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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시

                   삶


                                  정농 박상선

초년


망울 망울 맺힌 봉우리

터질듯 터질듯 부풀어서

방싯방싯 피어나듯이

빨간 볼 여린 손으로

봄이면 진달래 산을

여름이면 자운영 꽃밭을

꿀벌을 쫓아

헐덕이는 짚신짝 풀숲에 벗겨져도

윙 윙 날아가는 저 큰

왕 꿀벌을 따라가며

해 저무는 것도 잊었었네

하얀 눈송이

진달래산이며 벗겨진

짚신짝 묻어 덮어버리면

비탈진 언덕에서

대나무 짜개어 신들메에

메여 얽어

미끄러지다 엉덩방아에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강아지

신바람에

시리다 못한 여린손 갈퀴되고

엉덩이 멍이 들어

온 힘을 다하여 뛰어 와서는

그만 할미 앞에

울어 버리네


장년


화살처럼 하늘 향하여

솟아오르는 종달새의 지혜

산 허리에 곱게 곱게 그린

저 무지개의 신비

나 이제 종달새 보다 빨리

저 허공을 날으리라

저 고은 무지개 내가 잡아

길이 길이 간직하리라

뛰고 달리고 또 뛰어도

접힌 날개 펴지지 않고

가라 앉은 몸 뜨지를 않네

무지개 잡으러

들길을 쫓아 갔지만

자꾸 자꾸만 멀리에 서서

손짓하네 오라만 하네

들에 가면 산에 있고

산에 가면 강에 있어

들에서도 산꼭대기에서도

잡지 못했네

강에 오니 강 한 가운데 있어서

그 고움은 더 짙고

꼬리는 물에 떠 있으나

뭍에서 잡지 못한 저 무지개

물에서 내 어찌

접힌 날개 펴지지 않고

뭍에서 가라 앉으니

종달새도 무지개도

내 헛된 욕심이었나


말년


종달새 지혜 익히려다

정갱이 깨어지고 발목은 삐어

죽쟁이 부러지고 허리는 휘어져

무지개 쫓느라 들길에서

넘어져 벗겨지고

가시에 찔리우고 돌부리에 채여서

엎어져 넋을 잃고

산길에서 독추에 쏘이고

넝쿨에 걸려서 뒹굴었으니

붓고 터지고 찢기고 할퀴어

누덕누덕 누더기 되어

종달새도 무지개도

그 어디에

누더기 끌어 모아

이리 누비고 저리 누비고

깨어진 곳 동여매고

부수어진 곳 얽어매어

형체는 있거늘

붙잡을 것도

기대어 설 수도 없이

저 살얼음 강 저편에

부르며 손짓하네

또 부르네 어서 오라고

빨간 볼은 검은 버섯되었고

여린 손은 황소 발등되어

살얼음 위에 섰네

살얼음 위에 섰네


주여 이 한 발작 한 발작을

깨어지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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