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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먼저 사람이 되고, 그리고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_150902, 수

장구 편 두 쪽과 채 두 개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소리. 놀랍다.
북 하나와 채 두 개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다양한 소리. 참으로 놀랍다.
꽹과리(錚 쟁) 하나와 채 하나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현란한 소리. 대단히 놀랍다.
그리고 징(鉦 : 징 정).

 

우리 전통 타악기인 장구와 북, 꽹과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정말 대단하다. 풍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문자를 아는 식자층의 관심 부족으로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서 그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고, "민중 반란 시에 군용물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농기와 농악기들를 농민들로부터 몰수했다"(풍물굿 연구 548쪽 / 영조 14년 1738년)고도 한다.

 

"국왕이 두레의 농기가 군대에서 사용하는 깃발과 같은 것인가 묻자, 호남 암행어사는 농기와 농악기가 군대용으로는 무용지물이라고 응답하고, 이것(두레와 농악)은 이미 '백년 민속'이므로 또한 금지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하고 있다." (549쪽)

 

수도작 논농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관개 시설 설치나 김매기, 수확 등 노동력이 일시에 대규모로 필요한 일들이 많아지면서 두레 조직이 발달했고, 두레에는 반드시 농악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기록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전문 예능인도 아닌 이들이 만든 농악(지방에 따라 풍물, 풍장, 걸궁, 매굿, 매귀, 군물, 농고, 상두 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복잡하고도 오묘하며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을까. 실마리를 제공하는 문구를 신용하 교수가 제시한다. '잘 하는' 사람이 '창작'했다고 하니 풍물굿의 소리들도 그렇게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전국에 넘쳐 났을테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두레의 공동노동의 큰 특징의 하나는 '노래하며 일하는 것'이었다. 두레꾼 가운데서 노래를 잘하는 일꾼이 '앞소리', '솔소리'라고 불리는 선창자로 뽑혀 먼저 선창을 해서 '먹이면' 두레꾼들은 열심히 작업을 하면서 일제히 합창으로 '받아서' 따라 불렀다. (중략) 그들이 아는 모든 노래를 합창했으며, 아는 노래가 떨어지면 선창자가 노래를 만들어 가면서 합창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농민의 노래와 가사가 창작되기도 하였다." (566~7쪽)

 

호미씻이는 한 해의 공동노동을 끝낸 두레가 회의를 열고, 농악 놀이를 하며 놀다가 잔치를 하는 것으로 끝내는 '최대의 축제'라고 한다. 호미씻이에서 마을의 주요 사항을 토론하고 의결해야 하는데, 촌락자치제가 해체되다 보니 회의는 무력화되고 놀이와 잔치만 남아 계승되는 모양이다.

 

"호미씻이에서 농악은 두레의 공동노동 과정에서의 '본농악'보다 더 확대된 것이었다. 이때에는 두레꾼들이 거의 모두 농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소고잡이'와 '법고잡이'의 수를 늘렸다. 또한 호미씻이에서 농악은 '잡색'을 풍부히 넣어서 무동, 포수, 중, 각시, 양반, 창부, 탈광대 등이 농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무용을 할 뿐 아니라 연극과 덕담과 재주를 배합하여 흥을 돋우게 하였다. (중략) 농악대가 '진법놀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내용과 양식의 매스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두레꾼들은 호미씻이의 농악에서는 '잡이'를 맡든지 '잡색'의 어떠한 역할을 맡든지 하여 모두 농악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572~3쪽)

 

기록하는 사람이나 정리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구전될 수밖에 없었고 교육의 방식은 도제식보다 더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존재다. 실력이 좋은 풍물꾼일수록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권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십여 년 전 꽹과리를 배우려 했다가 하루 만에 돌아온 적이 있다. 알 수 없는 빠른 리듬을 들려주고 따라치지 못한다고 빙긋빙긋 웃는다. 가르치려는 것인지 과시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풍물패의 상쇠들이 대단한 성질을 부리며 패를 이끌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들 그러려니 한다고 한다. 배우려는 자의 능력과 성의를 무시하게 되면 가르치는 사람도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80년대 풍물의 부흥기를 이끈 것이 젊은 대학생들이었고, 그들에 의해 교육 문화는 많이 개선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21세기에는 훨씬 세련되고 멋진 음악으로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먼저 사람이 되고, 그리고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