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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중국 난징황샨항저우하이

[겨울황산여행] 세상의 착한 사람들은 대체로 순수하다_170104

안개가 자욱하나 비는 내리지 않는다. 서해대협곡이 폐쇄되었으니 산꼭대기를 한 바퀴 돌아오면 좋겠다. 일출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푹 잤다. 한가로움을 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바이윈 白云 báiyún 빈宾馆 bīnguǎn을 취소하고 황산 시내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는데 1,000콰이(18만원)을 버리느니 그에 합당한 여유를 누리고 몸을 쉬기로 했다. 정상 쪽만 한바퀴 돌려고 해도 시간은 꽤 걸릴 것이다. 시신봉의 멋진 모습이 다시 그려지며 미소가 절로 난다. 콜롬비아에서 남미 여행을 즐기고 있는 처제는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갔는데 갑자기 이해도 못하는 축제가 열려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바람에 한가로움을 빼앗겨 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거저 얻었다.








 

오후에 숙소로 들어갈수 있으니 점심 준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커피와 율무차면 충분하다. 많은 숙소에서 잠을 자 봤지만 뻬이하이 삔꽌의 family room처럼 귀여운 숙소는 처음이다. 귀여운 효빈이와 함께 왔으면 좋을 뻔했다. 숙소 자체가 즐겁다. 귀여운 효빈이 대신에 거인 아들이 올라가서 삐꺽대고 있는 것을 빼고는. 샤워도 귀찮으니 세면기에 머리박고 씻는다.

 

50원하는 아침식사(숙소비에 포함). 싸지는 않지만 그런데로 먹을 만하다. 쌀을 많이 넣은 팥죽이 특히 맛있었다. 만두도 거의 중국향이 느껴지지 않아 맛있다. 커피도 하계의 것들은 너무 진해서 마시기 어려웠는데 선계의 커피라 입맛에 맞는다. 홍차도 부드러웠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다. 다행히도 시야는 충분히 확보된다. 9시 50분에 보증금 100원을 받고 뻬이하이 삔꽌을 떠난다. 그냥 떠나기가 뭐해서 프런트의 아가씨들에게 오늘 공부한 중국어를 말해 보겠다고 했다. 기대에 찬 눈빛들.

 

'띠엔시야 우야 이빤 흐이'

'천하의 까마귀들은 대체로 검다.'

은유로 '세상의 나쁜 놈들은 대체로 악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


환하게 웃으며 보내준다. '짜이찌엔' 

세상의 착한 사람들은 대체로 순수하다.








 

원래 계획은 배운루로 해서 서해대협곡 입구까지 갔다가 한바퀴 돌아서 광명정을 거쳐 바이윈(白云 báiyún) 빈꽌으로 가려고 했는데, 11시경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 때문에 경로를 수정했다. 더 중요한 이유는 황산 안내지도를 호텔짐에 넣어두고 와서 애초 계획된 동선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산은 아래쪽 보다 위쪽으로 날씨가 좋다고 한다. 


높은 고지라 여겨지는 백아령으로 해서 광명정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백아령까지는 어제 걸었던 길이니 무난하다. 시신봉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구름 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고 떠나는 나를 환송해 주었다. 광명정까지의 계단길은 평화로웠다. 옅은 안갯속을 걷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았고, 보여줄만한 아름다운 그림은 다 보여주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로 향하는 길. 길이 끝나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작은 깨달음 하나라도 얻을만하다.

 

갑자기 광명정 쪽에서 엄청난 인파가 내려온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인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젊은 친구들이었다. 시끄러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사람 모습이라 반가웠다. 그들 덕분인지 힘들다는 광명정 구간을 쉽게 올랐다. 해발 1,860m. 제일 높은 화장실에서 잠시 볼 일을 보았다. 지금껏 본 화장실은 정말 깨끗하게잘 관리되고 있었는데,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이 이용해서인지 지저분했다.





 







광명정에 도착했다. 중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순서도 지키지 않고 막 치고 들어와서 사진을 찍는다. 중국 누렌女人 Nu Ren들은 사진 찍을 때 대체로 예쁜 서시처럼 포즈를 취한다. 폐가 아픈 듯 손을 모아쥐고 눈썹을 약간 찌푸리는 자세다. 그런데 이 분은 호방한 성격인 모양이다. 대장부의 자세를 취한다. 아무튼 좋았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돌게 한다는 것. 유쾌한 일이다.







기상대가 아주 근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1년만 근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바이윈 빈꽌은 광명정 바로 아래에 있었는데 입구가 아담하고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가격은 엄청 비싸다. 서비스는 훌륭하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부의 문을 열어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프런트도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 준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바로 체크인을 해 준다. 뻬이하이와 같이 보증금 100원을 현금으로 받는다. 일찍 따뜻하게 쉴 수 있다고 그리미가 제일 좋아한다.





비에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휴식을 취했다. 점심으로 누룽지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오는 길에 황산시에서 산 빵도 나눠 먹었더니 배속이 든든하다. 싱글침대 3개가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 있다. 일단 방에서 와이파이가 잘 잡힌다. 속도는 느리지만 카톡이나 인터넷 접속은 원활하다. 푸욱 쉬었다. 


급하게 서두르다가 옷걸이째 입어 버렸다. 유사 이래 박씨 가문에 처음으로 일어난 일대 사건이다.





2시가 되어 일어났다. 서해대협곡의 남쪽 출입구까지 내려갔다 오기로 했다. 그곳에 뿌샨챠오步仙橋 Bù xian qiáo가 있다. 비는 아직도 내리지 않고 앞을 가늠하기 좋을 정도의 안개가 선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해지는 시간은 5시 반. 현재 시간은 3시. 한 시간 동안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산책을 했다. 그 다음부터 그리미의 불안한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생명에 대한 본능, 안전에 대한 본능. 어서 내려갔다 어서 올라오자고 한다. 내려오는 길의 끔찍한 낭떠러지 길들과 점점 굵어지는 듯한 빗방울이 그런 마음을 더 강하게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참 아름다운 길이었다. 초입이 이러니 본길은 얼마나 대단할까 궁금해진다. 뿌샨챠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안개는 짙어지고 있는데, 길은 외길인듯 외길이 아니다. 멈춰 서서 길을 찾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주변에는 인기척 하나 없다. 믿을 것이라고는 안내판과 애플 지도다. 멈추고 또 멈추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아름다운 경치에도 그리미의 걱정은 점점 더 커졌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황산에 버려진 느낌을 받는다. 허겁지겁 오르고 또 오르고 숨이 막히지 않는 한 뛰다시피 걸어 올랐다. 실내 자전거를 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리미의 등산 실력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4시 반에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124층 12,000보를 걸었다. 간단히 세수하고 젖은 머리를 말린 후 로비로 갔다. 우리 가족의 편안하고 안전한 휴식을 위해 호텔의 모든 직원이 동원된 듯하다. 프런트 2명 문 1명 로비 1명 공안 1명 등. 따뜻하다. 15원하는 칭따오 맥주를 3캔 시켰더니 유리잔까지 가져다 준다. 단 차가운 맥주는 없다고 한다. 마른 안주는 주지 않아서 소세지 세개와 과자 하나를 준비해서 마셨다. 적당히 술기운이 오르니 기분도 한층 좋아진다.휴족시간을 가졌다. 깨끗이 몸을 씻고 서로의 다리를 마사지하며 3일차 산행을 준비했다.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할 일이 없어서 슬슬 호텔을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예약한 트리플룸의 가격이 무려 2,800위안(50만원)이라고 붙어 있다. 우리는 1,090원에 예약하고도 중국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라고 투덜댔는데 말이다. 어제 묵었던 뻬이하이 빈관도 스탠다드 더블이 1,800원에 추가 침대 240원까지 하면 2,000원이다. 우리는 760원에 예약했다. 시트립이 여행사이트라서 이런 가격에 팔 수 있는 모양이다. 흠, 도대체 이런 가격체계는 무얼까. 혹시 우리나라의 롯데호텔이나 신라호텔도 어떤 여행사를 통하면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한참을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저녁 준비를 했다. 먼저 소형 컵라면. 물은, 직원이 올라와서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끓여 마시면 된다고 해서 펄펄 끓여 보온병에 넣어 먹었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 소형 컵라면을 뜯어서 내용물만 비닐에 담아 가지고 왔다. 보온 도시락병은 정말 유용하다. 물의 온도를 유지해 주는 기능이 매우 쓸모가 있다. 국내 여행을 다닐 때에는 2리터 보온병을 가지고다녔는데, 그것보다 유용하다. 아이들 수능볼 때 도시락 싸주려고 산 것인데, 제대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한다. 오이 한 개를 셋으로 쪼개어 고추장에 찍어 김치를 대신하였다.

 

어제처럼 오뚜기 즉석밥을 2개 준비하고, 오늘 처음 먹어보는 오뚜기 사골 우거지국도 보온병에 준비했다. 2개의 보온병에 1개씩의 파우치를 넣고 400cc 정도의 끓인 물을 붓고 뚜껑을 꽉 막은 다음에 한참을 두었더니 우거지국 냄새가 솔솔 난다. 밥과 함께 먹었는데 맛이 예술이다. 역시 오이 한 개를 세 조각으로 나눠 고추장에 찍어서 김치를 대신했다. 국속의 우거지도 양은 적었지만 채소의 부족을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참 잘 먹었다.

 

서울에서는 조카와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코트도 사 드리고 저녁도 먹고 조카 생일축하 케익도 자른 모양이다. 처가집에서도 처제의 생일 축하가 있었다.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손아래 동서가 처제를 위한 케익을 사왔다고 한다. 가정사에 기록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