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여행할 때처럼 너무 멋진 아파트를 빌리는 바람에 혹시 상하이에도 이런 숙소가 있을까 다시 검색을 해 봤다. Booking.com과 Ctrip을 다 뒤져도 이곳처럼 멋지고 크면서도(100㎡) 잘 갖춰진 집이 없다. 덕분에 새벽 두 시까지 소득없이 잠만 설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8시는 어김없이 왔고, 눈을 뜨고 일어나려 했으나 몸이 너무 무거웠다. 잠을 잘 잔 그리미가 먼저 설치고 다니며 아침 준비를 해 놓아서 고마운 마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천인석이라는데 과장이 심하다. 오끼나와의 만좌모처럼. 넓은 바위가 드물기는 한 모양이다. 단 하나의 몸둥아리로 이루어진 바위에는 늘 이런 별칭들이 붙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니 황산의 바위들이나 설악산의 공룡능선, 수락산, 백운대와 인수봉, 도봉산 포대능선의 바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인가. 금강산은 보지 못해서 말할 수가 없다. 진작에 다녀왔어야 하는데, 부모님 모시고. 남북관계가 풀리면 바로 다녀오게 적금을 들어야겠다. 제주도의 구럼비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한 덩어리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해군기지 때문에 파괴되고 말았지만.
길을 걸으며 경치를 보지 말고, 경치를 보며 길을 걷지 말라. 황산 서해대협곡에 꼭 어울리는 말인데, 이곳에도 적혀 있다. 쑤저우의 대평원과 낮게 흐르는 운하와는 달리 높은 산이 펼쳐진 이곳 후치우(虎丘 Huqiu)의 산세는 이런 말을 할 만하다. 오를 수록 빗줄기가 굵어진다.
오뚜기 진라면 3개를 끓이고 어제 남긴 미판과 즉석밥 한 그릇까지 상추를 김치 삼아 깨끗이 처리했다. 후치우를 오르기 위해 미리 타이레놀도 한 알 먹고 통증이 심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비가 살살 쏟아지는 집밖으로 출발. 먼저 은행을 들렀다. 해 봤는데, 카드로 중국 개인통장으로의 입금(숙소비)은 불가하다. 은행창구를 통해 입금을 하려 했으나 창구는 문을 열지 않았다. 시내에 나가 보아야 할 모양이다. 버스를 타러 가려는데, 비도 많이 내려 후치우타까지 택시로 가기로 했다. 팁 3원까지 포함해 51원. 입장료는 60원인데, 이번에도 우주신은 학생 할인을 받아서 셋이 합쳐 150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냥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권까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드디어 쑤저우에서 4전 5기로 학생 할인에 성공했다. 언제나 학생 입장료 할인 되느냐고 묻는 나에게, 아빠는 왜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 하느냐는 우주신의 공격에 이제 당당해 질 수 있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아주 가끔 열릴 때도 있다.
지안취(剑池 Jianchi)까지 제법 가파르게 올라가지만 는개(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비 / 다음사전)가 내리는 고즈넉한 풍광이 좋아서 쉽게 올랐다. 오나라의 강력한 군주였던 합려. 칼과 함께 묻히는 기분은 어땠을까. 모든 파괴와 살육의 근원을 청소하는 느낌이었을까. 통쾌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강한 것들의 원천인 무력을 제거해 버리면 세상은 평화롭고 공평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전제로 했으니 틀렸다. 평화는 쉽게 오지 않고, 무관심하면 지켜지지도 않는다.
지안취는 오왕 합려의 무덤이면서 춘추시대(기원전 771 ~ 기원전 453) 패자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킨 곳이다. '나무위키'의 이야기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오나라는 합려와 그의 아들 부차 때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복수의 화신 오자서(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 초나라 평왕에게 복수하려 했다)의 도움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합려는, 중원의 문물과 인재를 등용하는데 적극적이었으며, 제나라 사람 손무(손자병법의 저자)도 합려에 의해 초빙되어 중용되었다.
합려는 초나라 망명객인 오자서를 등용하여 초나라를 멸망 직전으로까지 몰아넣고, 오자서는 평왕의 시신을 파내어 채찍질을 하는 복수극을 완성한다. 합려의 활약은, 초나라 신하인 신포서의 개입으로 진(秦)나라의 지원군이 밀려오면서 꺽이기 시작한다. 오의 수도가 빈 틈을 노린 월나라 왕 윤상이 기습 공격을 감행하고, 자신의 동생인 부개가 봉기까지 일어키자 어쩔 수 없이 후퇴하게 된다. 합려는 이를 설욕하기 위해 월나라 윤상의 아들 구천에게 전쟁을 걸다가 전사한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오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월나라를 치러 가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한 월왕 구천이 목숨을 구걸한다. 오자서는 반대하지만 자신감에 찬 부차는 구천을 살려서 종으로 부리다가 월나라로 돌려 보내준다. 구천은 월의 충신 범려를 등용하여 경국지색인 서시를 오왕 부차에게 바치는 미인계로서 마침내 오와 부차를 패망시켰다.
범려의 계책은 단순하다. 오에서 오자서 못지 않은 지위를 갖고 있던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갖다 바쳐 오자서의 영향력을 조금씩 갉아먹는 한편, 오자서를 어려워하던 부차와 오자서 사이를 서시를 통해 이간시키는 데에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서시가 왕께서는 오자서 보다도 뛰어나다고 계속 속삭이면서 부차의 자만심을 부풀게 한다. 계략에 걸린 오자서는 부차에게 자결을 강요당하자 자식을 제나라에 맡기고 자결한다.
오나라는 전쟁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기존의 전쟁이 '전차를 몰 줄 아는 소수의 귀족들' 중심이었다면, 평지보다는 늪과 숲이 많았던 지형의 영향으로 다수의 평민 보병들을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시킨다. 이것은 보병 전술을 중요시한 손무의 전략과 시너지를 이루어 주변국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춘추 5패의 명예를 얻게 한다. 전국시대부터는 중국의 전쟁 패러다임이 완전히 보병 위주로 변화되었다."
- 나무위키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
후치우타는 높이 솟아서 기울어져 가고 있다. 피사의 사탑 만큼이나 강렬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거대하고 멋진 탑이다.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탑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던 그 학생은 벌써 스무 장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 것같다.
후치우타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가니 고즈넉한 찻집과 정원이 나타난다. 멋지다. 단체관광객은 저 위 후치우타에서 다시 되돌아 내려가고 일부 사람들만 이쪽으로 넘어온다. 입장료가 60원이나 되어서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이쪽으로 오게 된 것은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는 정보 때문이 아니라, 3호선 관광전문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북적대는 일반 버스말고 관광객 전용버스로 이동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좋은 구경거리를 덤으로 얻게 되니 고마운 일이다. 북쪽문으로 나오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후치우타의 모습은 더욱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멋진 일이다.
중국답지않게 세련된 우산과 비옷이라 생각했더니 우리나라 아이다. 같은 미키마우스라도 내눈에는 우리 것이 아직은 수준이 높아 보인다. 이 또한 편견일 것이다. 어쨌든 그동안의 여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 어렸웠는데, 이곳을 기점으로 샹하이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말을 들을 수 있어서 참 기뻤다.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
3호선 버스는 인당 3원인데, 좌석도 훨씬 편안하고 곧바로 쭈오쩡위안(拙政园 Zhuo Zheng Yuan)으로 데려다 주니 버스를 갈아탈 필요도 없다. 이 정보를 애플지도에서 바로 얻을 수 있다니. 도대체 이 정보들은 어떻게 수집되고 입력되는 것인지 신기하다. 그나저나 아들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편안하게 여행하다가 나중에 우리 둘이 여행을 하게 되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부싸움을 해도 아들들이 중재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도 잘 넘기고 있는데 말이다. 이래서 남자들은 나이들수록 자식들에 더 의지하게 되는 모양이다.
어이쿠 또 정원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거닐만하다. 크다. 매화향기가 그윽하다. 그 노란꽃이 매화일까. 이 겨울여행 내내 우리를 달콤하게 따라다니며 여행을 즐겁게 한다. 붉은 색 매화는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못했다.
제법 오랜 시간을 달려 샨탕지에를 거쳐 쭈오쩡위안으로 간다. 버스 안의 편안한 좌석에서 푸욱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제일 앞자리가 조금 비좁았지만 고개를 바로 하고 중국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앞자리로 옮기다가 손목에 길게 상처가 났다. 그리미는 점잖지 못하게 촐삭거리며 다니다가 꼭 사고를 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그래, 자제를 하는 것이 맞다. 여행은 원래 흥분되는 것인데, 침착을 유지하는 그리미와 우주신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어제는 고량주의 병마개 따기 연구를 하다가 왼손 검지 끝을 베었다. 마침내 병마개 따기의 비밀을 알아 내었으니 영광의 상처다. 그 상처가 나기 전까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뚜껑이 열리고 백주의 맛을 볼 수 있을지 몰랐다. 너무 답답해서 하마터면 옆집 변호사 친구의 벨을 누를 뻔했다. 그는 집주인의 친구라 했으니 궁지에 빠진 나를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류해도 계속해서 연구를 하다가 상처를 입었고, 상처가 나면서 깨달음을 얻어 병마개를 열 수 있었다. 마개 부분을 파괴해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것 참. 어쨌든 병에다가 다른 싸구려 술은 넣을 수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호텔 조식부페가 아니어서 부족한 아침이었든지 쭈오쩡위안에 도착했더니 배가 출출하다. 어느 블로거가 추천한 유명 면집을 찾아 가기로 했다. 우주신이 검색해 보니 200미터 정도라고 해서 과감하게 길을 나섰다. 잠깐 그친 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과감하게 속옷과 운동화를 내걸고 말리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어렵지 않게 쭈홍씽(朱紅興 Zhu Hong Xing) 면관을 찾았다. 우육면 두 개와 만두 한 판을 시켰는데, 다 먹기가 힘들 지경이다. 엄청난 맛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대체로 틀린다.
방콕 왓 아룬의 아저씨가 파는 햄버거는 정말 엄청난 맛이었다. 지난 번에 다시 방콕을 방문했을 때 그분을 만나지 못해 정말 아쉬웠다.
고추장과 김가루로 한국식 국물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뜨거운 물을 부어 간을 맞춰야 하는데, 대화가 되지 않아서다. 비를 많이 맞아서 정신이 혼몽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배부르게 먹고 다시 쭈오쩡위안으로 간다. 입장료가 겨울이라 70원이고, 학생 할인을 받아서 175원에 거대한 정원 구경을 한다. 이 집안은 이 정원을 만든 뒤로 풍지박살이 났다고 한다. 늙으신 아버지를 위해 수많은 나부들을 살게 했다는 아들의 빗나간 효심이 빚은 결과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부와 권력이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개인에게는 허망할 뿐이다. 아무튼 훌륭하다. 이 정원이 마지막 정원이어서 우리는 매우 피곤했다. 용감하게 2주간의 배낭여행을 온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곳 정원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젊은 그들은 샹하이의 도심에 질려서 쑤저우의 자연을 보러 왔다고 한다. 샹하이에 가게 되면, 타이캉루와 디즈니랜드를 가면 좋을 것이라고 정보를 주었다.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다. 부디 여행 잘 마쳤기를.
화장실 들어가는 길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남여 화장실의 손씻는 곳의 유리 한 장이 깨어져 있어서 그전에는 전화로 소통했던 가족들이 이제는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리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슷해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들. 평생동안 볼 정원을 지난 일주일 동안 다 본 느낌이다. 어쨌든 좋았고, 우체통과 우편엽서가 보여서 다리도 쉴 겸 고국으로 엽서를 보냈다. 부모님께, 그리고 사랑하는 천재에게. 6시가 다 되어 가면서 마감 안내 방송을 한다.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더 돌 수 있는 기력도 없어서 우리도 사라져 주기로 했다. 이제 이곳은 새들과 잉어와 다람쥐와 나무들의 정원이 될 것이다.
하경미의 '중국여행지 50'을 보면 항저우와 쑤저우는 2월이나 11월에 오면 좋다고 되어 있다. 한창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매화들이 활짝 피고, 겨울에도 여전히 싱싱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동백꽃들을 보면 그 말이 맞겠다. 싶다. 3원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야경이 목적이었던 산탕지에(山塘街 Shan Tang Jie)로 갔다. 길이 적당하게 막혀 주어서 아픈 발을 쉴 수 있었다.
담백한 마음으로 살기 위한 정원이라. 구호가 좋다. 오른쪽으로 읽다 왼쪽으로 읽다 바쁘다 바빠.
구석구석 밟고 다닌다. 다 비슷한 모습인데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지경을 들여다 보고, 여행 중에 쓰러진 응급환자를 구하러 출동하는 구급차도 보다가 보니 끝이 보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중국 화장실에 대한 공포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미는 아직도 허리 높이까지도 오지 않는 화장실 칸막이에 적응할 수 없다고 하지만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화장실들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는 향불을 피워서 냄새를 죽이려고 노력한다. 소변기 하나 하나 마다 문명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자고 외친다. 그 중 재미있는 그림은 이 사진.
신년을 말들처럼 신나게 달려 보자. 정치판이 요동을 치면서 사회의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노무현 이후 8년 동안 토론다운 토론이 없었던 사회가 오랜만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짐으로써 되살아나고 있다. 국익과 종북의 틀로 반대 목소리를 잠재웠던 토론부재의 시대는 끝났다. 편의점에 가서 고량주 한 병을 사다 여행이 잘 진행되고 있음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스마트 TV로 보지 못했던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았다. 율무차를 마시며 일기도 정리했다. 고층 아파트의 창밖으로 자동차 불빛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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