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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중국 난징황샨항저우하이

[겨울 상해여행] 천둥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_170108

가을동화의 슬픈 이야기, 눈물 쥐어짜는 이야기를 보다가 목이 메어 그만 고량주를 다 마셔 버렸다. 안주로 사온 북해도산 마른 오징어도 다 먹고, 아침에 먹으려던 빵을 최후의 안주로 삼아. 그저께 보아 두었던 식당은, 주홍흥에서 만두와 면을 너무 배부르게 먹는 바람에 외식할 빈 배가 남아있지 않아 가지 못했다. 50원도 안되는 가격에 늦은 점심과 저녁까지 해결했으니 현지식이 참 저렴하기는 하다. 한국식당에 갔으면 신나게 먹기는 했어도 200원은 들었을 것이다.

몸살기인지 근육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온 몸이 아프고 기관지도 다소 불편하다. 허리 아픈 데 먹는 약을 한 봉지 털어넣고, 그리미가 짐을 싸는 동안에, 샤워를 한다. 뜨거운 물이 콸콸 잘도 나온다. 짐 싸는 일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커피를 끓여 빵과 함께 아침을 준비했는데, 바쁜데 짐은 안싸고 먹을 것만 준비하고 사진이나 찍는다고 야단을 맞았다. 중국에 오니 중국식 부부관계가 되는 모양이다. 어느 곳에서건 여자들의 목소리는 크고 거침이 없고, 남자들은 조용히 응대한다. 아무 때나 발휘되는 내 낭만기질은 중국에서는 쉽게 용납될 수 없는 모양이다. 










출발시간 보다 30분이나 늦은 8시 반이 다 되어가니 그럴만도 한다. 택시가 쉽게 잡히니까 좋다. 중국에서 기대한 택시의 모습처럼 트렁크가 작은데도 큰 가방 두 개를 집어넣고, 트렁크도 닫지 않은 채 그냥 출발한다.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남겨 놓아야 하는데, 마음이 급한 그리미에 밀려 그냥 택시에 타야 했고, 기차역에서는 너무나 많은 차들 때문에 역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눈에 선하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나이든 기사 아저씨의 선한 웃음과 거친 손이. 차는 까오지예 高街 Gāo jiē를 타고 신나게 내달려 정확하게 50원이 되자 기차역에 도착한다.






두 번 놀랐다. 쑤저우 기차역과 상하이 호텔 로비에서. 기차역 게이트 안내판에 우리 기차만 뜨지 않는다. 뭐야, 또 다른 기차역이 있는 것일까. 인터넷으로 예약한 기차표는 어느 곳에서나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이 우리가 타는 기차역이 아닐 수도 있다.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기차표를 보여 주면서 어디에서 타는 것이냐고 묻자, 위로 올라가면 된다고 큰 소리로 말한다. 그의 손짓을 보고 추측했을 뿐이다. 그래 어차피 다른 곳이라면 20분 내에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기차는 놓쳤다 생각하고 일단 올라가 보자. 위에 있는 게시판에도 역시 우리 열차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 당황하고 있을 때, 드디어 우리 기차 게이트가 표시된다. 후유. 맞춰 보니 기차표에 표기된 B3 게이트였다. 흠, 아무래도 기본 단어 공부는 제대로 해 와야 여행이 보다 원활해지겠다.





멀고 먼 상하이 리위안(丽元 Liyuan) loft정품호텔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귀를 찢는 폭발음이 들린다. 중국에서 드디어 테러를 당하는 모양이다. 얌전히 집에 붙어 있어야했느데 괜히 돌아다녔다.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 엎드려야 하는데, 어디로 엎드려야 할 지를 몰라서 다시 뛰어 내려 사방을 둘러 보았다. 젠장. 어떤 미친 노미 호텔 로비에서 거대한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는 엑셀을 당기며 자랑질을 하고 있었다. 생긴 것도 꼭 조폭같이 생긴 녀석이. 호텔 측에서는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다. 낄낄대는 녀석들에게 따귀 한 방씩을 갈기고 돌아섰다. 맘 속으로. 천둥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살기에는, 간뎅이가 너무 작다.






점심을 먹으러 간 '춘천닭한마리' 집의 직원 이야기를 들으니 이 지역에 불법영업을 하는 가라오케가 많아서 조폭들이 많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다가 사형을 당한 조폭들도 많지만 아직도 삼합회와 같은 깡패들이 설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찍소리도 하지 말고 조용히 돌아다녀야했다. 쩝.





호텔의 프런트 직원들은 매우 조용하고 침착하게 응대한다. 우리가 12시 전에 도착한 것은 모르고 왜 이렇게 방을 안 주나 불만을 터뜨리고 있으려니 현재 청소중이니 잠깐만 로비에서 기다려 달라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기다리다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근처의 식당들을 둘러 보았다. 용감하게 들어가서 주문을 하려 했지만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지 못하겠단다. 할 수 없이 돌아나와서 춘천 닭한마리 집으로 들어갔다. 현대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꽤 큰 식당이다. 누룽지 삼계탕 한 마리와 듣도 보고 못했던 오징어 눈볶음을 주문했다. 중국식으로 변형된 음식이라 고유의 맛은 아니었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이벤트로 사랑의 자물쇠 채우기를 한다고 해서 몇 자 적었다. 농민공들이 하루 빨리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받기를 기대하며,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식사를 하고 체크인을 했다. 복층형 숙소로 꽤 재미있게 디자인을 했고, 엄청 깨끗하게 관리를 한다. 일본 자본이 들어와서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방은 밖으로 향하는 창문이 없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은 있지만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숙소다. 






짐을 풀고 한 시간 정도 쉰 다음에 기침약을 먹고 테임즈 타운으로 갔다. 숙소에서 12원의 택시비로. 참 깨끗한 곳이다. 중국스러운 느낌은 전혀 없는 짝퉁 유럽의 느낌을 주는 현대의 도시다. 가게들과 골목들이 묘한 매력이 있어서 둘러보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상하이를 떠나는  날 잠깐 와서 보려고 했는데, 우리 숙소가 다른 관광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먼저 들렀으나 추운 날씨의 산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 책방에서 두 다리 쭈욱 뻗고 편안하게 누워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부자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피자(78원, 허걱)와 스파게티(36원, 역시 허걱)를 시켜서 먹었다. 그냥 넘기기 쉬운 평범한 음식인데, 가격은 너무 쎘다. 역시 현지식을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작은 아이는 가게 문닫을 시간이 다가오자 바깥에 진열해 두었던 판매요 장난감들을 전부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아주 귀엽고 다부진 아이다. 잘 자랄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서 상하이 여행 계획을 짰다. 중국의 넓이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 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한 시간을 투자했다. 잘 짠 계획인데, 과연 어느 정도로 실행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임시정부청사도 가 보고 싶었는데, 신티엔디의 번잡함이 싫어서 일단 일정에서 뺐다. 훙커우고윈의 윤봉길 기념관도 두 번째 일정으로 잡았는데, 공원을 너무 돌아다녀서 피곤한 발이 버텨줄 지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 이번만 여행하고 끝낼 중국이 아니니 모든 것을 보려고 할 필요는 없다. 상하이 아트 뮤지엄에서 기대한 그림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따뜻한 실내에서 돌아 다니고 싶다. 아, 이제 이틀 남았구나. 시작할 때는 엄청 길게 느껴졌었는데.




길을 가던 청년 한 명을 붙잡고 가족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가며 열심히 찍어준다. 반가운 한국말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청년들에게도 우리의 존재가 익숙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