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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중국 난징황샨항저우하이

[겨울 남경여행] 달리고 달리고, 헉헉_161231

새삼 중국이 넓다는 생각을 한다. 2016년초에 크로아티아를 가면서 북경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어디를 구경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 왈, "그냥 왕푸징에서 밥이나 먹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자금성과 천안문 구경을 하기로 계획했다가 구경은 커녕 천안문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뻬이징을 떠나야 했었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무려 2박 3일의 일정을 잡아 하나의 도시를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꿈은 깨지려고 있는 것.  







아침 식사는 어제와 비슷하게 여유있게 먹었다. 대충 먹고 많이 봐도 좋겠지만 중국이라는 곳이 그리 다르지 않은 곳이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기에 한가롭고 싶을 때는 최대한 즐기는 것이 기쁨이다. 어제 먹지 않았던 두부탕을 고추기름, 간장, 마늘인 듯한 양념까지 전부 첨가해서 먹어 보았다. 그런데로 먹을 만했다. 커피는 포기하고 홍차를 마셨다. 포만감이 느껴진다. 아침이 든든하면 적어도 오전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기운이 펄펄 솟는다. 혈압약을 먹기 위해 생수를 찾았는데 없었다. 일하시는 분들께 시원한 물을 부탁 드렸더니 주방에서 뜨거운 물을 가져 오신다. 차가운 물은 없단다. 위생 문제 때문에 그럴 것이라 이해하고 조금 식혀서 약을 먹고 출발.


 




숙소 앞 시안먼 西安门 Xīānmén 역과 난징대학살기념관 侵华日军南京大屠杀 死难同胞丛葬地 Qīn huá rìjūn nánjīng dà túshā sǐnàn tóngbāo cóng zàng de이 있는 윈진루 云锦路 yúnjinlù 역 모두 한산했는데, 역을 나서자마자 기념관 입구가 보이면서 까망머리 물결이 넘실댄다. 장난기도 없고 허접한 모습도 없이 모두 진지하다. 골초들이 담배도 피지 않겠다는 것인지 입구에서 짐검사를 받으며 음료수, 라이터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마침 주말이라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오는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거대한 동상, 찢겨진 가족. 희생된 아이를 두 손에 쥔 채 희미하게 울부짖는 여인의 비통한 모습이 가슴을 저민다. 이곳에 전시된 조각상들 중 일부는 사진 자료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모양이다. 그중 하나. 팔순 노모를 이끌고 일본군 악마들을 피해 달안나는 손이 거친 아들의 바쁜 걸음에서 전쟁광 제국주의자들의 잔인한 웃음이 떠오른다. 쓰레기들. 신께서 그들을 정말로 처벌해 주셨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암매장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1983년의 기술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30만명의 이름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본을 대신해 사과와 위로를 전해왔다. 그것으로 저 가여운 원혼들이 위로될 수 있을까. 거대한 어둠, 그리고 무수히 빛나는 촛불 속에서 희생자의 이름이 한 명씩 천천히 불리워진다. 그 긴 어둠을 뚫고 나오면 거대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평화의 여신이 밝은 미래를 이야기 한다. 잊지 않는 민족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얼른 돌아나왔더니 11시 10분. 라오먼뚱 老门东 Lǎo mén dōng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어제 저녁 잠시 들렀던 라오먼뚱을 다시 들렀다. 


전철에서 내려 15분을 걷는 동안에 펼쳐지는 중국인들의 생활 모습은 정말 재미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자신이다 보니 부끄러울 것이 없다. 속살을 다 드러내 보여준다. 속옷과 함께 일용할 양식인 고기도 줄줄이 말리고 있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웃음도 절로 난다. 동네 어귀에서 1콰이에 파는 과자 세 개를 샀는데, 밀가루 반죽을 그대로 화덕에 구워주는 천연 그대로의 음식이다. 고소한데, 샹차이 비슷한 것이 가미되어 있는지 그리미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맛있게 먹으며 전철로 가다가,











 

"그런데 몇 시야?"

"응 12시 반 ..... "

"......... 뛰어!!!!!"






여유있을 때가 좋지 !!





 

그리미를 시안먼역에 두고 우주신과 장딴지 근육이 터지게 호텔로 달려갔다. 다행이 손님이 없어서 짐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뛰어~


짐을 메고 끌고 다시 시안먼역으로 달렸다. 그리미가 전철표를 들고 달리기 대열에 합류했다. 전철이 달리는 동안에도 계속 달렸다. 눈으로 역이름을 휙휙 돌렸다. 한 역당 3분 가까이 걸린다. 안돼, 3분이 부족해 !











다싱공역에서 3호선 갈아타는 곳까지. 

볼 것 없어. 뛰어. 뛰란 말이야. 


난징난짠에 내려서 대합실 앞까지.

너무 멀어, 뛰어. 


뛰었다. 











북이야 남이야. 

몰라. 

일단 뛰어.


북으로 뛰었다. 


시간은 5분도 안남았는데 짐과 여권과 기차표를 검사한다. 

검사가 끝나고도 B15게이트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뛰어.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오르고,

또 뛰어갔다. 


그리미가 뛰다가 멈췄다. 

상태를 보아하니 더 이상 뛰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 돈 있는데 포기하자.


안돼, 자기라도 성공해야 해.

뛰어.


그녀는 걸었다. 








나는 끝까지 뛰었다. 

저기 7631 고속기차가 서 있다. 

3분 남았어. 


그렇게 68분을 뛰었다. 

속옷이 다 젖었다. 


내가 열차를 잡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힘을 내어 달려 왔다.

바퀴가 고장난 20kg 가방을 끌고 사색이 된 우주신도 달려왔다.

애 잡을 뻔했다.


12시 30분부터 1시 35분까지 중국 대륙을 달렸다. 

난징난짠발 1시 38분 항저우행 기차를 타는데는 성공했다. 

병신년은 원래 이렇게 보내는게 맞아. 쩝.







 

꼬마아이와의 대화. 항저우 동역에서 셩광따도까지의 긴나긴 여정. 난징과는 다른 정리된 길과 여유있는 도로, 많지 않은 오토바이. 우리 숙소 참 좋구나. 


역에서 숙소로 오는 지하철에서 대형사고가 났다.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자리에 앉아 목적지를 열심히 살피고 있는데, 삼대의 온 가족이 지하철을 탔다. 두 분의 할머니가 자리에 앉은 얼마후 갑자기 '아앗'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세 달도 안되었을 갓난 아이가 지하철 바닥에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옷을 다 벗겨 주었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싸라고. 바닥이 흥건하도록 갓난아이가 시원하게 오줌을 싸고 나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할머니들이 아이 기저귀를 채우고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한다. 


혹시 휴지가 없어서 그런가 해서 우리가 가져온 휴지를 주려고 했더니, 있는데도 바닥 닦을 생각을 아무도 안한다는 것이다. 집사람이 정확한 위치에서 처음부터 쭈욱 지켜 봤다고 한다. 헐. 결국 오줌들은 다 마를 때까지 지하철 바닥을 이리저리 흘러다녀야 했고, 그 혼란의 와중에도 아이는 평온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가 귀엽고, 엄마는 자리가 나자 얼른 안더니 계속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주변 사람들은 그저 모른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형사고가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만. 아주 진귀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숙소에 도착했으나 오피스텔의 문은 굳게 잠긴 채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 아름다운 샤오지에(小姐 xiǎo‧jie)에게 부탁을 했더니 가던 길을 멈추고 전화도 해 주고, 구글번역기로 곧 숙소 주인이 올 것이라는 전갈을 전해준다. 매우 싫어했을 요란한 손톱 치장 조차 귀엽게 보였다.

 

게다가 바로 앞에 있는 명동한국음식점, 정말 맛있다. 불고기(냉동된 양념 쇠고기), 부대찌게, 고등어, 쌀밥, 쌈, 소주를 곁들여 만찬을 즐겼다. 170위안. 배 부르게 먹고 마시고, 편의점에서 68위안 하는 고량주를 한 병 샀다. 술 안주가 너무 없다. 소세지와 귤(20콰이)로 2016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영화의 거리에서는 한 해를 시작하는 축하 폭죽이 터지고 있었지만 눈꺼풀이 무거웠다. 너무 달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