 만든 레닌의 ленин 표정은 읽을 수가 없고, 그의 레인코트 뒷자락이 검게 늘어진 것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그의 뒷모습 너머로 파란 하늘이 지나간다. 피자 도미노로 들어가는 '루시스키 русский'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레닌 동상 공원 앞에 앉아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쉰 다음에 작은 공원  옆의 바 бар로 들어갔다. 지하 공간에 커다란 돌로 장식한 술집. 분명히 비즈니스 런차가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는데, 안된단다. 흠. 맥주 4잔을 시키고, 감자튀김과 토마토 치즈 샐러드를 주문했다. 시원하게 마셨다. 맥주로 허기는 면할 수 있었다. 햇살에 타버릴 위기에 처했던 온몸이 생기를 회복한다.

 

 

 

 

 

 

 

 

 

 

 

 

 

 

 

 

 

 

 

 

 

 

 

 

 

시베리아의 서늘한 기운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더위로 맥을 출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작은 공원을 둘러보고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레닌스트리트 카페로 가서 냉커피와 머핀을 맛보았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카페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대화하며 시원한 여름의 한 낮을 즐기고 있다. 막심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발콘스키 박물관으로 갔다. 

 

 

 

 

 

 

 

 

 

 

 

 

 

 

 

발콘스키의 집을 나와 뒤로 돌아가면 "지카브리스트(Декабрист)의 여인들을 위한 공원''이 있다. 누구처럼 힘든 남편을 만나서 삶과 뒷바라지를 모두 책임져야 했던 그녀들은 시베리아의 이 엄혹한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선풍기가 없고, 냉방기는 작아서 충분한 찬 공기를 쏘이려면 밤늦도록 기다려야 한다. 시베리아의 여인들을 생각한다.

 

걸어서 20분이면 이르쿠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잔 성당이 있다. 그녀들은 한 여름의 햇살을 양산 하나로 이겨내며 이 먼 길을 걸어 교회를 갔다. 짜르는 그들을 강제 노역에서 풀어주기는 했지만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다. 짜르와 발콘스키의 엄마는 서로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어차피 왕족이었으니  왈츠를 추며 함께 아름다운 처녀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짜르에 저항한 핵심 인물인 발콘스키는 사형에 처해져야 했으나 엄마의 힘으로 목숨을 구했다. 아내와 엄마가 없었으면 목숨과 생애와 이름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땡볕에서 트램을 기다려서 타고 첸트랄늬 릐녹(Центральный рынок 중앙시장)으로 갔다. 이렇게 정성 들여 준비한 발음도 러시아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된장. 시장은 덥고 사람은 많았다. 토요일 주말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아이스크림도 사고 - 한 컵에 세 스푼을 준다기에 한 컵에 한 스푼씩 세 개를 달라고 했다. 체리도 500g 샀다. 싱싱하지는 않지만 먹을만했다. 나 말고는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토마토 1kg과 오이 500g을 샀다. 저녁에 후회했다. 수박은 의외로 값이 비쌌다. 안 샀다.

 

일만 보를 걷고 집에서 두 시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이르쿠츠크 역으로 갔다. 막심을 부를 것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가로 논의가 분분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20분을 걸어서 20분 동안 버스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다. 구글이든 애플이든 정보가 맞지 않는다. '에따 로씨야 это россия'. 그나마 구글 지도에 트램 운행이 표시가 된다. 다시 길을 돌아 1번 트램이 운행되는 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몇 명 기다리고 있는데, 마르쉬루뜨카들이 계속 온다. 트램 철로는 두 개 차선을 건너야 하는데, 사람이 기다리는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멀리서 1번 트램이 다가 오자 사람들이 2개 차선을 가로질러 트램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무섭게 달리던 차들이 얌전한 안내견처럼 사람들 앞에 앉아 기다린다. 모두가 타고, 내리는 사람은 내려서 길을 건너고 나서야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개처럼 요란하게 짖어대며 낡은 몸뚱이들을 내달린다. 허 참,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이기는 하구나. 

 

간신히 트램 1번을 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3번 출입구는 지역 열차 매표소와 기차를 타는 플랫폼. 내가 계획했던 7월 31일 2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좌석(3등석) 슬류쟌카행 열차는 1번 출입구로 들어가서 장거리 열차 매표소에서 예약해야 한다. 다행히 사람은 없다. 우리는 3번 입구 앞 지역 열차  매표소에서 기차표를 구매하려고 자동 티켓 발매 기를 몇 번이나 두드렸지만 실패했다. 아예 되지 않은 일을 한 것이다. 기차 안내소에 물었더니 다시 나가서 1번 입구로 가라고 한다. 이곳은 기차 플랫폼까지만 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매표소는 플랫폼 바로 옆이지만 입구는 달랐던 것이다.

 

두 명의 아가씨가 창구를 지키고 있다. 7월 31일 열차표를 예매하려고 한다고 했다. 자신 있게 "뜨리스따 아진(31 Триста один)"을 외쳤다. 알았다고 한다. 여권을 달라고 해서 주고 표값(약 1,770py)을 지불했다. 표를 출력해서 받았는데, 8월 3일자 표다. 틀렸다. 천재가 7월 31일을 구글번역기로 돌려서 보여 주었더니 웃으면서 다시 출력해 준다. 왜 틀렸을까. 

 

기차역 앞에서 채식 전문식당 고빈다로 가는 방법을 의논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다가와서 어디를 찾느냐고 한국말로 묻는다. 식당을 찾는다고 했더니 저 위쪽으로 가면 식당이 있다고 알려준다. 한국 원주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고 한다. 정말 말을 잘한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뜨리스따 아진(Триста один)" 이라고 했더니 8월 3일 자 표를 주더라,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아, 31일은 뜨리쨔찌 아진(тридцать один)이에요. 뜨리쓰따 아진은 301이에요. 아, 맞다. 스또(сто)가 100이고 뜨리소뜨니(три сотни)는 300이다. 내가 틀렸구나. 아, 이럴 수가, 그렇게 열심히 숫자를 외웠는데, 결국 틀리고 말았다. 고맙다고 말하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면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보라고 한다. 여행자들이 러시아말을 알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안전한 여행을 하라고 축복해 주니 정말 고맙다.

 

 

 

 

 

 

 

 

 

그들이 가르쳐 준 레스토랑. 야외가 시원했는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 식사가 불가능한 상태이고 테이블도 없다. 할 수 없이 냉방이 시원찮은 실내에서 식사를 주문했다. 샤슬릭 두 개와 만두 네 개, 감자튀김, 레모네이드 두 병. 검색해 둔 고빈다가 있는데, 걷기를 그만두고 시원찮은 식당에 들어온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요리사가 나오신다. 머리가 하얀 여윈 할머니가 나오셨다. 돼지고기 샤슬릭은 고기가 속까지 익지 않았다. 맛이 부드럽고 좋았다. 모차렐라 치즈 같은 것이 덮인 치킨 요리도 부드럽고 고소했다. 그런데, 그리미가 먹지를 못한다. 두 고기 다 속까지 다 익은 것이 아니고 생살이 속에 그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셋 만 맛있게 먹었다. 만두는 기름이 흐르는 고기가 가득 들었다. 소금기도 강해서 그리미는 또 먹지를 못한다. 그래도 짜증을 내고 화해를 하고 났더니 훨씬 낫다.

 

 

 

 

 

 

 

 

 

초밥 레스토랑이라는 간판이 있어서 들어가서 물었더니 배달 전문점이라고 한다. 원하면 포장해 줄 테니 호텔로 돌아가서 먹으라고 한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 저녁을 해결하고 키로프 광장 근처 앙가라강으로 막심 호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앙가라 강은 시원했다. 그런데, 모기의 공격이 극심했다. 야심찬 앙가라강 산책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모기기피제를 뿌려도 그들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물 낚시를 하는 러시아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강물이 무섭게 빨리 흐른다. 빨려 들 것 같다. 

 

열 시가 넘었는데도 키로프 광장의 분수대에는 사람들이 쉬고 있다. 광장으로 가는 7차선 도로는 거대한 횡단보도다. 차들이 멀리멀리 돌아서 건너고 있는 우리를 피해 다닌다. 앙가라 호텔 앞의 분수는 은은한 조명으로 더욱 시원하다. 60촉 백열전구가 사라진 지 오래된 나라에서 30년을 거슬러 올라온 모양이다. 노란빛을 띠니 나트륨 등일 텐데, 왠지 가로수에는 백열전구가 끼워져 있을 것 같다. 우리 숙소의 거실과 안방처럼.

 

드카를 사고 싶은데, 평소 전혀 마셔 보지를 않았으니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슬라타에서 300py로 25% 할인 행사하는 보드카를 한 병 구입했다. 병 모양이 예쁘고 뚜껑의 감촉이 좋다. 

 

안주로 샐러드와 감자버터구이, 햇반, 오이와 함께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마셨다. 특히 얇게 포를 떠서 설탕에 재워 둔 토마토가 특히 맛있었다. 썰어서 고추창에 찍어 먹은 오이는 많을 것 같아서 500g만 샀는데, 후회가 된다. 작은 오이가 싱싱하고 맛있다. 오렌지 주스로 칵테일도 만들고. 한 병도 마시지 못했는데, 다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다. 일기를 조금 쓰다가 다시 한번 샤워를 하고, 저녁 먹은 설거지를 했다. 작은 더블침대의 한가운데에 덮을 이불을 3.8선처럼 쭉 펴놓고 그리미와 함께 누워 푹 잤다. 그 선은 때로는 넓은 마음이 되어 자주 짜증을 끓어 올리는 내 좁은 마음을 포근하게 덮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