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불어 대기는 청명하고 하늘은 푸르다. 빛바랜 회색빛 웃도리와 흙에 절은 검은 바지를 입었어도 하늘과 녹색의 대지를 배경으로 선 농부의 모습은 늘씬하고 근사하다.
또각또각 작은 햄머로 고추 지지대를 박아나간다. 왼손으로 6번, 오른손으로 4번. 햄머질을 할 때 오른손만 쓰면 금방 지쳐버린다. 천천히 쉬어가면서 오른손만으로 햄머질을 해도 쉽게 지친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쓰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지치지 않는다. 균형있게 힘을 나눠써야지만 꾸준하게 일할 수 있다. 세 시간 내내 고추 지주목을 박았는데도 몸은 편안하다. 고추 지주목으로 철근을 사용한 지가 어느 덧 10여 년이 흘렀다. 다른 것들에 비해 파손이 적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길이가 짧은 것이 흠이다.
지난 수요일에 뿌린 볍씨가 8일만에 5cm나 자랐다. 모내기는 5월 19일에 할 예정인데, 너무 모가 빨리 자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정농께서는 13, 4일 경에 모내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볍씨를 뿌린지 25일 경이 모내기의 적기라는 이야기다. 과연 5일을 더 자란 모는 이앙기에서 어떻게 처리가 될 지 궁금하다. 잘 심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제부터 보온 덮개를 벗겨야 하는데, 세상에 막 나온 어린 모들이 강한 햇살에 타지 않도록 비닐 하우스 위에 차광막을 쳐야 한다. 정말 우습게도 이 차광막 치는 방법을 재작년에야 겨우 알았다. 그 전까지 7년 여를 모판 위에다 치렁치렁 치마를 걸듯이 걸쳐서 햇볕을 막아 주었다. 다른 농부들이 어떻게 빛가림을 하는지 알았더라면 그런 생고생과 우스운 풍경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천께서는 언제나 다른 농부들에게 묻거나 관찰해서 문제를 해결하라 하신다. 그래야 한다. 농업은 1만년 전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산업이다. 축적물은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만큼 무궁무진하다. 물론 농부들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서 무엇을 가르쳐줘야할 지를 모른다. 다정하지도 않다. 내 스스로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유능한 농부들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정확하게 물어 보아야 한다.
점심 무렵에 집으로 돌아가니 땡볕에서 예초기 칼날 수리가 요란하다. 정농과 함께 끙끙거렸지만 답이 없다. 다시 하나 더 구입하기로 했다. 3만 5천원이면 안전한 예초기를 사서 3년을 쓸 수 있다. 너무 알뜰하려다가 몸과 마음이 너무 고생한다. 주문하고 입금을 했더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어제는 그리미로부터 꽃차로 귀농에 성공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확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년 내내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손발을 맞추고 마음을 맞출 수 있는 배우자와 함께 한다면 정말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일단 밭의 한 귀퉁이에서 일을 시작해 보고, 자신이 생기면 흑미논 하나를 메워서 100여 평에 다시 시도를 해 보고, 그것마저 성공하게 된다면 500평 정도로 늘려서 집주변을 온통 꽃 천지로 만들고 싶다. 자연스레 쌀 생산량도 줄고, 논밭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겠다. 잘 하면 그 꽃을 배경으로 차와 음악이 함께 하는 카페도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십 년 후에는 제대로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소농으로 배워야 할 모든 기술과 경험을 쌓아나갈 뿐이다.
헤르메스는 잘 달려 주었다. 1차 목표인 1만 km까지 이제 10% 남았다. 잔인한 4월을 그냥 흘려 보내는 바람에 많이 늦어졌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1만에 도달하면 뒷바퀴 타이어를 교체할 생각이다. 목표 달성 기념으로. 그리고 2차 목표인 2만 km를 향해 또 2년 반을 달리자. 그러면 내 나이만큼 헤르메스도 낡고 덜그럭거릴 것이 틀림없다. 그 때가 되면 속도를 낮춰서 천천히 달리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젊은 마음에 나이든 몸을 잊고 더 튼튼한 새 것을 찾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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