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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러시아여행_바이칼에서 블라디보스톡

알혼섬의 배는 고장나고, 슬류댠캬에서 멋진 저녁만찬을 즐기다_170801 вторник 프또르닉

간신히 6시 50분에 눈을 떴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내려갔더니 예브게니(Евгений)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틱을 준비했기에 사진을 찍어야 해서 필요없다고 했다. 빠르게 오른다.  모든 산이 그렇듯이 가파르다. 온통 자작나무다.  바위에 오른다. 멀리 바이칼의 안개가 보인다.

 

끝도 없는 자작나무 숲이 깊은 그늘을 드리워 줘서 높은 태양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고, 야지에 펼쳐진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자칫 지겨워질 만한 힘든 산행을 위로해 준다. 멀리 안개에 휩싸인 바이칼은 바라보는 것으로 그저 평안하다. 우주신이 작아서 못 신는 280mm 운동화를 신었더니 발이 불편하고,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숨이 가쁘다. 허리가 50은 되어 보이는 예브게니가 힘찬 발걸음으로 오르는 것에 비해 많이 뒤쳐진 것만은 사실이다. 쉼없이 나로부터 멀어졌다가 다가오는 왕복운동을 한다. 그런데 그의 허리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한 시간씩 산을 오른다고 한다. 나는 하루 5시간 이상을 허리 굽혀 일하는 농부다. 언제든 조금의 준비시간만 주어지면 나는 듯이 산을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있다. 등산 정도야, 뭐. 지금은,,,,, 그의 왕복운동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

 

산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비닐 봉투를 하나 줍더니 여기저기에 던져져 있는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한다. 금방 가득하다.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바뀌려면 꽤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 산길에는 먹을 수 있는 하얀 버섯이 지천으로 돋아난단다. 지금부터 일주일 후에. 그것을 소금에 절여 두면 보드카 안주로 최고라고 한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멀리 석회석 광산이 보인다. 매우 위험해 보이는 작업로를 따라 해마다 두 차례씩 자동차 경주가 벌어진다고 한다. 얼음 위에서도. 몇 년 전에는 지리학자들이 광물 조사를 위해서 산책로의 중간 부분을 발굴한 흔적이 깊게 남아 있다. 바위에는 라펠을 위한 고리가 준비되어 있다.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밧줄타기를 했었다고 한다. 잣나무는 세 개의 잎을 가지고 있고 소나무는 두 개의 잎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위스가 아닌 슬류댠카 딜라이트의 정원에 핀 에델바이스. 시베리아의 겨울에도 얼어죽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바이칼의 시원한 모습을 보려면 가을이 좋다고 한다. 10월. 겨울에 들어서는 11월 부터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마을 전체가 연기로 자욱하다고 한다. 쿨뚝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밀려 평화로운 슬류댠카는 매캐하고 어두운 겨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침은 루피나(Руфина)와 그리미가 합동으로 준비하고 있다. 샤워를 하고 편안하게 식사를 한다. 구수한 곡물죽과 고소한 팬케익, 오이와 노란 토마토, 체리와 베리, 그리고 차이와 커피. 치즈와 크림. 진수성찬이다. 안타까운 것은 피곤한 그리미가 혼자 식사준비를 하는 루피나를 돕겠다고 피곤한 몸을 일으키는 일이다. 팬케익을 만드는 일이 매우 즐겁기는 했지만 말이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쉰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쿨뚝을 갈까 하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리스트비얀카에서 하지 못한 자작나무 숲 투어를 하기로 했다. 우주신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침에 먹고 남은 팬케이크 4장과 음료수 한 통, 담요 두 장을 짊어지고, 오르고 내리는데 유용한 스틱을 각각 한 자루씩. 너무 추워서 뱀이 살 수 없다고 하니 더욱 안심하고 오를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의 휴식을 취하고 그리미가 힘들고 재미없다고 한다. 많이 쉬었는데도 아직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꼭 보여주고 싶은 바위가 있지만, 천재와 함께 내려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 가기 싫다는 우주신을 꼬셔서 30분만 더 올라가기로 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길 찾기도 쉬웠고, 오르막 고비를 넘자 완만한 능선길이라 걷기에 좋았으며, 울창한 자작나무가 한낮의 태양도 무시하게 해 주었다. 땀은 줄줄 흐르지만 시원했다.

 

아쉽지만 칼바위 능선까지는 가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그늘에서 잠깐 쉬다가 전망대 바위로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 시도만에 바위를 찾아냈다. 아침처럼 안전하게 바위 위에 오를 수 있었고, 나란히 앉아서 맑은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안개는 여전했지만 시야는 훨씬 멀어졌다.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그렇게 앉아서 멋진 광경을 바라보다가 아래쪽 바위 그늘에서 팬케익으로 요기를 했다. 두 개의 팬케잌이 술술 잘 넘어가고, 쥬스도 다 마셨다.

 

 

 

 

 

 

 

 

 

 

 

 

 

그리고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내려오면서 본 임도길이 구글지도에서 보니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길도 올라왔던 곳 보다는 좀 더 평탄해 보이고. 야생화들과 나비와 애벌레를 벗삼아 놀다 보니 예정대로 임도가 끝나고 마을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시 또 2km 를 더 가야 숙소다. 등고선의 영향을 받는 산악지역의 거리는 실제보다 짧게 지도에 나타난다. 이미 다리는 내리막을 내려 오느라 힘을 다 뽑아 써버려서 후들거리는데. 그래도 우리의 선택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무서운 개도 지나고, 웃통을 벗어 던지고 마당의 풀을 뽑는 러시안도 지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살짝 주정뱅이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

 

 

 

 

 

 

 

 

 

 

 

 

 

 

 

 

 

 

 

 

 

목이 좀 마르다. 시원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게에 들렀는데, 맥주가 눈에 띈다. 한 병(70py)을 사서 둘이 나눠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났다. 드디어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우거지 된장국과 천하장사와 김과 고추장과 햇반 4개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팬케익도 두 장을 더 먹었다. 그리고 쉬었다. 천재와 그리미는 연필 깎을 칼을 사러 시장에 다녀와서 또 잤다. 오늘은 이렇게 푹 쉬자고 한다. 그가 추천한 비즈니스 야드에서의 식사는 몸이 피곤해서 포기했다. 그리미는 식사 준비를 하기도 먹기 위해 나가기도 싫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쌓인 피로가, 떠나고 싶다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외치는 모양이다.

 

음악을 듣고 책을 보다가 정원 앞의 의자에 나가 앉았다.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자니 행복감이 저절로 밀려온다. 무일농원에서도 물론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으나, 모기가 언제나 문제다. 워낙 잘 물리는 체질들이라 시원한 야외에서의 활동 자체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삼복 더위에 옷을 두겹이나 껴입고 논일 밭일을 하겠는가. 모기와 쇠파리, 등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곳 슬류댠카의 딜라이트에서는 가능하다. 모기가 거의 없다.

 

 

 

 

 

 

 

 

 

 

 

 

 

 

 

 

 

 

 

 

 

루피나가 먼저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한다. 그녀의 도마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 정원을 바라보며 좀 더 휴식을 취하던 그리미가 부엌으로 간다. 루피나의 오븐이 그리미를 기다리고 있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서 천재가 부지런히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가교 역할을 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예브게니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정원에서 자라는 노루오줌을 촬영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 한다.

 

I read the news on the internet. The boat between Olkhon and the earth have been out of orders for three days. So all the people cannot across the lake. A few people can across it by a small private boat in very expensive fare. You are very lucky.

 

정말 그랬다. 처음 계획은 7월 30일에 알혼섬으로 이동해서 8월 2일 오전에 나오는 것이었으니 가도 오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우연히 슬류댠카를 찾았고, 이곳에서 사흘을 보내면, 비용도 절반 이하로 줄고, 이동하는 피로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모두가 추천하는 알혼섬을 포기하고 계획을 변경했었다. 물론 알혼섬의 근사한 바이칼 풍경은 포기하고, 시골에서의 한적한 바이칼 모습을 선택한 것이다. 저녁은 기대 이상이었다.

 

살리안카 스프와 사꾸다야 오물 양파 샐러드. 오물은 염장한 것인데 양파와 먹으니까 비리지 않고 개운했다. 90년대 초에 포항에서 먹었던 과메기 맛이다. 부드럽다. 재료는 모두 텃밭에서 재배한 것들이다. 그녀가 요리 재료를 불러주면. 쥬키니 스꼴리까 취띄예르. 호박 몇 개 네 개. 그가 텃밭에 가서 따서 씻어서 가져다 준다. 그리미는 그녀 옆에서 치즈를 갈아서 준다. 이 텃밭은 9월까지는 유지되는데 그 이후는 추워서 가동되지 못한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차이잔을 들고 집앞 잔듸밭으로 나갔다. 좁은 잔듸밭에서 8살 전후의 아이들이 모여서 체조 놀이를 하고 있다. 손짚고 앞돌기와 옆돌기가 매우 자유롭다. 영어로 숫자도 셀 수 있다. 하라쇼라고만 이야기해 줘도 좋아한다. 마구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웃으며 다 다 다 하거나 하라쇼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래도 그들은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재주를 부리고 웃어준다. 참 즐거웠다.

 

아이들에 이어 동네 할아버지도 와서 말을 거신다. 처음에는 국적을 묻는 것 같아서 까레이스키라고 했더니 못 알아 들으시는 모양이다. 계속 물으신다.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톡까지 우리의 동선을 이야기 했더니 대문 안에서 자전거를 정리하던 둘쨰가 나와서 할아버지를 상대해 준다. 잠시 후에 그리미가 나온다. 꼬마들에게 마야 쥐나라고 소개한다. 천재가 나온다. 소녀들에게 모이 씐(내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다들 좋아한다. 할아버지는 왜 아들들이 이렇게 발쇼이(크냐고) 하냐고 묻는다. 예브게니가 나와서 new generation이라고 대답해 준다. 한 바탕 웃엇다.

 

그리고 차가운 가을의 공기를 맞으며 동네 한 바퀴를 또 돈다. 마을 길을 지나 주인 없는 개들과 함께 망해버린 SPAR 앞의 시청 분수대가 반환점이다. 너무 추워서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내일은 꼭 케이프로 가서 바이칼 물 속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흠. 좋다.

 

이루마의 When the love falls를 들으며 어린왕자를 읽는다.

 

If someone loves a flower of which just one example exits among all the millions and millions of stars, that's enough to make him happy when he looks at the stars. He tells himself. "My flower is up there somewhere."

 

은하수는 보이지 않아도 별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버섯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