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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정치는 매일의 삶에 대한 실천이다_정관의 치_160429 / C 385

413 총선으로 국민의 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어도 예상대로 세상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매년 1mm씩 변화가 생긴다고 믿어야 한다. 대통령이 약속한 반값 등록금. 국가장학금을 비롯한 장학금으로 실제 납부되는 돈이 절반 정도니까 실현되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실제 등록금이 절반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숫자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이 과감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학등록금을 낮추기 어렵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약속한 군복무 기간 축소도 하루 빨리 실천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시간을 두고 일주일씩 줄여 나가야 큰 어려움 없이 3개월을 줄일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3개월이 줄어들어야 다음 정부에서 또 3개월을 줄일 수 있고, 그렇게 줄어든 복무기간에 맞게 사병들의 급여를 인상해야 한다. 청춘들에게 쓸만한 일자리도 주지 못하면서 왜 자꾸 부담만 지우려 하는가. 국가 방위는 제대로 훈련받은 소수 정예의 군인들에게 맡길 수 있는 토대를 자꾸 쌓아 나가야 한다.


정치는 약속과 그것의 이행이다. 정말 불가능한 약속을 했을 경우에는 일단 깊이 사과하고, 정책 아이디어를 낸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실행되지 못한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말도 되지 않는 정책 아이디어들이 표몰이를 위해 던져지는 상황을 막을 수가 있다. 모든 정책 아이디어는 반드시 실명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면 대통령, 아니면 자문위원, 국회의원, 정부 관료나 실무자 등등.


한국사를 보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흉노족으로 시작되어 만주족으로 끝나는 북방민족의 역사와 중국 대륙의 역사가 한반도의 역사와 한 덩어리로 뭉쳐 돌아가는 점이었다. 명과 조선이 200년의 평화기를 누리며 눈부신 문화발전을 이룩한 것도 전 시대의 강력한 북방민족이었던 몽골족이 만주와 몽골 초원을 완전하게 평정하고 중국 대륙까지 통치하면서 화약고를 안정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몽골의 원나라가 세운 토대 위에서 주원장이 원 세력을 완벽하게 제압하자 한반도와 왜를 포함한 동북아 전체가 안정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전 시대에도 비슷했는데, 흉노족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진과 한은 그들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신하의 예를 바치거나 아우의 예를 받쳐야 했다. 힘을 회복한 후한 광무제의 계속된 흉노 정벌로 양 세력이 모두 약화되면서 한나라 이후 삼국시대와 위진 남북조 시대에는 5개의 북방민족이 16개의 나라를 번갈아 세우는 대혼란이 300년간 지속된다. 이 모든 북방민족의 발호를 잠재운 수나라에 의해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당나라와 통일신라, 발해의 평화기가 300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이 책은 300년간 지속된 당의 평화기 중에서 정관의 치를 다루고 있다. 이 평화기를 이룩한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한 연구서다. 정치에 대한 매우 야만적인 이야기면서 정치의 모범을 보이는 관용의 이야기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정치의 세계에 아버지인 당 고조 이연과 이세민의 정치 역정이 그려진다. 온 가족의 생사를 걸고 아버지와 아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며 일대 결단을 내린다.


"(사촌형제인 수 양제의 폭정이 극에 달했는데도 거병을 거부하는 이연을 부추기며 이세민은) 아버님께서 사사로운 예절을 지키시면 아래로는 도적 떼가 들끓고 위로는 가혹한 법률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들어 집니다. 하지만 이를 버리고 민심에 순응해 병사를 일으키시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중략,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이세민은 이연의 친구인 배적을 통해 다시 설득을 시도한다) 둘째 아드님께서 병마를 모으고 대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공의 뜻을 알지 못해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중략) 내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따라야겠지." (61쪽)


수 양제가 근위병들에 의해 암살되면서 이연은 드디어 대륙을 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이세민을 비롯해 유문정, 배적 등의 공신들의 활약으로 황위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공신 유문정에 대한 처리 문제로 부자는 서로를 꺼리게 된다. 정치 권력의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궁금하다. 그 지위에 오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니 답답하기도 하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피도 눈물도 없이 싸우며 지위를 얻고 누리다가 말년에 가서야 그저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라고 한다. 어디에 방점을 두고 바라봐야 할까. 전성기에 누리던 그의 권력과 명예와 지위일까 하데스의 땅이 가까워진 회한의 심정이어야 할까.


"이연과 이세민의 관계는 그 중심이 가정에서 국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변화가 생겼다. 이전의 단순한 부자 관계가 지금은 군신 관계로 바뀐 것이다. 이연은 정식으로 보위에 오른 후 금세 이러한 관계에 적응했지만 이세민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그는 여전히 이연을 아버지로만 여겨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고 다했던 것이다. 그는 유문정 사건에서도 황제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솔직하고 강력하게 유문정을 지지했다. (중략) 두 부자는 서로 의존할 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갈등은 점차 첨예해지고 있었다." (114~5쪽)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어버이날 기념 공연(5월 10일)도 잘 끝났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고민스러운 문제다. 평안하면서 공동체에 작게라도 공헌하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행복하게 사는 삶이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삶일 것이다. 공무원이라고 하는 안정된 일자리에 속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생각이 많아지고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으면 세상은 매우 불편한 속박에 묶여 자유로움을 상실하게 된다. 정관의 치를 기획하여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은 위징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된다. 살아 생전에 이런 공무원을 만난다면 행운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소신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며 언제나 바른 것을 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결코 폐하를 속이거나 배반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양신으로 만드시되 충신이 되기를 바라지는 마십시오. (중략) 양신은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군주가 거룩한 천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손만대까지 복록을 누립니다. 하지만 충신은 자신은 물론 일가족 모두가 몰살당하고, 군주는 폭군이 되며, 국가도 가문도 모두 멸망하여 오로지 자신만 충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깁니다." (286~7쪽)


정관의 치는 맹자의 민본사상과 폭넓은 인재 등용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맹자는 인간 중심의 정치와 생산력의 유지를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로 정했다. 사람이 곧 생산력이고 생산력은 곧 사람을 위한 일이니 두 개의 개념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사치와 향락의 강한 기운이 선한 기운들을 눌러 버리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태종 이세민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검소하고 근면하며 경청하는 태도로 나라를 다스렸고, 52세에 죽을 때까지 총명함과 관대함을 잃지 않은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할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도 근면 검소하면 가족들을 튼실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고위관료가 청렴한 것은 국력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정치가와 고위공직자들이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가진 것을 베풀 줄 아는 사람보다 쌓아두고 대대손손 번영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은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진리다.


"태종은 두 가지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인위본'을 실천한 것과 신하들의 직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백성들이 가장 귀하고, 다음으로 토지가 중하며, 군주는 가장 나중이다'라는 맹자의 사상을 태종은 누차 강조했다. (중략) 중국의 군주제도는 관료제와 밀접하게 묶여 있었다. (중략) 사회의 정치 참여 범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넓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대 중국이 세계의 다른 국가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했다." (415~6쪽)


430쪽에 달하는 긴 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관용의 정치가 정관의 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상필벌과 달리 귀에 거슬리고 생각에 반하는 의견들을 포용할 수 있는 권력자의 관용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탓하기 보다 누구를 본받을지 생각하여 실천하지 못하면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없다. 현대사회가 복잡해져서 큰 이름을 남길 수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힘을 남용하지 않는 겸손함과 경청하는 마음, 좋은 것을 본받고 욕심을 멀리하며 스스로 방만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위대해 질 수 있다. 그런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다. 중국 역사에서 정관의 치와 같은 정치는 단 한 번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움은 근면하고 검소하며 예의 바르고 공부에 열중하고 마음을 넓게 가지는 평범하고 쉬운 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참 쉬운 일이다.


- 정관의 치 / 멍셴스 지음 / 김인지 옮김 / 에버리치 홀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