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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자유의 수준과 재판의 수준_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_160531

 

5월의 마지막 날. 무엇을 읽을 것인가. 판결문을 읽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속초 일가족 간첩단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되었으며, 사형이 집행된 두 사람을 포함한 일가족 전원이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다. 70년대 중반의 일이니 반공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끔찍한 사법살인의 하나였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끔찍한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이 사건과 재판에 참여한 형사들, 중앙정보부의 사람들, 검사라는 사람들, 판사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그들은 사람일까 아닐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사과와 처벌을 받았을까? 검찰에서 불복하고 항소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간첩 조작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과연 제정신이기나 할까. 우리의 선의와 세금으로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그들은 정말 대한민국을 위하는 사람들일까? 아닐 것이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상황 속의 정상이 아닌 재판 말고, 제대로 된 재판을 보고 싶어서 서가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책이다.

 

"연방 대법관에 대한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기대는 그 호칭 자체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에서 정의가 이루어졌다(Justice has been served)는 표현은 악당을 처치하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 속의 히어로가 아니라 실은 재판의 결과를 일컫는다. 즉 적절한 법률 절차(재판)를 거쳐 나온 공정한 판결에 대한 찬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을 일컫는 호칭이 정의(Justice) 자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2쪽)

 

1984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상황에서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분쟁에 깊이 간여해 왔던 레이건의 재출마에 항의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행진을 벌이다가 성조기를 불태우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텍사스주 당국은, 국기 소각은 공공의 혐오를 자아내는 행위로 폭력 등의 불상사가 발생할 소지가 있고(실제로 폭력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성조기는 귀중한 국가의 상징물로 법률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존슨은 상고했다. 1989년 연방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무죄.

 

대법원은 존슨의 표현의 자유를 5:4로 인정하며 이렇게 판단했다.

 

"우리는 그레고리 존슨의 행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한다. (중략)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하면 단지 어떤 사상이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정부가 그러한 사상의 표현을 금지할 수는 없다. (중략) 나아가 정부가 오직 제한된 메시지만을 전달하기 위해 지정 상징물을 허용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이성의 결론이 아니며 논리의 정당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중략) 어떤 상징물이 그러한 특별대우를 받을 만큼 높은 지위에 있는지는 어떤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있을까? (중략) 우리의 결정은 성조기가 상징하는 자유와 포용의 원칙을, 그리고 비판 행위에 대한 관용이야말로 이 나라가 강건할 수 있는 원천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41~43쪽)

 

수정헌법 제1조는 '정부가 국교를 법으로 정하는 것을 금지하며, 시민들에게 종교 활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권리 등을 보장한다'로 되어있다. 소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이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한다.

 

"정부는, 젊은이들을 군대에 차출하여 국기를 지키기 위해 싸우도록 명령할 수는 있으면서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바로 그 성조기가 공개 장소에서 불태워지는 상황은 막을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46쪽)

 

성조기가 미국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깃발인 것은 맞다. 그래서 그것을 부당하게 훼손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만, 성조기가 반드시 애국심의 표현으로만 이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조기도 하나의 상징이므로, 그 상징은 긍정 또는 부정의 의미로 이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 성조기를 곧 절대불가침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면, 상징에 불과한 성조기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생명인 군인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과도한 주장을 하게 될 것이다. 군인들이 지켜야 할 것은, 그들 자신과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이지, 성조기가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성조기 자체를 받들어 모시는 일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수준에 있는 것일까.

 



두 번째 주제는 낙태에 관한 것이다. 생명은 언제부터인가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느 쪽도 결코 이길 수 없는 길고 반복된 논의가 계속된다. 1969년에 이 소송을 제기한 제인 로우는 낙태도 하지 않았으면서 1973년에 7:2로 승소하고도 죄책감에 시달리다 낙태 반대론자가 된다고 한다. 그녀의 고뇌가 얼마나 깊고 힘겨웠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에 덧붙일 것은 없다. 힐러리 클린턴의 이 이야기가 가장 동의할 만한 이야기다.
"낙태에 관한 여성의 결정권을 지지(pro-choice)하는 수많은 남녀들을 만났지만 낙태를 지지(pro-abortion)하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50쪽)
모든 사람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pro-life의 편에 있다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섯번째 판결은 사상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었고, 그 주요 대상은 영화인과 작가를 중심으로 한 유명인들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

 

"배우 험프리 보카트는 '국가가 연주될 때 엉덩이라도 긁은 것이 밝혀지면 곧장 청문회에 소환될 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165쪽)

 

1962년 뉴욕주의 버펄로 대학교가 뉴욕 주립대학교로 합병될 때, 이 대학의 새로운 교직원들에게 대학 이사회가 공산당과 같은 반체제 단체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충성 서약을 요구했고, 해리 케이시안을 비롯한 다섯 명의 강사들은 서명을 거부해 계약 연장이 거부되었다. 이들은 잇따른 패배에도 굴하지 않고 연방 대법원으로 갔으며 5:4로 승소했다. 판결의 핵심은 불온한 사상은 불온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건이 탐난다고  생각하면 절도죄, 미운 사람을 때려 주겠다고 생각하면 폭력죄로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에 따라 실제로 행동이 일어나고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은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각을 포함해서 평화적으로 교류될 때 새로운 창조적인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다.

 

"만약 누군가가 폭력 혹은 어떤 불법적 수단을 통하여 정부를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함하거나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책을 공공장소에서 펼쳐 보인다면 범죄적 무정부 상태를 조장하는 중범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중략) 그렇다면 정부를 강제적으로 전복하고자 하는 주장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러시아 혁명의 배경에 관한 서적들의 배포도 금지되어야 할까? (중략)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는 교단에 독단주의의 휘장을 드리우려은 시도를 하는 어떤 법률도 용인하지 않는다." (168~9쪽)

 

한참 건너 뛰어서 미란다 원칙에 대한 판결. 1963년 18세의 소녀를 납치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미란다는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무일푼의 흉악범인 그를 변호한 국선 변호인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알빈 무어 변호사는, 미란다가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수정헌법 제5조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통보받지도 못했으므로, 그런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백은 증거로 체택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5:4로 무어와 미란다가 승리했다. 그 이유의 핵심은 공권력에 의한 구속심문의 억압적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현행 구속 심문 방식에는 범죄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들이 개인의 저항 의지를 억압하고, 평소같은 분위기라면 밝히지 않았을 사항까지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강압적 요소가 분명이 존재한다고 결론짓는다. 피의자가 이런 압력에 저항하여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헌법상의 기본권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하려면 피의자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권리의 행사를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207쪽)

 

미란다는 다시 재판에 회부되어 다른 증언과 증거들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가석방 되어, 미란다 경고가 적힌 카드에 서명을 해주며 평화로운 삶을 사는 듯 했으나, 술집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사회는 단 한 사람의 삶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했으나 정작 본인은 존귀함을 지켜 갈 역량이 없었던 모양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중 최악은 스콧 대 샌포드 사건으로 노예 해방과 관련된 것이다. 1820년 미국 의회는미주리주를 제외한 북부의 주에서 노예제도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그런데, 1856년 주인을 따라 미주리주로 가서 정착했던 흑인 노예 스콧이 주인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할테니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주인은 거부했다.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7:2로 노예제도에 힘을 실어주는 판결을 했다.

 

흑인은 열등하기 때문에 어떠한 인간의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었다. 이 판결은 남북 대립을 첨예하게 만들었고, "국민의 반은 노예이며 반은 자유인 상태는 지속될 수 없다"며, 이 판결의 부당성을 호소하여 명성을 획득한 링컨을,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가 취임한 1861년 남부는 더 이상의 타협이 어렵다며, 전쟁을 선포하였다. 무려 100만 명이 사망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스콧 대 샌포드의 판결은, 연방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로 평가되고 있다.

 

2000년 미 대선에서 고어가 267 대 245명으로 근소하게 우세한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에서 마지막 승부처인 플로리다의 결과(25명)를 기다리고 있었다. 0.1%라는 근소한 차이로 부시가 승리하자 플로리다주 법률에 따라 재검표에 들어갔다. 표차이는 더욱 줄어 들어서 327표에 불과해졌다. 고어 측은 수작업 검표를 요청했다. 플로리다주 법원은 받아들였지만, 부시측이 반발해 연방대법원에 항소해 수작업 재검표가 불가하다는 주장을 폈다. 16시간의 토론 끝에 대법원은 5:4로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