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시에 숙소를 떠나 버스 터미널에서 시간을 떼우기로 했습니다. 어제 사가지고 온 야채를 씻어서 소세지를 잘라 고추장 양념과 함께 싸 먹었습니다. 맛이 참 좋았습니다. 누룽지도 아주 뜨거운 물을 끓여서 보온 도시락에 넣고 불렸더니 맛좋게 익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특히, 어제 명동 한국식당에서 가져 온 고추는 앞부분 덜 매운 것은 그리미가 먹고 뒷부분 매운 것은 무일이 먹었습니다. 하오취. 이제는 감탄사도 중국어로 나옵니다. 따지앙뚱취(大江東去).
밥을 먹고 우아하게 한국산 커피 루카까지 타서 마셨는데도 10시 반이 될까 말까입니다. 우주신에게 그저께 받은 영수증을 주면서 보증금을 받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미도 우주신도, 무일이 가기를 원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다 큰 아들 놈을 두고 늙은 애비가 잡일을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젊은 놈답게 일처리가 빠릅니다. 금방 돌아오더라구요. 그저께와 같이 유연한 대처방식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사무실에 그가 있었고, 영수증을 내밀자 124원을 정확하게 거슬러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집을 떠나자니 약간 서운합니다. 이제야 항저우를 이해했는데, 제대로 산책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창밖으로 한산해진 집주변을 둘러봅니다. 영화의 거리에서 우리를 환영해 주던 마릴리 먼로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제 손도장을 찍어서 남기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에 누구도 함부로 밟지 않게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정말 좋아 하더군요. 혹시 확인이 필요하신 분은 셩광따도 영화의 거리에서 무일농원을 찾아 보시면 됩니다.
다시 195路 버스를 타고 갑니다. 남송 거리까지 30분 정도에 도착했습니다. 항저우의 수로가 흐르고 앞쪽으로는 남송의 거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남송 거리를 조금 걸어보고 싶지만 터미널 버스 시간이 있어서 102路 버스로 갈아타야 합니다. 1002번 버스가 옵니다. 어라. 언뜻 스쳐가는 안내판에 '참'이 있습니다. 물었습니다. '후처시짠' 안 간답니다. 잘못 물었습니다. '치춰시짠'이라고 물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택시를 탈 때 확인해 보니 그것도 틀렸습니다. '항저우시짠 취마'
서계습지를 향하는 버스는 매우 난폭하게 운전합니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고 차멀미가 심한 그리미에게 그렇습니다. 아주 여유있게 출발을 했기 때문에 무작정 내렸습니다. 다행이 작은 공원앞 이었습니다. 동백과 장미가 핀 작지만 호젓한 공원을 즐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공원 옆을 흐르는 수로에는 강태공 두 분이 자리를 자고 있고 몇 사람이 둘러 싸고 오늘의 조황을 묻고 있습니다. 바구니를 보니 텅 비어 있습니다.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나나누는그들은 마을의 침구들인 모양입니다. 커피 한 잔을 타 들고 가서 나눠 마시려 했지만 커피는 좋아하시지 않는 답니다. 저도 낚시대가 두어 번 바꿔지는 동안에 더럽게 보이지만 고요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쉬고 있는 그리미의 머리를 받쳐주기 위해 공원 벤치로 돌아갔습니다.
서계습지공원 앞의 항저우 서부터미널은 사람이 많습니다. 번역기를 이용해 멀미약을 사서 먹은 뒤에 습지공원의 서계천당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고 잠깐 산책을 했습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아이들 동화책을 팔기에 윤영이를 주려고 한 권 샀습니다.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중국어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공원은 주민들의 놀이터인 모양입니다. 낚시를 즐기시는 분들 말고도 여기저기서 카드놀이가 한창입니다. 의자를 들고 가시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카드 놀이 참가용 필수품입니다. 장바구니에 접이식 의자와 먹을 것까지 싸들고 나오신 아주머니는 귤을 하나 까서 이사람 저사람 나눠 주더니 바로 게임에 참가합니다. 인생에 여유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리미의 멀미는 가라앉을 줄 모릅니다. 우주신과 저는 준비해 온 빵과 홍차를 마시며 요기를 합니다. 그리미는 못 먹겠다고 해서 머리맡에 두었는데, 노숙인이 따로 없습니다. 좀 예쁘고 깨끗하기는 하지요.
그래도 무사히 회복되어서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서계천당으로 가는 길에서는 미소까지 돌구요. 역시 여행은 이런 고비가 있어야 재미가 있습니다. 항상 그런 어려움이 그리미에게만 닥친다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항저우에서 황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차도 별로 없고 도로도 잘 닦여 있어서 신나게 쑥쑥 잘 갑니다. 단 한 번의 휴식으로 버스 안의 손님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4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화장실을 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터키 물병 사건 이후로 처음 봅니다. 이번에는 준비를 잘 해서 여유있게 초조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점점 어두워집니다. 애플 지도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타고 황산 꿔지 다쥬디안(黄山国际大酒店 huángshān guójì dajiǔdiàn)을 찾아갑니다. 호텔 앞 다리가 참으로 근사합니다. 결혼 예식이 있었던지 제법 차가 많습니다만 투숙객은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비수기이니 감내해야겠지요. 친절하고 품위있는 응대를 받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트윈룸에 추가 침대를 하나 더 깔고 나니 비좁은 듯 보이지만 큰 문제 없습니다. 호텔에서 살 생각은 아니니까요. 욕실 깨끗하고, 조식 부페가 맛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황산 도착해서 저녁 식사하고 들어오느라 늦었습니다. 3원(540원)을 벌기 위해 목이 터져라 매달리는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았습니다. 걸으려고 했는데, 간절한 그들의 외침이 부담스럽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오토바이 툭툭이에 올랐습니다. 3콰이라고 합니다. 세 번을 더 확인했습니다. 혹시 산시콰이라고 하는 것을 잘못 알아 들었을까 봐서요. 어디로 가겠냐고 물으시는데, 한국인이니까 한국식당으로 가시겠다고 하시는 것같아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씩씩하게 중앙선을 넘어 자전거 도로로 갑니다. 다행이도 왕복 2차선입니다. 5분에서 10분 사이를 달리는 동안 우주신은 손잡이를 꼭 잡습니다. 곧 차와 부딪혀서 전복될 것같은 느낌이랍니다. 185가 넘는 키를 구겨 넣었으니 무리도 아니지요. 그리미는 작은 차에 세 식구나 탄 것이 미안하다며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무일만 신이 났습니다. 드디어 새로운 탈 것을 탔다. 지금까지의 중국은 내가 그리던 중국이 아니다. 아쉽게도 금방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5원을 건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 식당 밖으로 나왔더니 기다리고 계시더라구요. 빵사러 갔다가 오겠다고 했더니, 그러마고 돌아서시는데 약간 힘이 빠진 듯. 내일 황산에서 먹을 빵을 사서 30분을 걷다가 돌아와서 아주머니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앞집 가게 아주머니가 반가워 하십니다. 앞집 아주머니에게 우리가 혹시 와서 자기를 찾으면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더군요. 전화를 받고 금방 달려 오시더군요. 우리는 왕복 10원(1,800원)을 드렸을 뿐인데, 그렇게도 밝게 웃어 주시더라구요. 사는 게 다 즐거운 일입니다.
진달래 식당은 이곳 라오지에에서는 유명한 곳인 모양이에요. 조선족 아주머니가 사장님. 삼겹살 한 접시, 양고기 한 접시, 김치찌개 1인분, 계란말이 하나로 풍성한 식탁을 차렸네요. 어제 먹다 남은 고량주도 마시라 해서 술값이 빠지니 174원으로 잘 먹었습니다. 삼겹살이든 양고기든 모두 같은 가격 45원이고, 전부 냉동이니 고기의 품질은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툰시가 작은 도시라 했는데, 굉장히 넓고 버스나 택시도 많고 상점들과 오래된 거리들까지 활기차고 넓은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도 큰 도시인 것이 중국입니다. 한국의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듯한 빵집의 빵이 참 다양하고 입맛에도 맞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잘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오래 걷고 싶었지만 내려오는 날도 시간이 많으니 오늘은 산행을 위해 쉬기로 했습니다. 지나는 길에 보니 마사지숍들도 아주 저렴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시 내려와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기쁩니다.물론 계획은 계획일 뿐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 해야하니 짐을 다 싸놓아야 합니다. 5성 호텔인데도 트읜룸이 280원이고 침대를 추가하니 430원입니다. 참으로 저렴한데도 서비스가 훌륭합니다. 영어도 무난하여 의사소통이 잘 됩니다. 제대로 못 알아 듣는 내가 문제지. 술이 얼큰한데도 별로 피곤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쉬고 싶지만 짐을 전부 싸두어야 황산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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