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벼베기를 했다. 어제의 출근길은, 부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보건소로, 보건소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마트로,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더니 우리 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논들이 벼베기를 끝낸 상태였다. 오늘의 일정 때문에 수요일에 벼를 베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맞춰놓은 일들이 있어서 오늘 오전에 베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마침 오늘 일정도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벼를 베기로 결정했다.
논바닥은 젖어있고, 찰벼논은 기계 들어갈 자리를 베어놓지 않아서 부랴부랴 낫을 들고 논으로 나갔다. 어제밤에 분 바람 덕분에 서리도 조금 내린데다가 오늘 날이 너무 좋아서 벼들은 작업하기 좋게 잘 말라있었다. 논바닥은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허리를 펼 틈도 없이 조금이라도 작업을 해 두려고 부지런을 떨었더니 손이 덜덜 떨린다. 너구리가 망쳐 놓은 벼들을 베어낸 후 다시 논둑에서 말려야 했는데, 계속 비가 오는 바람에 옮겨 놓지를 못해서 논바닥에서 싹이 나고 말았다. 애만 썼다. 그 녀석들 덕분에.
그 사이에 두 분은 벼를 말릴 준비를 하셨다. 그래도 마당에 시멘트 포장을 해 놓아서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린다. 보기에는 좋지 않지만 농사와 관리에는 유용하다. 포장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정원으로 잘 가꿔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감나무, 포도나무, 모과나무, 매화나무 등이 두 세 그루씩 살아 있으면 좋겠고, 꽃들도 다양하게 가꿔 놓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9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된 벼베기는 11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2시간 30분 만에 1,400평을 끝낸 것이다. 메벼는 작년에 1,600kg 정도가 나왔는데, 올해도 그 보다 더 나올 것같다. 찰벼는 병충해도 없이 잘 자랐고, 너구리 피해도 없었으며, 흑미를 심지 않은 논에 같이 심었더니 수확이 아주 좋았다. 작년에 1,200kg 정도 나왔으니까, 올해는 그보다 많을 것이다. 게다가 늦게 베었더니 수분도 많이 빠져 있어서 3일 이내만 말려도 좋을 것같다.
오랜만에 동네분들과 식사를 했다. 돼지고기 넣고 청국장을 끓여서. 오후에 작업을 해야 해서 술도 안 드시고 맛있게들 들고 가신다. 대접이 허술해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연로하신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이라 고맙게 식사를 하고 가시니 고맙다. 갑작스런 노동으로 온몸에 기운이 빠져서 한 시간 정도 쉬다 나갔더니 두 분이 벌써 벼를 거의 펴 놓으셨다. 1시간 정도 일손을 합쳐 마당 한 가득 벼를 펼치고 났더니 올 한 해 농사가 다 끝난 기분이다. 마음 같아서는 금요일에 정미까지 다 해 버리면 좋을텐데, 다소 무리한 일정이기는 하다. 어제 독감예방주사를 맞으신 두 분의 몸상태가 걱정되었는데, 벼 까는 일까지 다 마치고 쉬신다. 최순득의 딸 장유진 의혹을 들으며 코를 골며 주무신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콤바인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니, 앞으로도 콤바인 작업을 직접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험하고 비싼 장비라 손대지 않는 것도 좋겠다 싶으나 자립영농에 흠집이 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향악당에 가서 샤워를 하고 장구를 치는데,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근육 부족이다. 우렁이들도 아버지, 어머니도, 나도 애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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