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농사일기를 쓰지 못할 정도로 힘든 고비를 넘겨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목표하고 계획한 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았고, 작은 사고들이 이어져서 몸을 피로하게 했다. 사기가 떨어지니 일은 더욱 힘들었다. 이제 그 고난의 과정들을 전부 기록해 둔다.
첫 번째는 작업 계획을 세울 때마다 꾸준히 내리는 비다. 논작업과 달리 밭에서 하는 트랙터 작업은 습기가 적당한 수준으로 있어서 고실고실한 상태여야 작업하기가 좋다. 그런데, 묘하게도 기계 임대를 해놓은 날에 맞춰서 계속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오죽하면 임대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임대를 하지 않는게 좋다고 했겠는가. 그렇게 세 번 정도를 연기하다가 결국에는 45만원을 주고 기계를 사서 작업을 해야 했다. 보통 13만원이면 충분하고 넉넉 잡아도 26만원이면 끝냈어야 할 일을 세 배나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일을 끝낸데다가 일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욱 답답했다. 그나마 기계를 공짜로 빌려줘서 트랙터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것이 위안이 되어 밭 이랑 만드는 작업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이랑만들기에도 더욱 자신이 붙었다. 내년에 가봐야 알겠지만.
밭 작업용 기계를 임대할 때 비가 자꾸 내리는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운 대책은 임대 자격자를 한 사람 더 추가해서 시간을 두고 두 개의 임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부모님 모두 농협 조합원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기계를 맞춰 두면, 비가 내려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때 열흘씩 작업이 연기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 모두 농업인 안전 보험에 가입한 것도 잘한 일이다. 예전처럼 기계 작업을 많이 하지 않으시니 크게 다치실 일도 없지만 뭔가 계속 불안했었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관리기의 한계다. 트랙터를 빌려놓고도 마음이 불안했다. 내 실력으로는 하루만에 800평의 밭에 깔끔한 이랑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관리기에 배토기를 부착하는 작업을 해 두었다. 두 세 시간이 걸려 작업기 교체는 잘 해 두었는데, 막상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과 기계를 사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비닐 씌우는 휴립기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해 관리기를 빌려가셨던 분이 고정 나사 하나를 무리하게 결합해 놓았었는데, 그 나사가 망가지면서 관리기의 축까지 손상이 간 것이다. 겨우 나사 하나 망가뜨린 결과치고는 너무나 참담한 결과였다. 두 시간 정도 해 보고 나는 포기했지만, 정농께서는 찬바람을 맞으며 축과 나사를 손 보셨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렇게 손 본 관리기로 작업을 하시다가 손상이 간 관리기의 축이 뚝하고 부러져 버린 일이다. 결국 새로 축을 사다가 다시 관리기를 조립하고 하느라고 사흘 정도의 시간이 흘러 버렸다. 그 사흘 동안 부모님과 나는 말할 수 없는 실망감에 고통스러웠다. 이럴려고 귀농한 것이 아닌데,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어 버렸을까.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하나.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이도 관리기는 정상 작동을 해서 이랑 비닐 씌우기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이틀이면 끝낼 수 있었던 작업을 일주일이 넘도록 끙끙 앓고 나서야 마쳤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는 관리기를 변경 조립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관리기가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차라리 휴립 배토기를 빌려서 작업하기로 했다.
세 번째로 자질구레한 사고들의 연속. 자전거가 계속해서 펑크가 나고, 그러다가 넘어지고, 테레비가 고장나고, 마음이 타이어가 불안해져서 미리 교체를 해야 했고, 로봇 청소기가 고장났는데 업체가 부도가 나서 버려야 했고, 등등. 작은 일들인데 앞의 어려운 일들로 무거워진 마음이 아프게 건드려지는 바람에 몹시 힘들었다. 삼천리자전거 의왕공장의 직원들이 친절을 베풀어 줘서 위기도 잘 넘겼고, TV 수리비와 타이어 교체비용도 감내 가능한 수준에서 잘 막아내었다. 선제 조치들을 다 해 두었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다만 헤르메스의 타이어 교체는 어떻게 할 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네 번째로 공부와 책이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여름 여행 준비를 위해 러시아어 공부를 한 달이 넘도록 했는데, 갈수록 어려워져서 진척이 없다. 보름 이상을 그냥 흘려 보냈더니 그동안 공부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 버린 것도 큰 상실감이었다. 젊어서는 어쨌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가족이나 사회가 모두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밤새 일하고 와서 간신히 눈을 뜨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책 선택을 잘못해서 부담스러운 글들이 마음에 쌓이니 흥이 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즐거운 책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
잔인한 4월을 더욱 힘들게 했던 여러 사건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처리했으면 될 일을 너무 어렵게 처리했던 모양이다. 지나고나면 다 이런 마음일 것이다.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번에 고비를 넘길 때 격려가 되었던 일은, 아내와 가족들의 끊임없는 격려와 배려,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 덕분이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당장 땅 팔아치우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문득 비닐을 씌운 이랑을 뛰어다니며 이랑에 구멍을 내어 놓은 고라니 생각이 났다. 그 녀석들은 왜 저렇게 뛰어다닐까. 내 소중한 밭을 망쳐놓고 나를 굴복시키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아니었다. 고라니 발자욱 하나 하나 마다 여린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들이 봄기운을 받아 약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발자욱에도 대자연의 건강한 생명력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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