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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사물 어울리듯 다 어우러지며 사는 것_140827, 수

쇠 소리도 쇠 마다 다르고, 장구도 장구마다, 북과 징도 각각 소리가 다르다. 여기에 연주자의 개성까지 들어가면 더욱 다양한 소리가 난다. 이 다양한 소리가 조화롭게 다 어우러졌을 때 멋들어진 풍물 소리가 난다고 한다. 단장님 말씀이다. 향악당 사람들은 성격도 다양하고 남녀노소가 다 어우러져 있는데, 크게 불화하지 않고 어울려 지내고 있으니 참으로 즐거운 곳이라고 한다. 화합은 어려운 일이다. 풍물이라는 하나의 공통 주제가 있지 않다면 이런 화합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쇠가 재미있는 것이 사람 마다 잘 치는 가락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빠른 가락(휘몰이)를 잘 치고, 어떤 사람은 느린 가락(삼채)를 잘 친다. 향악당의 어떤 분은 삼채 가락에 빠져서 수도 없이 삼채를 치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노력을 한 결과로 삼채를 중심으로 한 작은 풍물패를 이끌고 상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으셨다고 한다. 여러 가지를 다 하는 것이 좋겠지만 자기의 특성에 맞는 가락을 발견하고 그 가락을 경지에 오를 정도로 열심히 치면 쇠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풍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제법 경력이 몇 년씩 쌓여서 자신이 잘 한다는 것을 과시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분들 중에는 멋들어진 가락을 들으면 어떻게든 배워서 자신의 기량을 높이려는 분들도 있고, 그저 시기하여 잘난 체 하지 말라는 사람도 가끔 있다는 것이다. 스승을 만나게 되면 그분이 무엇을 잘 하시는지 자세히 보고 들어서 한 가지라도 배우려고 애써야지 제 기량만 뽐내며 울쭐 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병통 중에서(人之患) 다른 사람의 스승 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문제다(在好爲人師). 실력이 안되는데도 작은 지식을 뽐내며 가르치려 하는 것은 경계해야 일이며, 설사 가르칠 실력이 되더라도 靑出於藍 靑於藍 이라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대하고, 禮로 가르치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다.

 

장구를 배우는 사람들은 거의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강습에 지쳐서 졸업과 동시에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배우는 가락만 해도 서른 가지가 넘으니 머리도 아플만 하고, 육십이 가까운 나이에 그 많은 가락들을 외우려고 하니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풍물을 배우러 다닐 때를 돌이켜 보면 판굿 한 판의 장구가락을 암기하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연습할 자유로운 공간도 없는데다가 하루 종일 일터에서 시달리다 보면 여유롭게 장구 가락을 익힐 틈이 없었다. 농사를 지으며 생활이 안정되고, 저녁 시간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보니 장구든 쇠든 가락은 손쉽게 머리 속에 들어온다. 결국 여유가 있지 않으면 가락을 익히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가락의 세계에 푸욱 빠져 들어야 가락을 외우고 습득할 수 있다.

 

풍물의 진정한 맛은 앉은반에 있지 않다. 반드시 메고 쳐서 걷고 뛰고 대중 속에서 가락을 쳐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 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앉아서 풍물 가락을 하나라도 더 맛을 내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농사일로 피곤한 몸이라 서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몸을 더 괴롭히는 일이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향악당에서 풍물을 배우는 동안에는 한 달에 두 번은 무조건 나가서 뛰어야 한다. 언젠가는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풍물도 유행이 있어서 앉은 반으로 실내 공연을 하면서 신나고 멋있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할 때도 있을 것이고, 넓은 들에서 대중과 호흡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 대세가 되는 때도 있을 것이다. 단장님 말씀은, 유행은 그렇다 치더라도, 앉아서 멋드러지게 치고 나면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고, 메고 치면 흥을 나누는 것이므로 풍물의 진정한 묘미는 메고 걸으며 치는 것이다.

 

전통가락과 변주채는 구분해야 한다. 대대로 전승되는 가락들은 역사가 오랜 고전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검증되고 수도 없이 공연되고 다듬어져서 완성된 것이다. 그것은 고전으로서 교과서로 만들어 보존되고 기본으로 익혀져야 할 것이다. 변주채는 어느 예인이 작곡을 해서 내놓는 것이다. 전통가락에 기초를 두고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어 작곡을 한 변주채가 고전과 섞이지 않고 연주된다면 풍물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는 관점에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달라서 변주채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음악이 현대화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고전 가락도 옛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현대 음악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것을 다듬어 현대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溫故之新). 풍물의 현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새로운 가락의 작곡, 즉 변주채를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즐거워할 일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도 정통 가락을 구분하고 보존하는 것은 풍물의 저력을 보존하는 길이다. 저력이 확보된 뒤에 다양한 변주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것 그것이 정말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음악을 하는 길일 것이다.

 

열심히 해도 최소 3년은 해야 가락의 맛을 내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고, 맛을 내는 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멀고도 먼 길이다. 그 사이 큰 문제 없이 농사일이나 집안 일이 안정되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같은 상황이면 풍물을 꾸준하게 할 수 있겠다.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있고, 좋은 장소가 있으며, 수시로 공연을 해야 하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게다가 좋은 스승이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아직도 주머니 속에서 30%도 꺼내놓지 않으셨다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실력이 늘지 않으면 권태로움에 빠질까 걱정은 되지만 장구와 북과 쇠를 왔다갔다 하다 보면 그것도 쉽게 극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으라는 농사는 짓지 않고 매일 놀 생각만 하고 있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스럽기는 할 것이다. 기초반 장구 발표회 끝나면 중급반을 만들어서 좀 더 발전된 장구 가락을 습득하고 싶은데, 과연 몇 사람이나 모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열심히 하되 마음 급하게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