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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몽고반점과 아기부처

언론에 난리가 나기 전까지는 '한강'이라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맨부커상이 있는지도 몰랐다. 한강의 어머니는 작가를 임신했을 때 장티푸스에 걸렸다. 치료를 위해 많은 약을 먹어야 했으니 제대로 된 아이를 낳지 못할 것같아 포기할 생각이 들었는데, 수술 시기가 너무 지나서 어쩔 수 없이 낳아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세상에 태어났으니 험난한 인생을 살아낸 것만도 대단한데 대단한 업적을 남겼으니 가족들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도서관의 책이 동이 나 버려서 2005년 이상 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소설 두 편을 읽게 되었다. 몽고반점과 아기부처.


몽고반점. 


책을 반납해 버려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를 않으나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강렬하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것의 완곡한 표현이다. 예술가가 있고 그에게 엄청난 영감이 떠오르게 된다. 사람의 몸에 꽃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을 촬영하여 비디오 아트로 완성하는 것. 그런데, 그냥 사람의 몸이 아니라 몽고반점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몸. 그리고 그 몸을 가진 것은 처제다. 에로비디오의 설정 아닌가.


몽고반점은 유아기의 상징이면서 순수함의 상징이다. 반점이 남아있는 즉 순수함이 살아있는 성숙한 여자의 몸에 원색의 꽃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상상하면서 예술가의 열정은 활활 타오른다. 열정인지 욕망인지 경계가 모호한 상황. 위태롭게 묘사해 간다. 그런듯 아닌듯. 예술가의 열정은 결국 성공을 거두게 되어 대단한 작품을 얻게 된다.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을 것같은 내용이 새로운 이미지의 예술로 태어난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포르노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소설에서도 두 명의 남녀가 온몸에 꽃무늬를 그려 넣은 채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열정에 들뜬 그들의 성행위는 예술행위의 연속인가 욕망을 쫓는 행위인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곧 예술인가. 어디가 예술이고, 어디가 외설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한강은 글로써 그림과 비디오까지 모두를 강렬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별로 꾸밈이 없고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간단간단하게 표현해 냈는데도, 그 상황만으로 충분히 긴장감이 감돌아, 소설 속의 예술가가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묘사가 훌륭하다고 해서 예술성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몽고반점과 꽃과 인체라는 재료를 가지고는 감동을 줄 만한 예술이 나온다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소설이 소설로서의 가치를 가지려면 충분한 사건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강은 사건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 이 사건도 또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처제와 형부가 예술을 매개로 하여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과연 예술로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길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매우 강렬한 자극을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예술 외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기부처.


온몸의 화상자국을 안고 사는 엘리트 앵커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역시 재료는 매우 강렬하다. 유능한 앵커의 몸에는 끔찍한 화상 자국이 있어서 평생의 콤플렉스가 된다. 그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그녀 앞에 상처투성이의 자기 몸을 드러내는데, 그녀는 그 몸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결혼은 시작부터 삐꺽거린다. 멋진 앵커를 받아들였지만 그의 끔찍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자의 감각은 너무 예민했다. 성생활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간다. 여자의 사랑이 식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으로 극복하지 못할 일도 있는 것이다. 그리미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먹지 못하는 장어 요리를 억지로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앵커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자신에 대한 거짓된 사랑의 발로라고 오해한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바이얼리니스트와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아내는 그런 그의 행동을 그저 바라보고 그가 원하는 데로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꾸만 아기 부처의 꿈을 꾸게 된다.


이 소설 속의 그와 그녀는 몸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파경으로 나아간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랑과 연민, 존경과 용기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서 만들어진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이란 별로 없다. 마음의 사랑이 있다면 몸의 사랑도 가능해야 한다는 남자의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사랑 자체를 부정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쉽지 않은 주제를 만들어 내고 풀어가는 것은 좋았다. 현실 속에서 이런 상황은 어떻게 발현되어지는 것일까. 그녀의 스토리 전개는 매우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하다. 한강은 인간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질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는 작가의 성장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녀가 던진 질문이 꼭 내 생각을 자극하여 아름답거나 근사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게 인간의 다양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