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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제 논에 물대기_170502~0511

모터와 닷새를 씨름했다. 정농께서 기진맥진. 두 개의 원인. 알지 못해서 답답한 시간을 흘려 보내야 했고,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


하나는 관정에서 올라오는 파이프가 부러져 새는 바람에 물이 올라오지 않았다. 박혀있는 파이프보다 구경이 작은 노지용 수도 파이프를 사다가 연결했더니 새는 문제를 해결했다. 


또 하나는 고장난 모터. 모터가 고장이 나서 새 모터를 사다가 연결했는데, 그 모터마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헛심을 썼다. 나흘을 고생하다가 절집앞 모터와 교체해서 돌려 보았더니 물이 나온다. 참 허탈하도다. 그래도 해결을 해서 5월 8일 어버이날에 두 분께 효도 선물을 했다. 제 논에 물들어 가는 일만큼 기쁜 일이 없다.


그렇게 고쳐진 모터 두 대로 큰 논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언발에 오줌누기라고 800평의 논에는 물자욱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물을 대기 시작한 지 닷새가 되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물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 어림도 없다.


이웃 사람이 공동 우물에서 물을 계속 쓰고 있어서 우리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11일에 비료 살포와 로터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9일부터는 물을 써야 한다. 며칠 밤을 기다린 끝에 10일 새벽 6시부터 찰벼논에 물을 대기 시작했다. 12시간을 대고 났더니 500평 논에 제법 물이 차오른다. 우리 논에 물을 대는 그 12시간 사이에도 계속 이웃 농민들이 물을 댈 순서를 기다리며 우물을 찾아온다.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찰벼논에 이어서 두 대의 모터가 돌고 있는 메벼논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세 대의 모터가 도니 금방 받을 것 같은데도 800평 논바닥의 물은 쉽게 차오르지 않는다. 가뭄으로 말라있는 저 깊은 속에서부터 물을 채워오기 때문일 것이다. 모내기를 한 이웃 농부는 바닥이 드러난 곳에 물을 채워야 한다며 2시간만 물을 쓰자고 한다. 우리는 아직 하루도 쓰지 못했는데. 11일 새벽까지만 우리가 받고 물을 쓰라고 했다. 


6시에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논으로 갔다. 찰벼 논의 논둑에 새는 부분이 발견되었다. 정농께서 힘들게 막고 계신다. 들어가서 식사하시라 하고, 대충 대충 막아나갔다. 이런 일은 매우 꼼꼼하게 해야 하는데, 일이 서툴다 보니 엉성하다. 이 일은 작년부터 하기 시작했으니, 내년 쯤 되면은 익숙해지고, 제법 꼼꼼하게 처리될 것이다. 무려 세군데의 물구멍을 막고 나니, 귀여운 땅강아지가 원수로 여겨졌다. 삽에 떠올려진 땅강아지를 냅다 패대기를 처버렸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논이니, 땅강아지, 개미, 드렁허리 등 온갖 생물들이 논둑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왠만하면 공생하며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다. 


찰벼 논 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메벼 논둑으로 내려갔다. 너무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해가 거의 저물어 물이 새는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논둑 위를 최대한 밟아주고 약한 부분에는 흙을 떠서 보강을 해 나갔다. 동산으로 보름달이 떠오른다. 칠흙같은 어둠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8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자정에 또 농부가 왔다. 이제 다 찬 것 같은데 뭘 더 받느냐고 한다. 내 논의 물은 부족하고 남의 논의 물은 충분해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새벽까지 더 대어야 한다고 돌려보낸다.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그의 마음도 안스럽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트럭에 쭈그리고 앉아서 우물을 지키는 우리도 안스럽다.


자정부터 트럭에서 물꼬를 보다가 새벽 두 시에 어머니가 나오셨다. 4시가 넘으니 이웃이 나와 물꼬를 또 튼다. 일단 양보하고 들어오셔서 주무신다. 7시에 나갔더니 이번에는 인삼밭에서 물을 받고 있다. 다시 물꼬를 대자마자 이웃이 와서 모 타들어 간다며 또... 포기하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현재까지 받아놓은 물로 작업을 해 보다가 부족하면 다시 대는 것으로 했다. 봄가뭄은 농부들의 마음을 초조하고 각박하게 한다. 열흘 동안 논에 물 대느라 많이 늙었다. 소농의 꿈은 꿀 때만 아름답다. 농부의 숫자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계속해서 농사를 줄여 가는 것으로 아름다운 소농의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