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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인생은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_부활 2

차르다시나 엘콘도파사의 연습은 순조로우나 16분 음표나 32분 음표의 빠르게 처리되는 부분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2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겐지겐이나 그랑을 칠 수 있게 된 연습시간이 2년이었으니까. 거북이를 만드느라 7시간 생노동을 하고 났더니 완전히 혼이 빠져 버려서 연습도 공연도 그다지 흥을 내거나 집중하지 못해 아쉬웠다. 멋진 음악을 선사하는 베짱이가 일하지 않고 연주에 빠져 있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오랜만에 풍물공연을 재미있게 보았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큰 격려가 된다.


현재의 불만족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미래의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 그러다보니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너무 쎄서 이야기가 우울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무언가를 좋은 쪽으로 개선하려는 것은 신나는 일인데 그 출발은 괴로움이다. 그래서 출발조차 즐겁게 만들려는 것이 중요하다. 톨스토이의 이야기가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우울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다음 단계의 뛰어난 소설이라면 현재의 비극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미래를 향해 신나게 나아갈 수 있게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딱히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만 결국 나쁜 짓으로 귀결되는 그런 생각들은 나쁜 짓보다 더 나쁘다. 나쁜 짓은 한 번으로 그치기도 하고 회개할 수도 있지만 나쁜 생각은 계속 나쁜 짓을 양산하는 법이다." (150쪽)


말을 통한 원활한 소통을 잘 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이게 어렵다. 모두들 진심을 담아 좋은 생각을 가지고 표현을 하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눈빛과 따뜻한 체온만을 교류할 수 없으니 뭔가를 이야기하기는 해야 하는데. 톨스토이도 이런 곤란함을 자주 겪었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1910년 여든 두 살의 톨스토이는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하다가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현재는 톨스토이 역이 되었다)에서 숨을 거두었다. 소설에서는 그 어려움을 이렇게 말해 두었다.


"(네흘류도프와 누나인 나탈리야 이바노브나) 그들은 입맞춤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대화가 진실하고 의미심장한 시선 교환을 통해 이뤄졌다. 말로 하는 대화가 시작됐지만 그 속에는 이 진실함이 없었다." (191쪽) 


진지하게 사람 사이의 사랑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상황을 즐겁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톨스토이도 그런 고민을 한 것이 아닐까.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카츄사를 따라가면서 그런 인간형을 그려낸다. 현재를 충실하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생각한 것을 실천하며 부지런하게 사는 활기찬 인물이다.


"그는 혁명이 건물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굳건하고 민중의 사랑을 받는 건물 자체는 그대로 두고 내부를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진화론도 그에게는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지적 유희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략) 동식물의 세계에서는 무엇 하나 소멸되는 것이 없고 그저 지속적으로 형태만 바뀔 뿐이다. 거름이 곡식이 되고, 곡식이 닭이 되며,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고, 송충이가 나비가 되고, 도토리는 참나무가 된다. 이런 이치로 인간 또한 소멸되는 게 아니라 그저 변화될 뿐이다. 나바토프느 이 사상을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눈앞에 죽음이 닥쳐와도 늘 활기차고 쾌활했으며 죽은 뻔한 고난도 당차게 이겨냈다. 하지만 이 사상을 설명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고 할 줄도 몰랐다. 그는 그냥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실질적인 일을 하느라 바빴다." (314~5쪽)


오늘(9월 6일) 연주는 숨이 차서 연습한 것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흠. '걱정말아요, 그대'와 '캐논 변주곡' 다들 격려하는 분위기다 보니 평가에 냉정한 것은 나밖에는 없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해야겠고, 발표회 자리에서 호흡이 안정되지 못하는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부활을 읽으면서 '아, 이런 일들이 당시에 벌어졌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였다. 1899년에 탈고된 소설에는 수정이 가해지지 않았기에 당시의 역사를 박제처럼 전하고 있다. 카츄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가는 여행에서 네흘류도프는 죄수들의 비참한 수형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죄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징역을 살게 되는 과정, 자유주의 사상이나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정치범들의 순수한 마음과 높은 도덕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간수든 죄수든 정치범이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인간성의 깊이에 의해 좋은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도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좋은 사상을 가진 정치범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것은 아니고, 자만심과 공명심이 지나쳐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톨스토이는 그의 시대를 함께 살았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누어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극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에 대한 세세하고 끈기있는 묘사는 현실을 반영한 소설로서의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이 없다면 자기 자신에게 전념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에 전념하는 게 더 낫다. 사랑이 없다면 절대 사람을 상대해선 안 된다.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탈도 없고 건강에도 좋듯이 사람을 대할 때도 사랑이 있어야만 탈이 없다. (중략)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하면 한없이 가혹해지고 잔인해진다." (247쪽)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일을 버젓이 할 수 있다면 그건 .......  인간이 아니죠. 그들이 기구에서 투하시키는 폭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구를 타고 올라가 하늘에서 폭탄을 뿌려 인간을 벌레처럼 몰살시키는 거죠." (340쪽)


"장군의 딸은 그리 예쁘진 않지만 순수한 여인이었는데 자신의 두 아이에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와의 오랜 투쟁 끝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그녀의 남편은 겸손하고 지적인 자유주의자로서 특히 소수민족 관련 통계를 담당하는 통계학 전문가였다. 그는 소수민족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멸족을 막기 위해 헌신했다." (370쪽)


- 부활 / 레프 톨스토이 / 백승무 옮김 / 문학동네(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