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a paradox.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없는 자가 하고 있고,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지지 못한 자가 풍요롭게 누리며 산다. 그것이 삶의 역설이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자전거에 대한 수필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그 중에서 최종규 님이 쓴 '없어도 즐거운 나들이'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작가는 직업이 없어서 벌이가 없고, 벌이가 없으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차가 없고, 차가 없으니 운전면허도 없고, 운전면허 조차 없으니 집도 없고, 집도 없이 가난한데다가 학벌도 없으며, 학벌이 없으니 인맥 또한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이혼까지 해서 가족도 없다. 그런 그의 인생이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하면서 달라진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찻삯이 굳으면서 나아진 일이 있습니다. 그만큼 책값을 더 많이 쓸 수 있습니다. (중략) 몸은 나날이 튼튼해지기 마련이라,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다. 머리가 맑게 깨고 마음은 시원하게 트이는 새벽에 더욱 즐겁게 책과 함께 할 수 있고, (중략) 몸이 좋아지면 마음도 좋아지고, 마음이 좋아지면 우리가 하는 일도 좋게좋게 즐기거나 잘할 수 있습니다. (중략) 여태까지 책을 사서 보느라 들인 돈을 따지면 에쿠우스나 오피러스 같은 큼직하고 비싼 차 한 대를 살 만한 돈이 되었지 싶은데요.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뭣 좀 있어 보이게' 하는 물건으로 자기 겉을 매만지는 일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뭣 좀 없어 보여'도 참마음을 올바르고 깨끗하게 간직할 수 있는 일, 자전거를 타고 책을 즐기는 제 길을 갈 생각입니다."
세상은 꼭 많이 있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것을 이룰 때 사람은 행복해진다. 오만가지가 다 결핍되었지만 조그마한 아이디어 하나로 삶의 방식을 조금만 변화시킨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책 읽기를 좋아하고, 책을 사는데 없는 살림에 에쿠우스 한 대를 살 정도의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대단한 일이다. 수십 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도 그 정도의 돈을 들여 책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없다고 못하는 일은 없으며,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 그것이 삶의 역설이다.
작가는 자전거를 유지하는 비용도 줄이기 위해 자전거 튜브에 구멍이 났을 때도 본인이 직접 수리를 한다. 단순하지만 해 보지 않으면 도전하기 어려운 일을 하게 된 데에는 작가의 없는 삶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작가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바로 자전거로 여행하는 누군가의 바퀴에 구멍이 나면 그것을 수리해 주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대가를 바라며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났다며' 돈이나 얼음과자나 맥주로 고마움에 보답하려고 한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아니어도 이런 일은 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은 특별한 능력이나 엄청나게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글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삶, 그것이 또한 인생의 역설(paradox)이다.
- 자전거가 있는 풍경 / 공선옥, 구효서 등 18명 /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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