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쇠치는 재미에 빠져 차분하게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이 글이 지워지는 날까지 계속해서 수정되고 늘어날 것이다. >
제4장
의욕에 넘쳐 읽기를 시작했지만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혼란스럽다. 사전 지식이 없으니 보이는대로 읽고 이해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고 머리 속에는 졸음이 가득하다. 원문에서 단 하나를 얻었다. 그것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실천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자기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다만 그 몸으로 행위를 하는 사람, 그는 아무 오점도 남기지 않느니라" (567쪽)
김용옥은 불교가 신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러나 불교의 원류의 힌두교도(사나타나 다르마를 따르는 사람들)인 간디는 사람이 이룩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실패로 끝났을 때 육화된 신(Avartar)이 나타나 다르마(진리)를 다시 세운다고 한다. 그러나 답은 분명하지가 않다. 신이 다르마의 회복을 위해 단순히 악행을 저지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악행 때문에 고통받는 것도 아니라 하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다만,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려는 인간의 진실된 노력도 쉽게 열매를 얻기 어렵다는 것만 이해할 뿐이다. 이것은 패배주의를 낳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악덕은 힘쓰지 않아도 생겨나고, 덕은 힘써 구해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누구나 쉽게 얻어지는 것에 물드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끊임없이 싸우고 (중략) 나는 그들을 서로 싸우지 않게 하려고 내 딴에는 열심히 고행을 했다. 그러나 나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략) 노예가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심판받을 사람은 그 노예의 주인이다. 그러니, 신이 다르마의 이지러짐을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만일 '아다르마'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신은 우리의 공경과 예배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사람으로 화육하는 길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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