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신 분들의 우울한 글을 읽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먼 훗날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심한다. 늙고 병약해지더라도, 생각만은 즐겁게 유지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일을 되도록이면 밝고 즐겁게 해석해서 노년의 우울함을 극복하자. 물론 우울한 노년들이라고 해서 삶의 의지가 약해지거나 슬픈 선택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울한 기분 속에서도 끈기있게 자존감을 지키며 주어진 삶을 잘 영위해 나가시고는 한다. 그러다보니 표정들이 경직되어 있을 뿐이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을 느낄 줄 안다. 식민지와 전쟁과 군사독재를 이겨낸 세대의 강인함이라 할 것이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 바람이 지나가면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 풀들처럼.
파우스트를 처음으로 읽으며 그런 생각을 다시 다잡는다. 모든 것을 공부했지만 조금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파우스트. 그는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보려 한다.
"파우스트 : 인간 정신의 온갖 보물을 끌어모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네. (중략) 나는 터럭만큼도 높아지지 않았고, 무한한 존재에 가까워지지도 않았어." (74쪽)
괴테는 1749년 8월에 태어나 82년을 살았다. 그 시기는 프랑스 대혁명이 잉태되고, 참혹하게 휩쓸고, 뒷바람을 남기며 지나갔지만 아직도 인간의 이성보다는 야만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자유와 인권과 평등을 중요한 과제로 추구하였지만,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에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괴테는 세상을 비관할 수밖에 없었고, 파우스트의 입을 빌려 깨인 사람의 좌절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6년 지금의 세상은 어떤가. 미국 대선에서는 최저임금 15달러가 민주당에 의해 제시되었다. 풍요로운 세상에서 7달러 정도의 최저 임금은 합당하지 않다는 75살 버니 샌더스의 의견이 힐러리에 의해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두 자리수 인상율에 얽매이지 않고, 최저 시급 1만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2013년에 이미 최저시급은 1만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나로서는, 2017년은 12,000원이 되어야 했다. 어림도 없었다. 헐값에 내 소중한 노동력을 함부로 팔 수 없다. 먹고 살만하니. 어쨌든 1만원은 내년 대선에는 틀림없이 강렬한 이슈가 될 것이고, 즉시 실현될 수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실현되었을 시점이 중요하지만 이런 논의가 받아들여질 정도로 사회 전체의 인식은 발전되었다. 괴테가 이 시대를 살았다면 저렇게까지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부하면 공부하는만큼 세상은 성장한다. 그 성장이 더디다고 해서 초조해 할 일이 아니다.
비록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는 강도 높고 야만스런 폭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세상은 발전했다. 영국에서는 7년 동안 150억원을 들여서 '칠콧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영국의 결정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부시와 부시의 푸들이었던 블레어는 그렇지 않다고 여전히 주장하지만, 석유 이권을 차지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무법하고도 이성에 거스르는 결정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니, 이것 또한 놀라운 발전이다. 언제나 반동과 불법과 야만의 기질은 발현될 수 있지만, 그것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것처럼 짧은 순간의 일일 것이고, 세상은 점점 평화와 이성의 세계로 나아간다.
【런던=AP/뉴시스】6일 7년 활동 끝에 공개된 영국의 이라크전에 대한 칠콧 조사보고서가 발표장 밖에 한 묶음으로 쌓여 있다. 한 질이 모두 12권이며 260만 단어를 담고 있다. 201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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