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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두바퀴 이야기

자연 속에서 달린다는 것_160520, 금

지난 3월 17일, 헤르메스를 만난 지 1년 하고도 며칠이 지난 날에 주행 5천 km를 찍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헤르메스 구입비 120만원에 대한 절반의 투자비 회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귀농하고 벌이가 없으면서도 굳이 비싼 전기자전거를 다시 산 이유는, 차를 타고 쌩쌩 출퇴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람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벗삼아 여유롭게 출퇴근하면서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월급 많이 받을 때는 자주 즐기지 못했지만 허겁지겁 타느라 자전거 출퇴근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누구도 시간 제약을 걸지 못하는 신분이 되었기에 신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과감한 투자를 했던 것이다.


편도 65km의 거리를 엉덩이가 아프게 출퇴근하면서 또 생각이 바뀌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데도 여유로운데도 행복감이 화악 고조되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벌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 비싼 자전거에 대한 투자비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마음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절반의 감각상각인 5천 km를 달성하고 나니, 완전한 투자비 회수가 이루어지는 1만 km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겼다. 마음이 놓인다.


헤르메스는 대체로 훌륭했다. 평속 22km 정도를 꾸준히 유지해 주었고, 몸이 피곤할 때는 스스로 달릴 줄 알았으며, 속도감을 느껴야 할 때는 기꺼이 도움이 되어 주었다. 짐을 실어도 싣지 않은 것처럼 편안하게 달릴 수 있게 해 주었고, 고장도 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장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다만, 주기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뒷바퀴의 스포크였다. 지난 1년 동안 4개의 스포크가 부러졌다. 그전에 하이런 탱고를 3년 여간 탔을 때는 한 번도 격지 못한 일이다. 몸무게도 그 때보다 줄었고, 자전거 속도도 탱고가 시속 5km 이상 빨랐다. 그런데도 스포크가 자꾸 부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뒷 타이어까지 새 것으로 갈아 끼우고 신나게 달렸는데, 음성 시내에서 스포크가 부러지면서 새 타이어에 구멍을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다행이도 헤르메스를 구입한 곳의 친절한 직원이 지난 1년 동안 이 문제가 주기적으로 3번이나 발생했다면 스포크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내 의견을 경청하고 삼천리자전거에 상황을 잘 설명하고 제품 자체를 교환해 주기로 했다. 교환후 현재까지 745km는 잘 달리고 있다. 부디 더 이상 스포크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헤르메스를 타고 한강, 탄천, 양재천, 안양천을 달리는 것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일이다. 무일농원에서 이미 충분하게 자연을 즐기지만, 도심 속에서 즐기는 자연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람들이 자연 속에 그득하다. 사람과 자연과 인공 구조물에 둘러싸인 자전거 도로는 참으로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답다. 그런 속을 달리면서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많은 도시인들이 간절하게 희망하는 '자연 속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 김남주가 패배하고 나서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그것, 간절히 원했던 그것을, 21세기의 나는 마음껏 즐기고 있다. 먼곳에서 부디 행복하시라, 시인이여.


압제와의 싸움에서 나는 지고

(중략)

나는 그동안 9년 동안

동산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서산 너머로 달이 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자연으로부터도 버림받았으니

별 하나 내 머리 위에서 빛나지 않았습니다.


- 김남주 작 '세월' 중에서 / 김남주 시집 '사상의 거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