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윤 동 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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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시에 붙여
무일 박 인 성
등불을 켜지 않아도
세상은 너무 환하여
잠들지 못하는 여린 나,
언제나 그녀의 작은 손이
넘치는 따스함과 격려로
무성한 자연 속에 버려진
내 떨리는 어깨를 다독인다
부족할 것 없는 떨림과 여림이
시인 앞에서 부끄럽다.
이렇게 환한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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