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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현대 민주주의의 정책을 얻을 수 있을까_맹자 사람의 길 상_140809~0823

한울빛 도서관에 들러 다섯 권의 책을 빌렸는데, 그 중 한권은 소설이고 나머지는 철학책이다. 대출기간인 3주 내에 이 책들을 다 읽겠다는 욕심보다는 이 책들이 내 주위를 감싸면서 보내오는 기운을 느끼며 즐기고 싶었다. 한 권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이야기고, 한 권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며, 한 권은 정도전의 정치 철학에 대한 이야기다. 그 나머지가 공지영의 소설이고, 제일 먼저 손에 든 철학책이 맹자다.  

 

이 책 저 책을 왔다갔다 하며 읽는 까닭은 지루하거나 주의력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8월 18일) 생각을 해 보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어려서 공부를 할 때 한 과목만 배운 것이 아니다. 여러 과목을 동시에 배우는 것이 학생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생활에 쫓기며 살게 되면서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으려고 한 권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것처럼 잘못 인식된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은 결코 흉이 아니며 공부를 잘못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공부를 하는 것이 정도이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또한 즐거움일 것이다.


도올 김용옥이 강의하고 쓴 ‘맹자, 인간의 길’이라는 책은 유한킴벌리가 사회공헌 연구사업으로 기획 출판되었다고 한다. 기업을 일으켜 그 속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삶의 기반을 마련하게 하고, 더불어회사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노동자들에게 심어 주어 내 일처럼 일하게 하며, 더 나아가 기업의 소비자인 시민들에게 기여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런 기업인은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 자본주의 기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나에게도 기업을 일으킬 아이디어가 있다면 주저없이 나서겠지만, 많은 것을 받았지만 그런 능력까지는 받지 못했다. 좋은 기업 하나를 더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더 좋은 농장 하나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농부의 길이 나에게 맡겨진 천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김용옥의 인터넷 강의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찾아서 들으며 책을 읽을까 하다가 일단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다시 한 번 그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강의를 들으면 책 내용이 훨씬 쉽게 들어오기는 하겠지만 이미 그의 강의를 많이 듣고 있어서 이 책만은 스스로 읽으며 느껴보고 싶다. 다만 한 번 더 맹자를 읽기 위해서 그의 강의를 남겨두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미 이년 전에 맹자를 한 번 읽기는 했다. 어떤 해설도 없고 단순 번역된 책이었는데, 독후감도 남겨 놓지 않아서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하지를 못한다.  매우 흥미있게 읽었으나 기대 만큼 풍부하게 얻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김용옥의 해설이 곁들여진 맹자를 읽는만큼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제발 지치지 말고 끝까지 즐겁게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맹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책은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한 권이 43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며, 깨알 같은 글씨로 원전이 소개되어 있다. 원문까지 다 읽고 느끼고 이해해 보고 싶다. 소설책 읽듯이 어쩌다 한 문장을 발견해서 그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너무 많은 지식과 멋진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반복한다면, 물론 책의 가치로 보아서 반복정도가 아니라 외우기까지 해야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한다. 시간과 노력은 아깝지 않은데,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적당하게 읽고 싶다. 삼봉 정도전은 정몽주가 보내 준 이 책이 너무 좋아서 하루 반쪽 씩만 읽으며 시묘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찌할까. 마음 닿는데로 가자. 일단 아무 정리도 하지 않고 110쪽을 읽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오기의 성공과 최후, 상앙과 진효공의 24년에 걸친 개혁정치다. 맹자의 시대와 맹자가 묻힌 시대, 그리고 맹자의 철학이 조선에서 부활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진정한 학문과 철학은 다시 부활해서 더 큰 생명력을 갖는 것이다.

 

전국시대의 오기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은 노나라의 장군이 되기 위해 제나라 사람인 부인을 죽였다. 그런데도 등용되지 못하다가 위문후에게 등용되었을 때는 수레를 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식량을 지고 걸으며 창에 맞은 병사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 독을 빼내 주는 지극한 사랑을 실천했다. 장군으로서는 완벽했으나 훌륭한 가장이 되지는 못했다. 진효공에 등용된 상앙도 무려 24년 동안이나 호흡을 맞춰 강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귀족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군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줌으로써 국가 발전의 기틀을 세웠다. 오기는 귀족들을 변방으로 배치하여 새로운 경작지를 개간하게 하였고, 녹을 세습하지 못하게 하여 분배의 형평성을 높였다. 상앙은 남자 성인들을 분가하게 하여 무위도식하는 인력을 줄임으로써 농업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왕족이라도 군공을 세우지 못하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군왕 아래의 모든 사람들이 생산과 방위에 종사하게 하는 이들의 전략은 두 나라를 강력하고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었다.

 

동일한 재산이어도 편중된 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지만 잘 분배된 부는 경제를 순환시키고 사람들의 피를 돌게하여 나라 전체가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절대왕정체제에서도 그랬으니 훨씬 진보된 자본주의가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분배의 공정성이 실현된 자본주의 국가는, 절대왕정의 진과 위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로 발전한다. 순자가 기원전 300년의 진나라를 묘사하고 있는데 국가로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정치가 바로 설 때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니, 이런 모습과 다른 행태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올바른 정치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증표인 것이다.

 

"민속이 순박하고, 지방의 하급관리들이 한결같이 공손하고 검소하고 인정이 넘치며, 도성 안의 사대부 벼슬아치들도 아첨하거나 당파를 짓지 아니하며 공평무사하며 퇴근하는 즉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조정을 들어가 보아도 깨끗하고 조용하며 백 가지 일들이 그때 그때 즉석에서 처리되어 너무도 한가롭고 편안한 모습이라 마치 정치를 하지 않는 태평한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95쪽)  


가족을 포함해서 사람을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하는 일은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비슷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으려면 남다른 포용력과 지혜, 그리고 유머가 있어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그런 내용의 열전이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골계열전’이다. 그 열전의 핵심 인물이 전국시대를 살았던 제 위왕의 순우곤이라는 인물이다.

 

“(‘골계’는) 술병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술처럼 술술 쏟아지는 말이 마구 사람을 어지럽게 하면서도 그 어지러운 가운데 계고할 만한 씨알맹이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134쪽)

“순우곤은 직하궁의 초대총장이다. (중략) (출신이 비천했으나 뛰어난 기억력으로 높은 학식을 연마한)순우곤은 돈과 권력을 우습게 알고 성품인즉 엉성하고 허술하게 보이지만 상대방의 심중을 정확히 간파했으며, 일체의 권위주의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코믹한 인물이었다. 수수께끼와 유모아의 도사였다.” (132쪽)

학자다운 학자를 알지 못하여 과연 그렇게 많은 제대로 된 학자들을 모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해 보고 싶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경찰들이 경찰서장 이상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1억원 이상의 뇌물이 공여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럴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경찰서장이라 함은 경찰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지식과 경륜을 쌓은 학자들이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높은 직위를 수행할만한 학자는 없고, 돈의 노예이거나 돈과 권력을 한 손아귀에 움켜 쥔 욕심의 화신들만이 고위직에 앉아 있다는 한 사례일 것이다. 썩은 전통과 공공선을 모르는 정치의 결과물이다. 이것이 충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시민들이 선택한 정치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옛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을 부러워할 뿐이다.

"(제나라의 수도 임치의 성문 중 하나인) 직문 부근에 큰 저택을 즐비하게 지어 천하의 학자들을 초빙한 것이 곧 직하학파인 것이다. 이들에게 정부의 관직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사상에 관해 제각기 연구하고 토론하게만 했다. 이들은 상대부(차관급 정도)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이곳에 모여든 학자나 사상가를 그들이 사는 지역의 이름을 붙여서 '직하학사'라고 불렀던 것이다. 제위왕 때 시작하여 제선왕 때는 천여 명에 이르렀고, 제민왕 때는 만여 명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그 융섭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전국시대의 모든 학술활동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으며 이후 중국문명의 모든 학술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 최초의 총장이 순우곤이었고 그 마지막 총장이 순자였다." (141쪽)

맹자가 제선왕의 부름을 받아 직하학파의 선비들이 우글대는 제나라로 가서 상경의 대접을 받으며 왕도정치를 이야기하는데, 제일 처음 이야기한 것은 하지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구분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사회는 건강하고 부유해진다. 진리는 이제 막 철기시대에 접어든 전국시대나 비행기와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현대 사회나 언제나 같다. 그리고 말한다. 백성들은 예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을.

 

"恒産(안정된 생업)이 없으면서도 恒心(항상스러운 도덕적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선비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 한 일반백성 대중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항심도 없어지고 맙니다(卽無恒産 因無恒心). (중략) 백성들로 하여금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한 다음에 속속 형벌을 주게 된다면, 이것은 법망으로 인민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그물이란 보이지 않아 속는 것이니 이것은 치자의 기만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164쪽 / 梁惠王章句 上)

 

그리고 恒産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한 가구 여덟 명의 식구를 기준으로 해서 5묘의 택지(930평)가 있어서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해야 하고, 100묘(2만평)의 토지가 있어서 세금을 내고도 노인들은 가볍고 따뜻한 비단 옷을 입고, 모든 식구들이 고기를 먹으며 예의와 효제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부유하게 살 수 있어야 왕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4인 가족이 500평의 택지를 보유하고 1만평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이것을 금액으로 환산해 보면, 1만평의 땅은 평당 5천원의 매출이 일어난다고 보았을 때, 약 5천만원의 소득이 있어야 하고, 택지가 보통 30만원 정도라고 했을 때 약 1억 5천만원의 땅과 1억원 정도의 집을 보유한다고 하면, 2억 5천만원 정도의 부동산이 있어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스스로 해석해 본다. 시민 모두가 2억 5천만원의 집을 가지고 5천만원의 가구당 소득을 갖게 할 수 있는 경제 규모를 갖춘 국가를 만들어 내는 정치가야 말로 평생 독재를 해도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을 위대한 정치가가 될 것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불이라면 4인 가구가 8천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고, 그 정도면 2억 정도의 집은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미 충분한 생산력을 갖춘 나라다. 그런데, 부의 배분에 실패해서 누구는 8천억원을 갖고 있고, 대부분은 8백만원을 벌고 있다면 평생 세습하는 왕노릇은 커녕 5년의 정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런 정치가들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이 충분한 생산력을 갖추고도 가난하고 나약한 국가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 몸에 스스로 밧줄을 묶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울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역사가 한 번에 진전된 적은 없다. 진효공이 상앙과 24년을 갈고 닦아서 진시황이 중국 전체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축적되어야 변화가 온다는 것을 알고 초조함이 없이 바른 길을 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재산은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한 의사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만지는데 드는 비용이 적게는 17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이 든다고 했다. 좋은 재료와 좋은 기술, 안락한 장소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다. 이것은 보통 삼만원이면 할 수 있는 머리 치장에 최소 다섯 배에서 열 배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머리 치장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다섯 배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지만 가능한 소비다. 집을 보아도 그렇다. 부천이나 농원 근처의 집들은 3억원이면 4인 가족이 생활하는데 넉넉하여 큰 불편함이 없다. 그런데도 많은 부유한 사람들은 10억원이나 20억원을 넘는 집에서 살아야 안전하고 기반시설과 문화시설이 풍족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가장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자산인 부동산도 세 배에서 일곱 배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 역시 최소 다섯 배 정도는 벌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 가방, 옷 등 모든 부분에서 이런 사치스런 소비를 지속한다면 부자들은 적어도 일반인의 다섯 배는 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삶은 여유가 있을 수 없다. 연봉 천만원도 안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인데, 연봉 1억원이 넘는 사람들이 수십 만명에 이른다.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사람 중에 상당 수는 이런 사치스런 생활에 길들여져 있어서 주위 동료들이 저임금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하고 학식이 부족하고 품위가 없으며 게을러서 그렇다고 단정지어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1억원을 받아도 나눠 줄 것 보다는 쓸 돈이 더 필요하니 주변을 고운 시선으로 둘러 볼 여유가 있겠는가. 맹자는 제선왕에게 이것을 말한다. 참으로 유연하다.

 

"왕이 말한다 : 과인이 병통이 좀 있소. 과인이 너무 재물을 좋아한단 말이오. 왕정을 실현하는 데 방해요소가 아니겠소?

 

대답하여 말씀하신다 : 주나라의 초기 성군 중에 (중략, 공류라는 분은) 매우 재물을 좋아하셨지요. (중략) 노적가리가 산처럼 쌓였다. 창고 또한 곡물로 가득찼다. (중략) 남아있는 인민은 창고에 충분한 곡식의 축적이 있으니 걱정이 없고, 길 떠나는 인민은 푸대에 휴대식량이 잔뜩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중략) 왕께서 재물을 좋아하신다 한들, 그것을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신다면 왕께서 천하를 통일하는 왕정을 행하시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이까?

 

왕이 말한다 : 과인에게 그것 말고도 또 병통이 있습니다. 과인은 여색을 너무 좋아합니다. 이것도 왕정에 장애가 되겠지요?

 

대답하여 말씀하신다 : 옛날에 고공단보 태왕도 여색을 좋아하셔셔 (중략) 말을 달려 도망갈 때에도 그 부인을 껴안고 달렸다. (중략) 고공단보의 치세 당시에는 (중략) 모두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요. 왕께서 여색을 좋아하신다면, 혼자서 처첩을 잔뜩 거느리지 마시고 백성들과 같이 즐기며 여자를 독점하시지 않으신다면, 천하를 통일하는 왕도를 구현하시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이까?" (189쪽 / 梁惠王章句 下)

 

고대와 현대의 차이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인간 생명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적벽대전이 영웅들의 전략싸움이라고 하지만 수백만 민초들의 죽음의 기록이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죽음에서 보여지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듣노라면 수백만 일이 지나도 듣기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하루살이처럼 스러져가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는 현대의 생명존중 사상은 고귀하다. 세월호의 주검들이 세계인의 연민을 받고 있고, 지진이나 태풍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구하려는 세계인의 노력이 가상하다. 에볼라의 창궐로 벌어지는 혼란과 연민도 하나의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다소 거칠더라도 생명에 대한 집착을 읽을 수 있다.

 

맹자는 바른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정치가는 군왕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一夫)이라고 했다. 도올은 이를 '한 또라이 새끼'로 적나라하게 해석한다. 도올의 번역이 훨씬 더 훌륭하다. 공개적으로 용기있게 그렇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비겁함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정치가는 그 또한 비참한 길을 걷게 해 주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맹자의 말이다.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위정자의 폭력은 상상을 뛰어넘는 비극을 초래한다. 그 위정자 하나를 제거하느라 또 다른 애꿎은 생명들이 희생해야 하니, 평화로운 방법으로 잘못된 정치와 불의한 정치가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의롭지 못한 정치가들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단순하면 그들의 불의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두운 미로 속에 어떤 문제가 들어있다면 그것은 불의의 정치가가 사사로운 반민주의 정치를 음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하된 자로서 그의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 ; 도둑 적)이라 일컫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 ; 잔인한 잔)이라 일컫습니다(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잔적의 인간은 '한 또라이 새끼(一夫)'라고 일컫지 임금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왕이 한 또라이 새끼 주를 주살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나이다." (198쪽 /惠王章句 下)

 

창덕궁의 대전은 仁政殿이다. 仁의 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던 조선을 상징하는 대궐인 것이다. 그런 조선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비난을 일삼고 부끄러워했다. 도올은 조선이 유지되던 당시에 오백 년을 유지한 왕조가 없었다고 하면서 조선왕조의 위대함을 말한다.

 

"우리는 막연하게 고려 후기에 송학, 즉 주자학이 들어왔다고 알고 있으나 실상 충격적인 핵심은 '맹자'의 유입이었다. (중략) 고려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대형교회보다 더 큰 불교사찰의 농간에 썩었고, 미제국주의보다 더 오래되고 강력한 원나라식민지 타성으로 썩어 문드러졌고, 식민지체제에 빌붙어 착취만을 일삼는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의하여 국민드르이 민생은 처참하게 황폐화되었다. (중략) 신암리에서 삼봉과 맹자가 만난 이 사건이 이미 조선왕조의 탄생을 숙명지었다! (중략) 맹학의 민본사상의 인간론이 그의 혁명론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략) 정도전이 구상한 조선왕조는 왕권보다 신권이 강화된 재상중심제의 국가였다. 이것은 맹자의 혁명정신을 철저히 구현키 위함이었다. (중략) 정도전의 구상을 방원은 수용하였고, 정적은 무참히 제거했으나 왕권을 제약하는 제도적 골격은 남겨두었다. (중략) 조선의 왕들은 예외 없이 동궁시절부터 서연을 통해 사부로부터 '맹자'의 세뇌를 받았고, 또 홍문관 학사들과 경연을 벌이면서 항상 '맹자'를 토론했다. 일반 촌부의 집까지 '맹자'는 가장 흔한 책 중의 하나였다. 조선은 '맹자'의 나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4쪽)

 

자주국방과 국가보위가 국민의 병역의 의무로 이행될 수 있을까. 맹자는 답한다. 위정자가 시민과 더불어 죽기를 각오하고 훈련하고 준비하고 싸울 때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고.

 

"등문공이 물어 말하였다 : 등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대국들인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껴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나라를 섬겨야 할까요? 초나라를 섬겨야 할까요?

 

이 난감한 질문에 맹자께서는 매우 명쾌히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 (중략) 묘안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해자를 백성과 함께 깊게 파십시오. 그리고 성을 백성과 함께 높이 쌓으십시오. 그리고 백성과 더불어 성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백성들과 더불어 같이 죽을 각오를 하신다면 백성들은 왕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의 살길이 보입니다." (217쪽 /惠王章句 下)

 

이런 대화가 있기 전에 아무도 나라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정말로 가슴 아픈 일에 대해 맹자의 명쾌한 답변이 있다. 나라가 있어야 평안한 집과 즐거운 일과 풍요로운 재산이 있는 것이다. 나라가 타락한 위정자들과 욕심 많은 재산가들에 의해 분탕질 된다면 엄청난 위기가 찾아오고 모두의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내가 데리고 있던 고관 중에서 군대의 대장으로 나가 싸운 사람이 33명이나 전사했는데, 졸병으로 나간 인민들은 대장을 지키고 전사한 사람이 한 명도 없소.

 

(중략) 그런 일이 어찌 거저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기근과 악역이 도는 흉년이 되면 임금님의 백성 중에 늙은이와 어린이의 시신이 도랑에 뒹굴고 장성한 자들은 흩어져 사방으로 가버리는 자 수천 명인데도 임금님의 곡물창고에는 곡물이 가득차고 재화창고에는 재화가 충만하거늘, 고관놈들은 당신께 그런 정황을 소릭히 아뢰는 자 한 새끼도 없으니, 이는 위에 있는 자들이 태만하여 아랫 백성을 잔해하는 것이옵니다. (중략) 백성들이 전역을 당하여서야 비로소 윗사람들에게 되갚을 수 있었던 것이니" (214쪽 / 惠王章句 下)

 

드디어 맹자의 호연지기가 나오는데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되 이해되지 않으면 건너뛴다. 그래도 맹자와의 교감이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아주 쉬운 부분들만 다시 읽어 본다. 道(진리)를 추구하고 義로운 생각을 하면서 늘 자신을 수양하고 공부하면 몸에 배이는 생명의 기운이라고 할까.

 

"(증자께서) 너는 용기를 좋아하느냐? (중략) 자기 내면을 반성해보아 바르지 못하면 갈관박(비천한 인간) 앞에서도 벌벌 떨게 되며, 자기 내면을 반성해보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으면 비록 천군만마의 대군이 밀어 닥쳐도 용왕매진할 수 있다. (중략, 호연지기란) 정의감에 의하여 배양되고 사악함에 의하여 상해 받지 않는다면 6천 단신의 기라 할지라도 천지간에 꽉 들어차는 것이다. 그 기됨이란 항상 의와 배합되며 도와 더불어 하는 것이니 (중략) 의로움에 의하여 일상적으로 축적되어 인간 내면에서 온양 배양되는 것이지, 어떤 돌발적인 정의감의 우발적 행동에 의하여 취득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중략) 호연지기를 기른다고 하면서 무리하게 빨리 조장하는 것은 밭의 싹을 뽑아 올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240쪽 / 公孫丑章句 上)

 

오늘(21일 아침 8시) 맹자가 호연지기를 이야기 하는 부분을 다시 거듭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은 志와 氣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는 몸 속에 가득한 기운이다. 앉거나 서거나 일하거나 놀거나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행위와 감정들을 드러내게 하는 기운이다. 이 기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지 즉 意志다. 지는 기를 조절하지만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고 상호 교호작용을 한다. 마치 작용하는 힘에는 반드시 반작용하는 힘이 따르듯이.

 

氣는 두려움에 의해 손상되기 때문에 부동심을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스스로 반성하여 잘못이 없으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지고 의지가 강해져서 약화되는 기를 일으켜 세워 용기를 내게 하고 그것으로 부동심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용기라는 것은 두려움을 이기는 기운이며, 인간의 기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氣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말로써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에 집착하고 상심하여 어지럽혀진다. 氣는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이해하여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에 집착하고 상심하여 어지럽혀진다. 기가 어지럽혀지면 인간은 활력이 없어지고 시들어버린 쭉정이가 된다. 기가 빠진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가 맹자의 지와 기에 대해 알게 모르게 잘 교육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맹자는 말로써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인  知言을 잘 한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말을 잘 알아 들어서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이유로 무엇을 원하여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이해할 때, 기가 흐트러지지 않아 부동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맹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노력하면 지언을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를 어지럽힐 수 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쉽게 얻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기가 다칠 위험을 피하려고 한다며, 호연지기를 길러서 부동심을 유지해야 한다.

 

浩然之氣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조절될 수 있는 인간 생명활동의 기운이다. 호연지기는 곧 용기와 부동심의 기운이다. 호연지기는 진리(道)를 추구하는 義로운 마음을 통하여 인간 내면에서 천천히 키워지는 것이다. 인간이 행동을 하고 뒤돌아 보았을 때 잘못이 없으면 호연지기가 키워지고 축적되고, 께름칙하게 되면 호연지기는 상실된다. 호연지기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 끊임없이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기운인 것이다.

 

호연지기는 의지를 갖고 義를 배양한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얻어지는 기운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해서 호연지기가 커지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진리와 의로움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표출함으로써 서서히 키워진다. 부동심이 생겼다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게 되면 호연지기도 매우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떤 일에도 두려움이 없이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되면 이것 역시도 호연지기가 많이 배양된 결과라고 보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지 한 순간에 호연지기를 조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흠, 곧 잊어버리겠지만 도올 선생의 해석을 근간으로 이해한 맹자의 부동심, 용기, 지와 기, 호연지기, 도와 의, 조장에 대한 깨달음이다.

 

 

맹자는 제자인 공손추의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답하면서 세 명의 성인을 말하고 그 중에서 공자를 으뜸으로 말한다. 다만, 백이와 이윤도 성인으로서 세분이 모두 사방 백리의 땅을 가진 나라의 임금이 되었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보았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의와 애민 사상을 이야기 한다.

 

"하나의 불의라도 행하여, 하나의 무고한 인민의 생명이라도 죽여 설사 천하를 얻으실 수 있다 해도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行一不義 殺一不辜 而得天下 皆不爲也)." (242쪽 / 公孫丑章句 上)

 

정책의 요체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 두었다. 맹자가 기원전 300년 전을 살았던 분이시니 현대식으로 해석은 해야겠지만 큰 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맹자와 당시 지식인들이 생각한 올바른 정책을 간단하게 이해해 보자.

 

먼저, 尊賢. 존현은 현자와 능자를 있어야 할 위치에서 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대 정치에서는 자유롭고 많은 정보를 가진 시민들이 바른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유 선거로 능력있고 정의로운 정치가를 뽑지 못한다면, 과거에 현명하지 못한 군왕들처럼 시민들은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시민들의 선택을 받아 인사권을 갖게 된 정치가는 존현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인물들을 발탁하여 임명해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면, 역시 과거의 군왕들처럼 비참한 최후를 부끄러움 몰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존현이 이루어지는 세상에는 유능한 선비들이 서로 벼슬을 하려 나서듯이 현대에서도 시민들이 능력있는 정치인을 잘 선택하는 모습을 보이면 현명하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에 활발하게 나서게 될 것이고, 주인인 시민이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선출권을 갖고 있는 시민들과 인사권을 갖고 있는 선출된 정치인들은 맹자의 존현 정신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市場. 물건을 잘 보관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고, 보관은 비용이 들지 않고, 물건은 썩거나 손해보는 일 없이 유통되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대형 마트는 피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 편의의 산물이다. 유통비용이 높아지는 것도 산물의 이동거리가 길어짐으로써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고려해서 유통 정책이 마련되어야 모든 시민들이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아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서비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仁術을 펼치는 좋은 의사들을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뛰어난 예술가들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어야 예악을 통해 마음을 평온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누군가 생산해 낸 좋은 물건이 팔리지 않고 폐기되어 부도가 나게 되면 자원의 낭비요 아이디어의 낭비요 인생이 낭비되는 것이다. 경쟁에 의해 살아나는 기업과 죽는 기업이 생길 수 있지만 그 폐해를 줄이는 것이 국가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도 좋은 물건을 사서 쓸 수 있도록 정책으로 지원하는 것도 국가가 시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좋은 시장은 좋은 생산자와 행복한 소비자가 만나는 곳이다. 그런 의지를 갖고 정책을 개발하고 개선해 가는 것이 정치가가 할 일이다.

 

셋째로 관소. 세관이다. 불법행위만을 단속하고 통행세나 물품 관세를 징수하지 않아야 천하의 물건과 여행객들이 드나들어 나라가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노동계와 진보 지식인들이 엄청난 공격의 화살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미 이천년 전에 맹자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은 자유무역을 주창했다. 재화와 서비스는 돌고 돌아야 한다. 추나라 사람 맹자가 제나라에 가서 상경 대우를 받으면 정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상이다. 신자유주의의 맹점은 자본과 재화의 무한경쟁이 아니라 인력 이동의 제한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재화와 용역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우리가 중동에서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교육을 받고 나라를 부강하게 했듯이 현대 자본주의의 지식이 부족했던 우리가 미국과 독일에서 수퍼와 광부로 일하면서 그 지식과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듯이 노동 인력은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수탈로 경제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은 불법 행위를 위한 악의 세력을 근절하기 위한 인력 이동은 막아야 하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나 기술과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이유는, 똑같은 노동을 하고 세 배의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어난 임금이 교육과 경제로 다시 투입됨으로써 개인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로 농경. 농경은 곧 산업이며 경제다. 과거에는 공전의 경작을 돕는 일 이외에는 자신의 업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맹자는 말했다. 농업 이외에도 다양한 산업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에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기본 틀은 과거와 같다. 최소의 세금, 정전법과 같이 10%도 되지 않는 저렴한 세금이 생산과 기업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다. 세금을 줄이려면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 되어야 한다. 세금을 많이 걷으려면 개인의 수익이 충분해야 한다. 1억이 넘는 수익을 올리는 사람에게 40%의 세금은 많은 것이 아니다. 천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백만원의 세금은 과한 것이다. 적은 세금이라는 것은 이런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10조의 수익을 내는 기업이 2조의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2조의 내부 유보금을 비과세로 쌓아 둘 수 있게 하는 것은 올바른 세금 정책이 아니다. 천만 원의 수익을 내는 회사에 20%의 법인세를 부과함으로써 재투자의 여력을 빼앗는 것 역시 올바른 세금 정책이 아니다.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은 개인이며 개인들이 모인 기업이다.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되도록 세금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정치가의 몫이다. 비율이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만 금액도 중요한 것이다.

 

다섯째로 주택. 토지세나 인두세를 최소로 하로 부당하게 징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적절한 공간을 갖춘 제대로 된 집에서 국가 보위를 위한 기본 비용과 인력을 제공하면서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복지정책이나 조세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과 정신을 시민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니 단순하게 실현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려는 학자나 정치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원칙과 정신을 실현하려는 정치가나 학자는 문제를 최대한 단순화하여 집행하려 노력한다. 단순화된 정책을 실현하려는 이유는 개인의 사정을 무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최대한 공평하고 다수의 시민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것이 이유다. 정치 토론을 보라. 단순하게 가려는 정책과 단순한 정책을 시행하려는 정치가가 바로 인의 정치 즉 仁政을 실현하려는 정치가인 것이다. 깨인 시민들은 그런 사람을 선출해야 인의가 살아있는 나라에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나라는 仁者無敵 천하무적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존현, 시장, 관소, 농경, 주택) 항목의 정책을 진실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이웃나라들의 백성들이 그 나라 군주를 자신의 부모처럼 우러러 흠모할 것이다. (중략) 천하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천하에 적이 없는 자는 하늘의 명령을 대행하는 '천리'일 수밖에 없다." (251쪽 / 公孫丑章句 上)

 

단순함은 곧 명료함이다. 성인군자가 인정을 베풀지라도 신이 아닌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는 수 없다. 사사로운탐욕을 채우기 위해 통치행위를 빙자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인의에 입각해서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을 過라고 한다. 이렇게 과가 생겼을 때 성인군자가 취하는 자세는 명료함이다. 단순명료하게 잘못을 밝히고 그것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해서 모든 사람이 알게 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민과 더불어(與民)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도올의 시원한 번역이 맹자의 꾸짖음을 더 통렬하게 한다. 역시 단순명료한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자세는 인의를 저버린 비천한 자들이 쓸데없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허용한 세상의 주체인 시민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군자들이 과실을 범했을 때는 그것이 마치 일식, 월식과도 같아서 사람들이 모두 명백하게 놀란 심정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군자가 과실을 반성하고 고치면 어두웠던 해와 달이 다시 밝아지는 것과 같이 인민들이 모두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지금의 군자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의 과실을 뭉개면서 계속 밀고 나가려고 하는가! 게다가 지저분한 변명의 말까지 개칠하고 있지 아니 한가! (君子, 其過也, 如日月之食, 民皆見之 及其更也 民皆仰之. 今之君子 豈徒順之 又從爲之辭)" (289쪽 / 公孫丑章句 下)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경찰 인사문제 뇌물이 횡행하는 것은 모두 고위 정치가들의 잘못이고, 스승이 없는 교육자들의 책임일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 수 있는 것이니 세상에 인의와 품격을 갖춘 고위 공직자나 정치가가 없으니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 없지 않은데, 불의한 정권의 허수아비인 지식인들과 사리사욕에 눈먼 언론인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어 인의를 갖춘 군자를 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분탕질 때문에 진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군자의 덕은 위에 부는 바람과도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도 같습니다. 풀 위에 부는 바람에 따라 나부끼듯 감화를 받게 마련입니다." (310쪽 / 滕文公章句 上)

 

시인 김수영이 '맹자'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시 풀에서 비슷한 은유를 읽을 수 있다. 민이 훨씬 더 강화된 강력한 은유다.

 

           풀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맹자가 증자를 빌어 호연지기와 대장부의 삶의 철학에 대해서 설하는데, 일반 서민이야 이럴 수가 있겠는가. 삶의 문제는 쉽고도 어렵다. 처자를 먹여 살리지 못하는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없는 것이고,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아첨하고 비굴하게 굴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니 떳떳하게 한 삶을 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돈에 집착하는 것이다. 사람됨을 지키고 떳떳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했으니 돈을 추구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스스로 인간됨을 버리고 돈을 얻어 후대로 하여금 사람됨을 지키게 하고 싶지만 보고 배운 것이 비열한데 자식들 조차 그러지 못하니,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큰 부자를 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음과 의지가 가벼운 사람이다 보니 책 한 권의 끝이 보이자 더욱 서둘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천천히 읽어갈 수 있었던 정도전의 의지는 가볍지 않아서 존경스러운 일이다.

 

"증자가 말하였다 :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올리며서 아첨하는 말만 하고 살살 웃어야 하는 것은 여름 땡볕 아래 드넓은 채소밭에 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피곤하다. (중략) 군자가 마음에 길러야 하는 호연지기가 무엇인지,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인품절조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363쪽 /  滕文公章句 下)

 

현대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든가 내세울 정책이 있어야 한다든가 폭넓은 인간관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든가 대중을 설득하는 언변이 있어야 한다든가 여러 가지가 필요해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 될 만한 그릇인가 아닌가가 중요할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이 아니면 불인이고, 의롭지 않으면 불의한 것이고, 민본이 아니면 민폐다.

 

"요가 백성을 다스린 도리로써 자기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것은 곧 자기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공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사람의 길은 둘밖에 없다. 인 아니면 불인일 뿐, 중간 타협은 없다. 자기 백성을 폭정으로 괴롭히는 것이 극심하면 곧 자기 몸을 시해 당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나라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폭정이 극심하지는 않다 해도 그 군주의 몸은 위태롭게 될 것이며 나라는 점점 침탈당하고 쇠미하게 될 것이다." (388쪽 /  離婁章句 上)

 

책은 다 읽어 가는데 처음 목표한 한 자 읽기는 다 해 내지 못했다. 도올의 번역이 머리에 쏙쏙 박히도록 훌륭한데, 한문에서 그 글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첫째는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고, 둘째는 한자의 문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배운 한문 독해 실력으로는 도저히 독해가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한문 강독을 따로공부하고 다시 원문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시간 여유를 갖고 공부를 해야겠다. 서당을 열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공부할 수 있으면 더 좋겠는데, 수학 영어에 바쁜 아이들이 언제 한문을 읽으려 할까. 


천하를 구한다는 것, 큰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군왕이라고 하는 절대권력이 있고, 그 권력이 인의를 갖춰야 하며,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를 내어 실천할 지식인 집단이 있어야가능한 일이다. 직하학파의 초대 총장 순우곤이 능력있는 공자에게 왜 나서서 천하를 구하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러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맹자가 말한다.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당연히 즉각 손으로 구원해야 하겠지만, 선생께서는 형수를 손으로 구원하는 그러한 방편으로써 천하를 구원하겠나이까?(子欲手援天下乎)" (414쪽  /  離婁章句 上)


증자의 이야기로 부모를 모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내용도 있다. 가슴이 뜨끔하다. 부모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을 받들지 않고 내 뜻에 따라 부모님을 모셨으니 모신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양육된 것이다. 그것을 알고도 고치지를 못하니 어찌하면 좋을까. 고치지 못하면 평생 큰 일은 하지 못하거나 뒤늦게 크게 후회할 것이다.


"내 몸의 정의로움을 잃지 않고 부모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내가 항상 듣는 말이지만, 내 몸의 절조를 잃고 부모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 (중략) 증자가 그의 아버지 증석을 잘 봉양하였는데, 진지상을 올릴 때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를 찬으로 곁들였다. 진지를 다 드시고 나서 상을 물리실 때에는, 증자는 반드시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주오리이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꼐서 부엌에 음식이 더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중략, 증자의 아들 증원은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줄 지를 물은 적도 없고) 증자가 부엌에 음식이 더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없습니다' 라고만 대답했다. (중략) 이러한 중원의 태도는 부모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구복의 욕망을 채워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증자의 경우는 부모님의 심지를 봉양할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부모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는 중원의 태도보다는 증자의 태도가더 옳은 것이다." ( 417쪽  /  離婁章句 上)


언제고 '대학'을 읽게 되겠지만 영화 '역린'에 나오는 핵심 대사가 대학의 정신이었던 모양이다. 찾아보니 '중용 23장'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는 군왕의 마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시민 모두가 군왕의 자리에 있으니 시민의 仁義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신하가 곧 대통령이기도 하고 정치가 이기도 하다. 보통의 노력으로 그런 정치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감히 그 일을 하겠다고 쉽게 자부하는 이들은 곧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一夫에 불과하다.


"맹자는 대인에 의한 군주의 마음의 교정을 권고 (중략) '대학'의 '正心-誠意-致知-格物'은 이러한 맹자의 '格君心之非'의 논의가 발전된 것이다." (421쪽)


요즘 무엇을 배우거나 가르치면서 많이 느끼는 일을 딱 꼬집어 맹자께서 말씀해 주셨다. 배우는 데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되고, 나의 배움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잘 살펴가며 배우고 가르쳐야겠다. 


"사람의 병통 중의 하나가 타인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人之患在好爲人師)." (423쪽  /  離婁章句 上)


드디어 상권이 끝났다. 잠시 다른 책으로 휴식을 취하고 하권 읽기에 들어갈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많은 내용이 있었다. 그것들을 거듭 씹어 삼키지 않으면 몇 가지 이야기로만 남게 될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맹자를 읽고 외우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정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손자들이라도 가르쳐야겠다.


- 맹자 사람의 길 上 / 도올 김용옥 / 통나무(201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