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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아버지의 운전면허증_140821, 목

시골에 살다 보면 차를 쓸 수 있어야 생활의 불편함이 없다. 장모님은 시골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어하신다. 장인어른은 그런 마음을 잘 아시면서도 차를 쓰지 못하시기 때문에 시골 생활을 반대하신다. 현명하신 선택이다. 전철역이 가까운 시골이 아니라면 노년의 귀촌은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이다.

 

정농께서는 젊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셨으나 형편 때문에 환갑이 지나서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하시고 험한 중고차를 받아 마이카 시대를 살고 계셨다. 그 사이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많은 접촉사고가 있었고, 그 때마다 가슴 아파 하셨다. 걱정없이 사후 처리를 잘 해 드리지 못한 무일에게도 잘못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나이 드신 후에 운전을 시작해서 몸에 충분히 익지 않으신데다가 팔순이 넘으면서 시력과 청력, 길을 인지하는 능력도 매우 떨어져 있으신 상태다. 그동안은 두 분만이 계셨던 관계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운전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일과 함께 일주일에 닷새를 생활하시기 때문에 일 정리를 잘 하면 굳이 운전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본다. 그래서 지난 해부터 시작된 논의가 올해 종지부를 찍고, 금년 9월로 만료되는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않고 운전을 그만두시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만료시점이 다가 오게 되자 정농께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신다. 운전을 안 하는 것으로 하되 급한 필요에 의해 차를 써야 되는 상황이 있으니 운전면허는 살려 두시겠다는 것이다. 월요일은 서예교실을 가셔야 하고, 화수목은 초등학교의 도우미 근무를 하셔야 되는 상황에서 운전을 못하시면 이동이 매우 불편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논으로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도 운전면허가 없으면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다.

 

다 맞는 말씀이다. 서예는 금왕 노인복지관에서 쓰시는데, 아버님을 모시고 나가서 무일이 할 일이 없는 것이 문제다. 운동을 하거나 함께 서예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운동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고, 서예를 배우려니 나이가 젊어서 노인 복지관을 이용할 수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서예 교실을 불편 없이 다닐실 수 있다.

 

사서 도우미로 근무하시는 학교는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래도 정농께서 자전거 또한 익숙지 않으시고, 작은 고개지만 4, 5개의 고지가 있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시더라도 힘들게 출퇴근을 하셔야 한다. 지난 번 화재로 불타버린 전기자전거를 새로 구입하여 자전거 출퇴근을 권해 드리기는 했는데, 연로하신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무일이 모셔다 드릴 수 있는 거리니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내년에 더 먼 곳의 학교로 배정될 경우가 자전거도 역시 위험하다.

 

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시는데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자고 말씀은 드렸다. 마음은 면허증 갱신은 하지 마시고, 대중교통과 자전거, 아들의 차를 이용하셨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365일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 자르듯이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결국 다음 월요일까지는 더 이상의 의견을 내지 않고 아버님 스스로 결론을 내리시기를 기다려야겠다. 흠, 인생은 참 어려운 결단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