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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러시아여행_바이칼에서 블라디보스톡

살기 위해서 간디놀이를 하다_슬류댠카에서 울란우데까지_170803 취뜨예르그 Четверг

잠 자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계속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소리를 들어야 해서 깊은 잠은 들지 않았다. 저쪽 칸 어딘가에서는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 모양인데, 객실과 잘 차단이 되어서 불쾌한 냄새도 들어오지 않는다.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미는 너무 피곤해서 깊이 잠들었다고 한다. 천재는 계속해서 잠이 깨어 어디인가를 보았더니 울란우데에서 정차한 열차에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고 한다. 3등석 침대칸의 2층은 짐칸이 머리 위에 있어서 눕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침에 눈이 떠 지지를 않았는데, 화장실을 가야 해서 억지로 눈을 뜨고 세수를 했더니 견딜 만했다.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커피 한 잔과 루피나가 포장해 준 애플파이로 아침 식사를 했다. 밥과 우거지 된장국을 먹고 싶었지만 루피나의 정성 어린 파이가 혹시 상할까 싶어서 먼저 먹어야 했다. 오물 시장에서 산 빵도.










해가 높이 뜨더니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기차 안이 매우 더워진다. 졸음도 쏟아진다. 일단 한 잠 자자. 어린 왕자를 한 쪽 읽고 잠이 들었다. "Would you be so kind as to tend to me?"


점심으로 도시락 라면 한 개와 남은 빵 조각, 비스킷, 프랭글스를 먹었다. 그리고 간디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녹음 놀이도 했다. "How peaceful it is where you live!"






오후 2시를 전후해서 햇살이 뜨겁고 더워서 바람을 만들어 보려고 별 짓을 다했다. 노력만 했을 뿐 얻은 것은 없었다. 기차 안을 거닐어 보기도 했다. 여유로운 산책이라 하기에는 비좁아서 편안하지 못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눈을 맞추며 대화의 물꼬를 터 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다시 어린 왕자를 읽다가 천재의 행정법 강의를 듣는다. 불편해서 집중이 안된다기에 우리에게 설명을 하라고 했다.


승무원은 그 사이에 할아버지로 바뀌어 있었다. 컵 두 개를 빌렸다.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green field' 녹차를 한 잔 타서 마셨다. 뜨거운 홍차가 들어가자 조금 시원해 진 느낌이다. 어느 덧 4시를 향해서 기차가 간다. 다시 이 열차를 타겠느냐고 아들들에게 묻는다. 절대로 타지 않겠다고 한다. 시원찮은 녀석들. 더위에 지쳐서 몸살이 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했다.


우주신이 프랭글스를 다 먹고 나서 샤워기를 만들었다. 어제 슬류댠카의 대형마트에서 산 것이다. 칼은 슬류댠카 시장에서 쏘록 루블을(сорок / 40py) 주고 샀다. 오늘은 견딜만하니 내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처제의 말로는 러시아에는 표드르와 뿌찐(Путин)처럼 생긴 남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우리 옆자리의 그들처럼.








너무 덥고 심심해서 이발소 놀이를 하려고 했는데, 그리미가 거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나무젓가락으로 면도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리미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인가 매우 행복해 할 때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도록 하자. 이발소 놀이, 은근히 기대가 된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간디놀이나 이발소 놀이를 하지 않으면 너무 더워서 기차 속에서 익어버릴 것같다. 시베리아가 혹한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시베리아는 폭염의 평원이다.


뜨거운 커피와 차를 계속 마셨다.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계속 마셨다. 이열치열이다. 간이역에서 산 시원한 물도 계속 마셨다. 속이 시원하다. 잠깐이지만. 저 앞 쪽 마을에는 비가 내렸는지 무지개가 떴다. 마을이 예뻐서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다. 쌍무지개가 되려다 만 것은 그 마을의 가난이 아직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부의 분배가 잘 이루어져서 쌍무지개를 건설할 수 있는 여유가 러시아에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되면 냉방이 제법 잘 되는 15호 열차의 사람들처럼 13호차의 우리도 그리 덥지 않게 여행할 수 있게 될테니까. 뿌친. 러시아인들이 너에게 기대하는데, 너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는 것이냐. 아니면 어떤 할머니처럼 감옥의 담장 위를 걷고 있느냐.


방금 어떤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니까 기차 안의 온도가 1도 정도 내려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는 더위를 식힐 간디 놀이, 이발소 놀이, 소녀의 미소가 필요하다.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