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인간들 사이의 문제들은 너무 많고 이해관계의 대립도 너무 심해서 도저히 풀어낼 수가 없다. 아무리 올바른 논리와 정의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은 설득할 수 없다. 살아오면서 갖는 문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여름에 시원하게 느껴지고 겨울에 따뜻하게 느껴지는 우물물의 온도가 대체로 18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과연 그럴까. 그렇지만 훨씬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로워지는 결론임에는 틀림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계는 없다. 내가 세계를 그렇게 바라볼 용기만 있으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네. (중략) 지금 자네의 눈에는 세계가 복잡기괴한 혼돈처럼 비춰질 걸세. 하지만 자네가 변한다면 세계는 단순하게 바뀔 걸세.(중략)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자네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그게 관건이지." (12~14쪽)
트라우마에 대해서 아들러 심리학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어 문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 아니라, 바깥 세계를 살아낼 용기가 없는 내가 스스로 방안에 틀어박힘으로써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과 폭력을 그 원인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분노 또한 마찬가지다.
"분노란 언제든 넣었다 빼서 쓸 수 있는 '도구'라네. 전화가 오면 순식간에 집어넣었다가 전화를 끊으면 다시 꺼낼 수 있는. 엄마는 화를 참지 못해서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야. 그저 큰소리로 딸을 위압하기 위해, 그렇게 해서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한 걸세." (43~4쪽)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야기들이 반복된다. 공감되는 부분 중의 하나는 열 살 전후에 선택한 생활양식(life style)에 의해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생을 사는 방식'도 정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봐도 열살 전후에 생각한 것에서 크게 변화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너무 가벼운 철이 들었다'라고 한다. 그런데, 아들러는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갔다고 한다.
"생활양식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중략) 자네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어. 지금 당장 변하고 싶다고. (중략) 그럼에도 왜 변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네가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결심해왔기 때문이지. (중략)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일세.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60~3쪽)
언제고 정리를 해야겠지만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한 데에는 '사람에 대한 실망'이 매우 컸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위 '나쁜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줄 수 없었고,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설득할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노력을 했는데도, 사람들에 대한 실망만 커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관계를 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관계 속으로의 도피라고도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들러의 아래와 같은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지금은 훨씬 완화된 모습이지만 비슷한 문제는 여전히 이곳에도 있다. 이해관계가 작아서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작은 문제들이라 잘 극복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문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기 싫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같다.
"왜 자네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단점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중략)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을 무서워하지. (중략) 자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네." (79쪽)
행복해 지기 위해서 또는 좀 더 뛰어난 자신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가장 손쉽게 나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특히,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고 자신의 장점들을 더욱 개발해 나간다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벌써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키가 작다고 지금 당장 키크는 운동을 해 보자. 운 좋으면 키도 커질 수 있고, 최소한 근육이라도 늘어서 더 건강한 내가 된다면 키가 큰 것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열등감'과 '열등 콤플렉스'도 혼동하지 말고 정확하게 구분해서 써야 하네. (중략) 학력에 열등감을 느껴 '나는 학력이 낮다, 그러니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자'라고 결심한다면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나.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네." (94쪽)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무엇일까. 소통하며 위로받고 격려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에 대한 해답도 듣고 싶고. 그런데, 그것 말고 또다른 것이 있다고 한다. '거짓 우월성'이다. 자신이 아닌 주변의 권위에 의지해 자신이 우월하다고 하는 생각. 좋은 집안, 많은 돈, 좋은 친구 등등.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심리 상태이기는 하지만 과도하며 역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자랑해야만 하는 사람은, 스스로 열등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월 콤플렉스(우월함과 관련하여 복잡하게 얽힌 심리적 도착상태)'라는 것이다. 이게 나의 모습이 아닌가. 주의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열등감 자체를 첨예화시켜 특이한 우월감에 빠지는 패턴이라네. 구체적으로는 '불행 자랑'이라고 하지. (중략) 불행한 것을 '특별'하다고 여기고, 불행함을 내세워 남보다 위에 서려 하지. (중략)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가진다. (중략)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네." (101~3쪽)
증오 또는 분노의 감정.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나 사람 또는 그의 행동에 대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분노하지 않는 젊음은 죽은 것이라는 생각도 참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그러지 말란다. 마음 편하게 이렇게 생각하란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세계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걸세. 더는 세계를 위험한 장소로 보지도 않고, 불필요한 시기심이나 의심에 눈이 멀지도 않을 걸세. 대신에 세계가 안전하고 쾌적한 장소로 보이게 되겠지.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도 눈에 띄게 줄어들 걸세." (114쪽)
1) 일로써 맺어지는 인간관계 2) 일을 벗어난 친구들과의 인간관계 3)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라고 하는 세 가지 과제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갖는 과제라고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할 '용기'가 있어야 행복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목표가 있다고 한다.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양 측면에서 아주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지. (중략) 행동의 목표로는 '자립'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라는 두 가지를, 이러한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로는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과 그로부터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을 제시했네." (125쪽)
세계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지금도 조금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세상에 이름을 남길 만한 위대한 일을 하거나 특별한 기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정말 좋아하고,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찾고, 실현해 볼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도 나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부담감을 거의 내려놓고, 축소하고 난 뒤에, 닥치는 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해 보고 있다. 그 일들이 정말로 내가 구해온 답인지 알 수 없으나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한다. 농사를 짓고, 여행을 하고, 이런 저런 음악을 하고 등등. 아들러 심리학은 더욱 많이 나간다. 그럴 필요가 있겠다.
"대체 인간관계의 무엇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일까? (중략)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중략) 자네가 자네를 위해 살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자네의 인생을 살아준다는 말인가? (중략)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중략)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중략)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148~161쪽)
인정욕구라고 하는 것의 실체가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지만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나의 과제와 비교해서 어긋나지 않았을 경우에 그 과제를 행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 자기중심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는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진로와 배우자감까지 간섭한다, 이게 자기중심적인 게 아니면 뭔가? (중략) 자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네의 과제가 아니야. 역으로 '나를 좋아해야 한다', '이렇게 애를 썼는데 좋아하지 않는게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의 과제에 개입하는 보상적 발상이라네. (중략)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182~9쪽)
과제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의 과제에 개입하려 하지 말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는 것은 자유롭지 못한 나를 만드는 길이며, 내 과제에 충실하는 것이 좋은 삶이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 감각이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을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est)으로 바꾸는 것"이라 한다. 사람과 만물, 역사를 아우르는 모든 것이 바로 공동체라는 것이 아들러의 주장이라고 한다. 아들러가 제기한 '공동체 감각'이라는 평범한 결론이 왜 논란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내 스스로 실천 가능한 유익한 일을 해서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에 도달하는 것이 공동체 감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네. (중략)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236쪽)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책도 두 번을 읽은 기억이 없다. 우연히도 이 책을 두 번 읽게 되었다. 핑계는 독후감을 쓰지 못해서 다시 읽으며 쓴다는 것이었지만, 내 인생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다시 읽은 것이다. 첫 번째 읽을 때 보다 지금이 더 잘 정리된 상태인지 알 수는 없다. 완벽하게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공헌감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았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몇 가지 분석은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그를 나의 친구로 받아들였는가. 지금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행복한가, 등등.
"자유를 선택하려고 할 때 인간이 헤매는 것은 당연하네. 그래서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으로 '길잡이 별'이라는 것을 제시했지. (중략, 그 별은) 타자공헌. (이상 317쪽) 타자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해 행위인 셈이지. (272쪽)"
긴 책을 짧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 능력에 맞고, 자유롭게, 열심히 공헌하며 사는 평범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며 실천하고 산다면, 나는 행복한 것이다.
-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지음 /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2015년 5월 초판 39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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