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베기를 하려 했는데, 기계가 고장이 나서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콤바인은 임대를 할 수 있는데, 농원까지 운반할 방법이 없어서 이장님께 일을 맡겼는데 공교롭게 되고 말았다. 내일 또는 그 후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내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하면 이런 일들이 거의 없을텐데. 우리 농원의 규모로는 경운기가 적당하니 더 이상 기계를 사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일이 잘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쇠도 치고 장구도 치고 책도 읽으며 놀다가 점심 먹고 느긋하게 옥수수 돈부 밭으로 나갔다. 풀도 정리하고 돈부의 줄기가 옥수수대에 잘 매달려 있도록 정돈해 주는 일을 했다. 여기저기에 잘 여문 돈부가 있어서 따 내고, 눈에 띄지 않았던 옥수수도 따 주었다. 가을 밭에 나설 때는 필히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겠다. 여기 저기 따야 할 것들은 많은데, 두 손으로 운반하기는 불가능하다. 경운기와 비료 포대 주변에 나 있는 풀들도 시원하게 걷어내고 나니 마음이 다 개운하다. 잘 정리된 밭과 정원을 유지하고 싶은데, 몸은 게으르며 방법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마음만 항상 그것을 추구한다. 언젠가는 될 것이다.
흙살림에서 3만원을 주고 500ml 병충해 방지 약을 샀다. 두 차례에 걸친 난황유 살포로 심하게 벌레를 먹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여러 포기의 배추와 무에서 벌레 먹은 흔적이 선명하다. 천 배로 희석해서 뿌리라고 하니 60리터의 살포액을 만드는데, 60ml만 넣으면 된다. 우리 밭에 여덟 번을 뿌릴 수 있는 양이다.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뿌리는 수고나 3만원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하루하루가 관찰의 날이 될 것이다. 10리터씩만 매고 뿌렸는데도 어깨가 묵직하다.
고추들은 아직도 병들어 죽지 않고 꾸준히 열매를 달고 있다. 잘 하면 농약 치지 않고 한 해를 잘 넘길 수 있겠다. 고추가 병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박에 맞아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6월 11일에 훌쩍 키만 큰 고추 모종을 사다 심은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까. 더위에 시들지 않도록 5월에 모종을 심을 것이 아니라 아예 씨앗을 뿌리는 것은 어떨까. 남들 다 모종 사다 심으니 우리도 모종을 사다 심는다. 언제 한 번 날씨가 충분히 따뜻해 지고 나서 씨앗을 뿌려 고추를 키우는 방법을 사용해 봐야겠다. 건강한 고추가 있다면 실내에 들여서 겨울 내내 풋고추가 열리는지 바라보는 것도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다. 가을을 무사히 넘긴 고추나무가 과연 한 그루라도 남아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이고 모든 것이 기대다. 기대는 기대로만 그친다고 생각해야 속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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