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아마도 남쪽 아시아의 인도문명과 끊임없이 접하게 되는 해인가 보다. 가까우면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던 태국과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 시작하였고, 김용옥의 인도와 불교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잣대를 들이대려면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라고 했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영혼 간디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런 그가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뭘까. 깊은 자기 반성으로 끊임없이 위대한 영혼으로 거듭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757년에 시작하여 1947년에 끝난 영국의 식민지배 기간 동안에 간디는 인도를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후퇴없이 발전시켜 나간다. 열 여덟살의 간디는 생사의 고비에 서 계신 아버지의 병상에서 물러나 아내와의 동침을 선택했다가 평생을 반성해야 했고, 그 반성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내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불과 36살의 나이에 금욕생활을 선언한다. 성욕에서 벗어나서 얻은 에너지로 독립운동에 매진하겠다는 것이 이유다. 한 개인을 힘들게 하기는 했지만 이런 반성과 실천의 모습이 인간 간디가 위대한 영혼으로 존경받게 된 이유이리라.
잘못은 있으나 반성하고, 정의의 길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 그것이 간디의 위대한 점이라고 할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사를 덮고 왜곡하고 미화하는 일과는 다른 차원이다.
"인도는 간디의 나라다. 간디는 성자(마하트마)인 동시에 인도인의 정신적인 지도자(구루)이자 아버지(바푸)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다. (중략)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풋내기 변호사 간디는 첫 번째 재판에서 갑자기 입이 얼어붙는 바람에 데뷔전을 엉망으로 치렀다. (중략) 간디는 비폭력을 주장한 평화주의자였으나 남아프리카의 보어 전쟁에서 영국이 줄루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1차 대전을 치르는 영국을 위해 모병에도 나섰다. 학도병 지원을 권유하는 독립운동가라고? 우리식의 판단을 거두고 '짧은 배신 긴 충성'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85쪽)
평화로운 방법이 아니면 평화를 지킬 수 없다. 물리력은 오직 자위의 수단이다. 자위의 수단 마저도 포기한 코스타리카라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이런 깨닮음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세계 무대에서는 잘 지켜지지도 않는다. 나치의 폭력에 대해 간디는 유대인들에게 무저항을 권고했다고 하나 그 유효성에 대해서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그런데도 간디의 무저항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의 삶에서는 평화가 유용하고, 누구나 자신이 끔찍한 폭력의 희생물이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비폭력 전통은 폭력이 뿌린 피 위에서 피어난 열매인지도 모르겠다. 먼 옛날 인도에 비폭력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 바로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정복자 아소카 황제(마우리아 제국 BC 322~188)이기 때문이다. (중략) 아소카는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동부 지방의 왕국 칼링가를 공격하고 10만 명의 적군을 살해했다. 물론 정복군도 많은 희생을 치렀다. 15만 명의 포로와 함께 왕궁에 귀환한 왕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불교에 귀의했다. (중략) 전쟁을 포기하고 이웃나라에 평화사절을 보냈고, 물리력이 아닌 '법도와 진리'에 의한 승리를 선포했다. 그는 동물의 희생을 금지했고 (중략)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도 금지했다." (75쪽)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버리고, 김용옥을 만나면 김용옥을 버리라는 말이 생각난다. 위대한 스승은 사람들에게 구원과 깨달음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미천한 그들에 의해 스스로도 물들어 버린다. 신이 아니니 잠깐 깨달은 정도로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찰나를 사는 것이고 깨달음도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스승이거나 스승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미천함을 되돌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있는 스승들과 지도자들은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구루들을 보라.
"인도의 구루들은 정신이 '헝그리'한 물질주의자에게 물질을 받고 그 대가로 구원을 판다. (중략) 비행기 활주로까지 갖춘 인도 남부의 그(사이 바바)의 왕국은 3조 7천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중략) 비틀즈가 방문해서 유명해진 '초월 명상'의 마헤시 요기도 1990년을 기준으로 재산이 2조 4천억 원(중략) 우리나라에서 수백만 권의 책이 팔린 오쇼 라즈니시는 한때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그의 에덴에 무려 99대의 롤스로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중략) '프리섹스'의 메시지를 전하던 오쇼 라즈니시는 폭력과 부패로 미국에서 추방되었다. 인도 푸나로 돌아온 그는 침실에 인공 폭포를 들여놓고 호화롭게 살다가 죽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쓴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의 추종자의 아내와 맺은 불륜에서 25년이나 자유롭지 못했다. 기적을 창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 바바는 자신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지 못하고 도난경보기의 힘을 빌려서 목숨을 구했다." (102쪽)
종교는 인간의 미래를 협박하여 현재를 착하게 살게 하면서 일부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쌓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종교는 평화를 가르치고 지혜를 전파하며, 아픈 영혼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 줌으로써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발현이며, 신을 믿더라도 종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신에 대한 이런 방식의 믿음이 독실한 인도인들의 삶에서도 보인다.
"한 화가가 북부 인도의 농촌을 여행하다가 산자락에 있는 오두막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안에 빨간 꿈꿈 가루를 바른 돌멩이가 모셔져 있었다. 화가는 농민이 숭배하는 그 돌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마당에서 바구니를 엮고 있는 주인에게 '그 돌을 밖으로 내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흔쾌히 응했다. 사진을 찍은 화가는 돌을 밖으로 꺼내서 혹시 부정을 타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괜찮아요. 다른 돌을 주워서 꿈꿈을 바르면 되니까요." (120쪽)
인도의 카스트 제도(더 심하게 지역별로 고착화된 자티로 악화되어 있다고 한다)를 들으면 도무지 그 땅에는 발을 디밀고 싶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찬양하고 그리워한다고 해도 인간을 생명으로 바라보지 않는 그들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찌보면 천민 자본주의는 노예제 사회의 특권 계층들이 환상으로 만든 제도다. 진리와 사랑과 평화에는 눈을 감고, 몸의 향락과 쾌락, 안일함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도 노예제와 천민자본주의와 마찬가지 제도다. 95%가 브라만이 아니고, 16%가 불가촉천민(간디가 말하는 신의 자식인 하리잔)인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카스트를 폐지하려던 평화로운 혁명가 싯달타는 지금 비슈누의 제9의 환생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불교도는 0.7%에 불과하다고 한다.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다.
"1994년, 장소는 인도 북부의 비하르. 상층 카스트 여자와 사랑을 나눈 죄로 스물다섯 살의 불가촉민 청년이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청년은 사랑의 가시밭길을 넘어 황천길로 떠났다." (138쪽) (중략) 콜카타에서 상수도를 건설할 때 같은 수도관에서 흐르는 물을 불가촉민과 함께 마실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 운동이 거셌던 (145쪽) (중략) 힌두는 소를 숭배하고 원숭이, 코끼리, 코브라를 신으로 깍듯이 모신다. '채식주의'를 부르짖으며 살생을 비난한다. 그럼에도 인도에 여전히 '사람 위에 동물 있고 동물 밑에 사람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수드라 계층이 50%를 점하고 있으니 하리잔을 포함해 거의 70%가 서민이다. 그런데도 인도인들은 겉으로는 카스트를 폐지하자고 하면서도, 서민들은 특별 대우를 받기 위해서, 귀족들은 전통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카스트의 유지를 원하고 있다.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인도가 매우 뜨거운 열대의 나라이기 때문에 한 번 전염병이 들면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오염원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은 옳았지만 그들을 깨끗한 목욕탕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격리시킨 외딴 곳으로 추방하고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만 불러 들여 일을 시킨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도다. 그나만 자본주의가 이식되어 돈이 있고 없음으로 인해 신분의 차별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들은 차가운 그늘 속에서 생을 마쳐야 한다.
"크리슈나 종파는 정통 힌두교로부터 해방을 기도한다. 그들은 기존 사회의 엄격한 신분질서를 뛰어넘어 낮은 계층의 참여를 환영한다. 이 종파는 낮은 카스트와 여성은 물론 힌두 세계의 바깥에 있는 불가촉민에게도 최초로 문을 연 집단이다. (중략) 푸른색 얼굴의 영원한 소년 크리슈나는 16,000명의 아내와 18만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한다. (중략) 우유, 버터, 요구르트에 집착하고 도둑질과 같은 비도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그는 자유와 자연스러움의 대변자였다." (166쪽)
수드라나 하리잔만큼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집단이 또 있다. 여성이다. 도대체 인도라는 나라에서는 사람 대접을 받으며 권리와 존엄함을 인정받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한다고 해서 최대한 자제를 하려 하지만 경멸감이 밀려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1987년 9월. 꽃다운 나이 열여덟. 루프 칸와르는 산 채로 남편의 시체와 함께 화장되었다. 수백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고 그녀는 사티 여신(시바의 첫번째 부인으로 아버지에게 시바가 모욕을 당하자 항의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했다고 한다.)으로 승천했다. (중략) 이론적으로 사티는 사랑 때문에 남편의 뒤를 따르는 아내의 자발적인 행동이다. 기이하지만 유교 문화권의 여필종부와 유사하다. (중략) 사건은 보수적인 주정부가 반사티 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으나 사티가 일어난 지역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성지로 바뀌었다. 사건 이후 루프 칸와르의 친정과 시가 양가가 상당한 부를 챙겼음은 물론이고" (186쪽)
이런 기막힌 현실에서 이런 위대한 문구가 있었다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고대의 마누는 '여성의 몸은 신성하기 때문에 꽃으로라도 세게 때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186쪽)
사람과 여자에 대한 참혹한 이야기 보다는 카스트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평화로운 혁명가 싯달타의 이야기가 차라리 낫다.
"부처님이 제자에게 이르셨다.
"여자를 보아서는 안 되느니."
"만약 여자를 보면 어떻게 합니까?"
"말을 하지 말아라."
"만약 여자가 말을 걸면 어떻게 합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라." (174쪽)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돌리면 힌두와 이슬람의 갈등이 있다. 모든 평화로운 종교들이 그렇듯이 인도에서도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과 다툼이 벌어진다. 그 이유가 뭘까. 결론은 영국의 식민지배였다. 소수로 다수(1951년의 인도는 4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영국인은 군인 6만명을 포함해서 겨우 17만명)를 지배하려 했으니 분리정책만이 유효했다. 이 정책은 800년의 평화체제를 깨고, 이전까지 지배계급이었던 무슬림과 대다수를 차지한 힌두들의 대립을 격화시켰다. 한쪽은 좌절감과 두려움 또 다른 한쪽은 부러움과 복수심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947년, 무슬림은 파키스탄에다 딴살림을 차렸다. (중략) 공포의 술탄,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는 1001년부터 1027년까지 무려 열일곱 번이나 인도를 침략하여 약탈과 살육, 파괴를 자행했다. 이 때문에 힌두는 오랫동안 무슬림을 잔인무도함과 동일시했다. 마흐무드는 갔으나 이후 인도에서는 본격적인 무슬림 지배가 시작되었다. 1857년, 무굴의 멸망까지 800여 년이라는 길고 오랜 세월이었다. (중략) 영국의 통치가 확립되면서 양측은 사이가 벌어졌다. (중략) 기초의회와 관직을 향한 자리싸움이 시작되었다. (중략) 점차 양측의 경쟁은 심화되었다. 절망과 자기 회의에 빠지면 작은 갈등에도 불이 붙는다." (267쪽)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고 말하더니 카레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결국 카레(커리)는 있다.
"카레라는 이름은 양념이 많은 풍성한 인도 음식을 지칭하는 영어권의 명칭이다. 어원은 소스라는 뜻을 지닌 타밀어 '카리'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중략) 카레의 맛은 25가지의 양념을 섞어서 낸다. 가장 널리 알려진 양념은 크로커스 꽃에서 나오는 사프란으로 노란색을 낸다. (중략) 카레는 그 내용물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야채가 주재료이면 야채카레이고 생선이 들어가면 생선카레가 된다. (중략) 그러다보니 카레의 종류가 무려 2,000여 가지. 매운 카레를 먹은 후에는 열을 받은 몸을 식히라고 요구르트가 제공된다." (219쪽)
인도에 대해 다룬 책은 캄보디아에서 읽었던 류시화의 책 이후로 처음이다. 류시화의 책은 아름다운 환상이었다. 이 책을 통해 본 인도는 참담하고 안타까운 나라다. 인구가 많아 가능성이 있고, 위대하고 평화로운 문명, 넓은 국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가까이 하기에 두려운 나라다. 아름답고 귀한 것들만 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이면에 있는 끔찍한 것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니 어떻게 감동할 수 있겠는가. 뭐 좋다. 겪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노 프로블럼"을 겪으며 즐거운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유보다. 여행을 꼭 가고 싶냐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답하겠다. 그저 가까운 곳에 갈 곳이 없으니 그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캐나다나 남미는 너무 멀지 않은가.
-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 이옥순 지음 / 책세상(2013년 8월 / 개정증보판 1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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