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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멋있다_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_140812, 화

도올 선생으로부터 수타니빠따의 해설을 듣고, 그 경전 속의 코뿔소경을 찾아서 읽어 보고나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내용에 약간 실망하고, 공지영은 어떻게 20년 전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들고 부럽기도 해서 이 소설을 읽는다. 내용은 물론 이 소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 공씨가 코뿔소경을 어떻게 응용했을까가 무작정 궁금해서 읽는다.


들어 본 적도 없는 뮈세라는 시인의 시 한 편을 들고 나오는데, 약간 슬픈 울림이 있어서 좋지만 이해하려면 배경 이야기가 필요한 시다.


“나는 나의 힘과 삶을

 그리고 친구와 기쁨을 잃었다.

 (중략)

 진리를 알았을 때는

 그것이 친구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이해하고 느꼈을 때

 나는 이미 역겨움을 느꼈다.

 (중략)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17쪽)


그리고 겨우 두 사람 또는 스무 명 남짓의 집단인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여자로서의 회의와 열망이 펼쳐진다. 가족 문제에는 매우 쉽지만 어려운 해결 방법이 있다. 남자를 설득하거나 남자가 스스로 철이 들거나. 우리는 잘 해내고 있을까. 25년째 애정을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정되고 싶다는, 감추어두었던 욕구가 혜완에게 밀려왔다. (중략) 청소를 하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그것이 견딜 수 없게 느껴졌던 것은 단지 그것이 그녀에게만 강요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47쪽)


괜히 책 뒤표지로 가 보았다.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지 짐작이 되기 시작했는데, 괜한 궁금증이 일어나서 뒤를 보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힘든 것일까. 깨달음이 없는 삶은 곧 고통이다.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죽는 것. 그 고통들 사이사이에 끝없이 펼쳐지는 무엇 무엇에 대한 탐욕과 분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헛되지만 장구하고 집요하며 비굴한 노력도 또한 고통이다. 그 고통에 남녀의 구분은 없는데도 굳이 여성들을 위로하려고 한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딸들, 건투를 빈다!

 혼자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실은, 함께 가는 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제목은 불경에서 내가 인용했고, 나의 삶을 송두리쨰 바꿔버린 내 출세작의 제목이며, 기쁨과 영광만큼 수많은 모욕과 슬픔을 가져다 준 구절이지만, 여전히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으며 또 그 혼란 중에도 등불처럼 내게 의지가 되어주는 이상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해둔다.”(책 뒤표지)


주변에 이혼하는 친구들이 매우 드물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돈이나 외모를 보고 결혼한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연애를 하고 사랑이 깊어져서 한 결혼이 왜 이렇게 쉽게 깨지는 것일까. 작가는 끔찍한 말을 쏟아낸다.


“미치고 팔짝 뛰다가 그 작자를 죽이든지 자살을 하든지 해야 할 건 나야. (중략) 다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애들도 죽이고 그 자식도 죽이고 말 거야. (중략) 그 자식은 내 인생 전체를 도둑질해갔어!” (118쪽)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 행동을 통해서 얻은 달콤한 과실만이 아니라 무수히 겪어내고 이겨내야 하는 그것도 안되면 그대로 받아 넘겨버려야 하는 고통들도 받아 안아야 한다. 과실은 적고 고통은 크다고 해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가 행동 후의 상태보다 고통이 적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행동해야 한다. 이혼도 하고 사랑도 해야 한다. 그 전에 용서도 하고 설득도 하면 물론 더 좋았을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결코 행동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행동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즐길 수 없으며, 단순히 행동을 포기함으로써 그 자유를 얻는 것도 아니니라." (바가바드 기타 제3장) 


그렇지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처는 그렇게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개나 고양이와 같은 어떤 생명이, 집이나 회사와 같은 어떤 재산이 그들의 불화로 인해 심하게 타격을 받았더라도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자가 받은 상처가 어째서 부부가 서로를 더욱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일한 상처는 서로를 위로하고 합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이전에 아내의 일을 막는 남편과 아내를 비난하는 남편은 너무 일방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닐까. 남자들이 이기적이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치졸하고 용렬한 것만은 아니다. 오해가 있거나 편가르기이거나 부부관계의 파경을 남자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한 단순화이다. 


“그녀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그의 누이 앞에서 수치스러워하던 자신이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길 한 번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던 자신이었다. 이혼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이 없었다면 선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그 아무것도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185쪽)


행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례들을 살펴가며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그 과정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더욱 잘 행동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줄이고 후회도 줄여서 달콤한 열매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행동의 열매와 고통을 제대로 살필 수는 없다. 그러니 살피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 행동은 초라하지만 초라하지 않기도 하다. 


“어느 날 니가 이혼을 하겠다고 내게 말했지. 니 일을 하고 싶다고. (중략) 너는 초라해 보였어. 힘들어 보였구. 니가 돌아가고 났는데 왜 갑자기 우리 집이 그렇게 환하게 보였을까. (중략) 그리고 너는 힘들어 보였지. 나는 비겁하게도 숨어서 널 보고 있었어. 좀 지켜보자, 혜완이가 어떻게 되나. (중략) 이 세상의 수많은 여자들이 ..... 친구의 눈에 팔자가 드세고 청승스레 보여 가면서 그래도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고 있어.” (319쪽)


여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결혼에 대한 환상과 망상은 너무 극단적이다. 다행인 것은 환상을 그리는 쪽이 더 많기 때문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결국 망상의 힘이 더 강해져서 그 중 삼분의 일은 헤어지는 선택을 한다. 망상은 문제에 대한 해결 불가능의 표현이다. 둘의 문제도 풀 수가 없으니 어떻게 온존한 사회가 가능하겠는가. 부부의 문제는 얼마든지 풀 수 있는 것이고, 사랑으로 출발했다면 더욱 쉽게 풀리는 문제다. 이것은 정말 망상이다.


“나는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남편에게만 멸시를 받는 편을 택했던 거야. 니가 남편에게 받은 모욕을 거부하고 초라함을 택했듯이. 그래 나도 택했어.” (316쪽)


“혼자 살아라. 혼자 살아. 또 결혼해서 설거지하고 살림하느라고 울고 불고 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중략) 멋있는 남자들이랑은 가끔 연애나 하면서 ..... 살고 싶은 남자 있으면 살아도 보고.” (257쪽)


여자들에게 어려운 문제는 곧 부부의 어려운 문제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전에 점점 나아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리 많은 고려와 판단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노동시간이 하루에 6시간이나 7시간 정도이고, 법에 정해진 정당한 휴가가 지켜지면서도 인사평가는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일하려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일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말이다. 


스스로 억압받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들의 선택이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진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 타협하고 주눅이 들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 세상은 변화하지 않고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남자들의 선택 또한 분명하다. 자기 아내와 가족의 행복을 원하는 선택이, 자신이 세상이나 사회의 노예가 되거나 노예주가 되는 것이라면 세상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아내와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려면 선택을 그렇게 해야 한다. 


현대 한국의 정치체제는 그렇게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불만족 상태는, 90년대 이전에는 억압 구조였지만, 21세기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되 나와 배우자와 가족이 행복한 즉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한 선택을 하라. 그러면 세상은 바뀐다. 바뀌지 않는 세상은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불만족한 구조도 깨어졌으니 불만족스러운 선택도 언젠가는 개선될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 목숨 바쳐서 구한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런 몰골의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야.” (277쪽)


“행복한 가정과 나만의 일, 두 가지를 모두 가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 (261쪽)


정답은 이것이다. 다 알고 있는. 그런데, 매일 또는 매번의 상황 속에서 이 정답은 잘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 항상 정답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제일 위에 펼쳐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갈등과 지옥을 피해갈 수 있을텐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든 갈등관계의 부부나 가족들은 이것을 떠올리자.


“그렇게 불완전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애쓰지 않으면 문제는 남을 수밖에 없다는 거.” (293쪽)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일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멋있는 지혜의 말이라도 이해하고 위로받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이 말처럼 모든 애정과 탐욕과 분노에 휘둘리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35쪽)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공지영 / 오픈하우스(201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