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에 다녀오는 동안 헤르메스의 스포크 두 개가 또 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여섯 번째다. 급하게 비닐끈으로 묶어 응급조치를 했다. 의왕의 삼천리공장을 방문해야겠다고 생각 하는 순간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해 줄까. 차라리 돈을 내고 고치고 말까. 내 자전거 주행에 어떤 문제는 없을까. 아예 자전거를 바꿔버릴까 등등.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제조사는 일단 사용자의 부주의를 문제 삼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헤르메스가 문제가 생겼을 때도 대리점과 본사 수리실에서는 너무 빠르게 자전거를 타지 않았느냐(내리막에서는 시속 45km까지 나온다), 짐을 많이 싣지 않았느냐(어렵겠지만 20kg을 싣는다 해도 내 몸무게까지 합쳐서 고작 92kg이다. 100kg의 거구는 자전거도 탈 수 없는가. 말도 안된다), 장애물은 많지 않았느냐며(도로에는정말로 많은 과속 방지턱이 있지만 그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내 잘못을 캐내려 애썼다. 대리점에서는 심지어 무상수리도 못해 주겠다며 나를 몰아세웠다. 120만원이나 주고 물건을 사 주었는데도, 소중한 시간을 내어 세 번이나 수리를 받으러 와준 고객을 부주의한 사용자로 몰아세우니 황당할 뿐이었다. 기분은 몹시 나빴지만 참았다.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리점은 다시 갈 수가 없었다. 그들도 몇 십만원 벌고 나서 매번 무상수리를 하지 못할 상황인 것을 이해해 주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으니 삼천리 본사를 찾아갔다.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지만 스포크 파손의 원인은 사용자의 부주의가 아니냐는 의견이 강했다.
부담을 안고 다시 갔다. 스포크의 무상수리가 끝나고 담당자와 이야기를 했더니, 헤르메스 말고도 몇 명의 전기자전거 팬텀 시티의 스포크가 정기적으로 파손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현재 본사에서 새로운 스포크를 준비하고 있고, 그것이 생산되면 전체 스포크를 교환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 이것이 맞는 자세다. 그동안 겪었던 마음의 부담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느긋하게 라이딩을 더 즐기고 완벽한 헤르메스가 될 날을 기다리면 된다.
현재 주행거리 8,339km. 스포크 불량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삼성이 생산하는 배터리의 용량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고, 부착된 전조등의 밝기도 더 밝았으면 좋겠지만 핵심 문제는 아니다. 자동차는 세워 두고 전기자전거를 타라. 이동이 놀이가 된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배터리 충전기가 고장났다. 작년 3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불과 22개월만에 고장이 난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좀 불만스러웠다. 대리점에 전화했더니 수리를 의뢰해 보겠다면서 대체품을 주겠단다. 대리점을 방문해서 증상을 설명하고 - 그냥 작동이 안되니 설명할 것도 없지만 - 대체 충전기를 받았다. 새 것이라서 충전이 잘 된다. 삼천리 본사로 제품을 보내서 수리가 되는지 확인하고 만일 안되면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오늘(18일) 연락이 왔는데 본사에서 무상으로 교체해 주기로 했단다. 음, 고마운 일이다. 제품 수명이 너무 짧아서 당연히 문제는 있었지만, 흔쾌히 교체해 준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굉장히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개선이 되어서 적어도 3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런 태도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삼천리자전거의 성장과 발전을 빈다.
우리는 즐길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농부와 소비자를 착취하는 세상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시인은 기뻐할 것인가. 기뻐하라 시인이여, 아직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모든 문제를 그대가 슬퍼해서는 안된다.
흡혈귀 같은 놈
김남주
어떻게 보면
농부의 허벅지에 붙은
거머리 같고
어떻게 보면
황소의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 같고
어떻게 보면
피둥피둥 살찐 것이
도야지 같고
(중략)
언제가 어느 날엔가는
(중략)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사지를 쭉쭉 뻗으며 뒈져갈 놈!
- 김남주 시집, '사상의 거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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