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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중국 난징황샨항저우하이

[겨울 항저우 여행] 네가 인해전술을 아느냐_170101

병신년은 가고 정유년이 왔는데, 아니 정유라는 아직 안 왔구나. 항저우의 신도시 

滨江区 bīnjiāng qū  江南大道 jiāngnán dàdào 

주상복합 19층에서 느지막하게 잠을 깬다. 7시. 올해는 계속 7시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잠은 깨었지만 일어나지는 않고 뒹굴거리는데, 그리미가 일어나서 물을 끓여 된장국을 만들고, 오뚜기 즉석밥을 내놓고, 커피 루카를 끓인다. 냄새는 나지 않으면서 된장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어제저녁 야경을 보기 위해 칭흐어팡 淸河坊 Qīng hé fang에 다녀왔는데, 눈이 아플 정도로 넘치는 사람들 물결에 얼른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남들은 군것질도 맛있게 한다는데, 눈에 띄면 모를까 찾아다니면서 먹는 성질이 못되다 보니 사람과 조명 구경을 실컷 했었다. 덕분에 잠은 잘 잤으나 몸이 쉽게 일으켜지지는 않는다.

 

그리미가 움직이니 나도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다시는 여행에 끼워주지 않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오뚜기 밥을 전자레인지로 돌린다. 어제저녁에라도 전자레인지를 닦아 두었으니 망정이지 오늘 아침에 그 꼴을 보고 밥을 돌리려 했다면 끔찍했을 뻔했다. 화장실 주변의 담배 냄새가 약간 역해서 귤을 먹고 남은 껍질을 물에 불려 하루 종일 두었더니 역한 냄새가 많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냄새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인적이 드문 버스 정류장은 편안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언제 버스가 도착한다는 것까지 알려준다. 오, 감동. 물론 정류장에서 알려주지 않아도 애플맵으로 다 알 수 있다. 버스 내부도 깨끗하고 안락하며 다음 정류장이 어디인지도 척척 알려준다. 시간은 걸리지만 편안하게 쉬면서 길거리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여행자는 한가롭고 따스한 시선으로 대륙을 보아줄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이제 편리함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양국 모두 도시는 매우 편리하고, 시골은 불편하지만 견딜만한 상태다. 

 

 

 

 

 

 

 

 

 

 

 

 

어제 내렸던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는데, 밤에 잘 보이지 않았던 하얀 동백꽃이 아름답다. 도로 옆으로 작은 개천이 흐르는데, 그냥 좋았다. 부천이든 신림동이든 청계천이든 도로 속에 감추어 두었던 개천들을 살려내는 공사가 이루어진 것은 정말 잘된 일이다. 옛날처럼 물이 충분히 흐르지 않는 것이 안타깝지만 조금씩이라도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커누나 카약을 타고 오리들과 함께 작은 실개천을 노닐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오늘은 날씨가 좋은 새해 첫날이면서 일요일이다. 중국사람들도 노니 좋겠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인해전술 人海战术 Rén hǎi zhànshù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흐어억 ~

 

195 Bǎi jiǔshíwǔ路 전기버스를 타고 칭흐어팡 淸河坊 Qīng hé fang(허팡지에도 부근에 있다 하는데 정확하게 모르겠다) 쪽으로 가다가 49 Sìshíwǔ 路로 갈아타고 씨지에쉬디꽁위엔 (서계습지공원 西界湿地公园 Xi jiè shīdì gōngyuán)으로. 아, 차들이 꼼짝도 못 하고 빵빵거리기만 한다. 버스들은 자전거도로와 전용도로를 넘나들면서 조금씩 전진한다. 서계습지가 항저우 서부 버스터미널과 가까워서 먼저 터미널로 가서 표를 끊기로 했다. 10시에 출발해서 12시에 도착했다. 끔찍한 이동이었다. 대체로 1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중국인들은 '펑여우, 펑여우' 하면서 친구를 찾아 클락션을 울려대지만 우리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간신히 도착했다. 예쁜 휴지통이 교통체증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 준다.

 

 

세상에 휴지통이 여행자를 위로하다니 ~

 

 

 

 

 

 

 

 

 

 

어차피 영어도 중국어가 안되니 자판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황산이 아니라 황산 툰시로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간도 오후 2시 40분으로 느지막하게 잡았다. 혹시 길이 밀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결제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더니 신분증을 단말기에 올려놓으라고 한다. 우리는 여권밖에는 없다. 허걱. 단말기의 예약 상황을 찍어서 창구로 갔다. 다행히 창구는 한산하다.

 

 

 

'워쉬 한궈렌我是韩国人 Wǒ shì hánguó rén, 워부후이한위 我不会汉语 Wǒ bù huì hànyǔ' 그렇게 말하고 사진 찍은 것을 보여주었다. 여권을 달라고 한다. 뭐라고 묻는데 모르겠다. 자기도 답답한지 그냥 진행한다. 인당 90원씩 현금으로 270원을 계산했다. 카드는 안된다고 한다. 발권된 표를 보니 맞다. 고마웠다. 학생 할인되냐고 물어볼 걸 잘못했다. 개찰구가 14번이다. 이층에 올라가서 들어갈 수 없는(버스표와 신분증과 짐 검사를 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합실을 둘러보니 저 멀리 14번 창구가 보인다. 되었다.

 

다시 터미널 앞 택시 정류장으로 나와서 서계습지매표소로 가자고 했다. 바로 앞이 서계습지인 것은 알지만 매표소까지 1km 이상을 걷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한 바퀴 돌아서 매표소 앞에 내려준다. 11원. 돈은 얼마 들지 않았지만 이것은 잘못한 일이었다. 길을 건너 서계천당으로 그냥 갔어야 했다. 그게 더 즐겁게 이 생태공원을 돌아보는 방법이었다.

 

 

 

 

 

 

 

 

 

 

 

 

 

 

 

인당 입장료 80원 + 전기 보트 60원 = 140원 x 3명 = 420원. 중국에 와서 최고로 비싼 돈을 지불했다. 우리보다 소득이 훨씬 낮아 보이는 중국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표를 끊는다. 참 부자로구나. 발바닥이 아픈 우리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어 이 방법을 선택했다. 조용하고 깨끗했다.

 

 

 

사실 다른 대안이 있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80원)을 끊고 들어가서 한 정거장을 걷거나 전기차(5원)를 타고 한 정거장을 가면 거기에 사공이 노를 젓는 나룻배가 나타난다. 시간당 100원에 차를 주문해서 마시면 나룻배 유람여행을 할 수 있었다. 중국인의 그런 모습만을 보고 내가 해 보지 못했으니 정확하게 가격을 알 수가 없다. 분명 운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저 사공 아저씨와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따뜻한 봄볕에 차 한 잔 나누며 슬슬 유람하다 보면 많이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공원은 엄청나게 넓고 우리는 배를 타고 이동해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매화의 꽃망울 찾기 시합을 하며 산책을 했다. 다리가 아프면 다시 배를 타고 다음 선착장으로 이동해서 밀가루 부침개를 사 먹고 허기를 달래며 다시 이름 모를 풀꽃들 속을 거닌다. 그러다 배를 타고 다음 선착장으로 가서 물이 휘돌아 나가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오카리나를 불며 휴식을 취하다가 산책을 하고 다시 배를 탄다. 그렇게 반나절을 돌아다니며 놀다 보니 어느덧 그 넓은 습지공원을 다 돌아보았다. 여행의 피로로 발바닥이 아파서 그랬지 하루 여행이었다면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

 

 

 

 

 

 

 

 

 

 

 

 

 

 

 

 

 

습지를 빠져나와서 택시를 타고 '허팡지에'를 가자고 했더니 잠시 고민을 한다. 타란다. 잘 나가던 택시가 갑자기 정체된다. 한참이나. 저 앞에서 차를 세우라고 했다. 길이 밀리는데 여기서 멈추라고 하면 되느냐고 따지듯 말한다. 그러면 왼쪽으로 꺾어서 세우라고 했다. 뭐라고 불만을 토로하더니 알았다고 한다. 불친절하게 마구 쏘아 부치더니 요구를 들어준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 말을 들은 것이 잘한 일이었다. 36원이 나왔다. 50원을 줬더니 중국말로 막 뭐라고 떠든다. 용케도 '이콰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1원 동전을 건넸더니 15원을 거슬러 준다. 좀 친절했으면 5 콰이는 팁으로 주었을 텐데. 다음 손님이 바로 차에 오른다.

 

 

 

왜 막혔는지 궁금했는데, 바로 시후 西湖 Xīhú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읽기로는 씨지에 쉬디西界湿地 Xi jiè shīdì 가 시후 바로 옆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택시로 30위안 거리로 20분 정도 마구 달린 거리다. 제대로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 

 

아, 그나저나 잘 됐다. 시후는 항저우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워낙 넓어서 관광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곳에 내리게 된 것이다. 사람의 물결, 차의 물결, 전기 오토바이의 물결과 함께 모든 것이 시후로 흘러 들어간다. 와, 사람만 많다. 시후도 거대하다. 그러나 호수에서 아직 감동을 느껴본 적은 없다. 바이칼은 다를까. 됐다. 삼십 분 정도 쉬면서 조명이 밝아지는 시후를 구경했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허리가 아프고, 사람이 많아 무서워하는 그리미의 반대로 포기했다. 자전거를 탔다고 해도 전혀 다른 볼 것은 없었으리라 믿는다. 가되 아니 가도 괜찮다.

 

 

 

실컷 앉아서 사람들의 물결을 구경하다가 다시 버스를 한 번 더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 쪽은 길이 밀리지 않았다. 항저우 구도심과 달리 창지앙 이남에 있는 치앤탕지앙 钱塘江 Qiántáng jiāng을 건너 새로 개발된 지역이다 보니 도로도 넓고 사람도 덜 사는 모양이다. 치앤탕지앙이 한 강 정도의 넓이라서 창지앙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창지앙은 항저우로 흐르지 않고 난징에서 바로 동지나해로 흐르는 모양이다. 중국 역사의 심장부 창지앙의 역동 치는 물결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월왕 구천이 남의 부모 묘에서 3년 간의 묘지기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구걸한 것은 아버지 합려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자 구천은 범려의 앳된 부인 서시를 이용해 오왕 부차의 최대 지략가인 오자서를 제거하는 작전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날아가는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떨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던 흉노 선우의 왕비 왕소군(한나라 선제의 후궁)에 뒤지지 않은 미모를 가졌던 서시는 헤엄치는 물고기가 꼬리 짓을 멈추고 가라앉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시가 물고기를 놀려주던 곳이 바로 이곳 시후였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서시가 부차에게 '왕께서는 오자서보다 병법에 능하다'고 칭찬을 하며 자만심을 부추긴다. 10년에 걸친 이간계로 오만한 마음이 든 부차는, 깐깐한 오자서의 충언이 귀에 거슬려 그에게 자살을 명령한다. 오자서는 자살을 하면서 오나라의 멸망을 볼 수 있게 자신의 눈을 빼서 성벽 위에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오자서가 죽고 나서 월왕 구천은 손쉽게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를 자진케 한다. 부차는 '죽어서 자서를 어떻게 보겠냐'며 한탄했다고 한다.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부차와 오자서에 비해 미인계를 기획한 범려는, 월왕 구천의 곁을 떠나 제나라에 가서 서시와 즐거운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미인박명인 것은 어리석고 오만한 자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판 어리석은 미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천하절색이었던 서시나 왕소군 모두 천수를 누렸다고 하니 사람은 역시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리미를 집에서 쉬게 하고 우주신과 함께 쌈채소와 맥주와 빵을 사러 갔다. 애플맵의 정보에 따라 20분 이상을 걸어 슈퍼마켓에 도착했더니 사랑을 속삭이는 서양 젊은이들이 두 쌍이나 북적이는 작고 평범한 편의점이다. 먹고 싶었던 야채는 없었다. 애플 지도로 검색한 최초의 실패다.

 

 

이제는 나의 눈썰미다. 오며 가며 보아 둔 야채가게로 가기로 했다. 애플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도 바로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세 정거장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6원을 내고 버스를 탔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두 번이나 본 것이기 때문에 맞으리라 믿었다. 시간도 7시가 채 못되었으니 아직 문을 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찾았다. 오이, 쌈채소, 살라미, 치즈, 물 4리터, 맥주 2캔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도 푸짐하게 샀다. 카톡으로 명동 한국음식으로 내려오라고 그리미에게 연락한 후 우리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려운 고비를 다시 잘 넘겼다. 

 

불고기 2 접시, 부대찌개 한 냄비, 소주 한 병, 쌀밥 3개를 주문하고, 슈퍼에서 산 고량주를 함께 마셔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한다. 어제 보다는 덜 맛있었지만 여전히 훌륭했다. 214원으로 항저우에서 마지막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왜 고기를 냉동상태로 파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중국인 아주머니의 친절한 모습은 우리네 아주머니를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 번 연속해서 한식을 먹지는 말아라. 오늘의 교훈이다.

 

샤워를 하고 일기를 쓰려고 했으나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침대 시트는 새로 갈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잘 잤다, 아주 따뜻하고 조용하게. 역시 우리 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