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건
무일 박인성
나이가 든다는 건
기다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비오는 날 새끼들을 물고 나간 고양이를 기다리고
병아리를 물어 죽이고 몽둥이가 부러지게 얻어맞은
새하얀 털의 진순이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처로 공부하러 간 아들들의 든든한 어깨와
말썽많은 놈에게 시집 간 딸의 짧은 한숨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이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따뜻한 봄바람을 기다리고
뜨거운 햇살에 얼굴이 검게 그을려 가면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기다리는 것이다.
산골짝이 다랭이 논둑 위에서
제비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우박을 맞아 새끼들을 데리고 떠난
귀여운 제비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커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419 국립묘지의 슬픈 태극기 아래에서
더 이상
잃어버린 공을 찾지 않는
새침한 윤영이를 기다리는 것이고,
긴머리의 효빈이와
시원한 치맥 한잔을 하며 보낼
뜨거운 여름을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더욱 간절하게 기다리기도 한다.
매화꽃 향기와 함께
한 손에 작은 꽃다발을 들고 오는
사랑하는 사람의 은은한 향기를
그리고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평화로운 땅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잃어버린 형제들을 기다리는 것이고,
철조망이 걷혀 신나게 뛰어노는 양들의 거침없는 달리기를
오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그 삶의 끝자락에 희미하게 보이는
새로운 세계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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