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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대문호가 느껴진다_레미제라블_140919~

영화도 뮤지컬도 보지 않았고, 한 권짜리 요약본으로만 접했던 레미제라블의 원본을 읽는다. 이야기의 구성이 좋아서 요약본만 읽어도 감동이지만 뭔가 허전하다. 대문호라는 칭호에 어울리지 않는 동화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보지 않은 영화나 뮤지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직 원본을 읽는 것만이 프랑스의 조정래라 할 대문호 빅토르 위고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출세를 바란다. 자기희생과 봉사에 몸 바친 성자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성자는 피할 수 없는 가난과 막힌 출셋길, 그리고 자기 희생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 (중략) 우리는 어두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성공이란 부패의 골짜기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내릴 뿐이다. (중략) 성공이야말로 도저히 싫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성공은 진실한 가치들과 헷갈리기가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유사성 앞에서 길을 잃는다. (중략) 성공은 재능의 탈을 쓰고서 사람들을 현혹한다. (중략) 성공이라는 가치관은 위협받지 않는다.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학설에 가깝다. (중략) 승리하는 자가 존경받는다." (74쪽)

 

매우 피곤하다고 할 정도로 정신을 집중해야 읽어낼 수 있을만큼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소설이다. 2권을 읽고 있지만 1권에서도 많은 것을 인용하고 남겨두어야 했다. 미리엘 주교에 대한 빅토르 위고의 묘사는 몇 번은 곱씹어 볼 만한 것이다. 팡틴에 대한 것도 자베르에 대한 것도 그렇다. 그렇더라도 일단 그냥 넘어가 본다. 전혀 접근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때문이다. 2권의 첫번째 장은 워털루다. 50쪽 정도를 읽고 나서 다시 백과사전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프랑스어: Bataille de Waterloo)는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웰링턴, 블뤼허가 이끄는 영국, 네덜란드 및 프로이센 등이 포함된 연합군이 싸워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이며 여기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2번째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다음해 4월에 폐위되어 엘바섬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빈 회의에서 전후처리 문제로 연합군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본 나폴레옹은 1815년 2월 26일 엘바섬을 탈출해 남프랑스의 주앙에 상륙한 뒤 병사를 모으면서 파리로 향했다. 도중에 나폴레옹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네 원수와 술트 원수를 만났지만 오히려 나폴레옹에게 동조하게 되어 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3월 20일 파리에 입성했다. 나폴레옹은 제국의 부활을 선언하고 동맹국에게 공존을 주장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복귀 소식은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 이상으로 프랑스 제국의 해체로 인해 생기는 영토와 이득을 욕심낸 연합국은 일제히 단결하여 각 방향에서 프랑스를 향해 진격했다.

 

원래 전투가 벌어진 곳은 워털루가 아니었다. 실제로는 라-벨르-알리앙스가 주 전장이었다. 독일 측에서는 자신들의 지원으로 이긴 이 전투를 라-벨르-알리앙스 전투(독일어: Schlacht bei Belle-Alliance)라고 부른다. 워털루로 불린 것은 웰링턴 공작이 자신의 사령부가 있던 곳의 이름을 갖고와서 명명한 것이다.

당시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던 영국 런던의 주식시장은 그 자리를 프랑스에게 빼앗길까봐 이 승패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중에 나폴레옹 패배 소식을 제일 빨리 입수한 은행가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후에 네이선의 역판매라고 불리는 주식 매매로 거액의 이익을 획득하여 로스차일드 재벌의 기초를 쌓았다." (위키백과 중에서)

 

나폴레옹이 대불 동맹국들에게 공존을 주장했던 것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프랑스 대혁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대불 동맹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반혁명 체제가 구축된 것을 보면, 나폴레옹만이 그래도 대혁명의 보호자였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나폴레옹은 혁명을 이용한 권력욕의 화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옹졸한 자였다. 초기에 반혁명 전쟁을 일으킨 영국,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를 격파함으로써 그는 충분히 가질 것을 가진 영웅이었다. 왜 그는 변질되어야만 했을까. 몽매한 대중의 요구였을까. 프랑스 대혁명도 다시 공부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의 최후가 담긴 워털루 전투를 빅토르 위고의 묘사로 따라가 보자.

 

"그때는 무시무시했다. (중략) 보병들은 태연자약했다. 첫째 줄은 무릎을 땅속에 박고 흉갑 기병들을 총검으로 받아 냈고, (중략) 총검들이 반인반마들의 배때기를 찔렀다.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망측한 살상이 벌어졌다. (중략) 맨 오른쪽 방진은 엄폐물 없이 가장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 충돌이 시작되자 이내 거의 전멸해 버렸다. 그 방진은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들로 구성된 75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중앙에 자리 잡고서 백파이프를 부는 사람은 자기 주위에서 사람들이 섬멸되는 동안 고향의 숲과 호수를 회상하는 우울한 눈으로 하염없이 땅을 바라보며 북 위에 앉아서 백파이프를 팔에 끼고 고향 산야의 노래를 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