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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주제를 가지고 시골생활을 한다_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_140709, 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제목이 참 그럴싸하다. 지식인도 아니고 가진 것도 없으며 특별한 능력도 없는 사람이 시골에서 천연 효모를 이용한 빵집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라 생각해서 열심히 읽었다. 무일농원의 작은 밭에다가 2층에는 살림집, 1층에는 예술이 숨쉬고 발효음료가 제공되는 카페를 만드는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미가 이곳으로 귀농하는 날까지 유보되어야 하는 꿈이지만 말이다. 카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주제가 있어야 한다.

 

"우리 부부는 참 희한한 빵집을 운영 중이다. (중략) 대표 메뉴는 '일본식빵'이다. 고택에 붙어사는 천연균으로 만든 주종을 써서 발효시킨 빵인데 가격은 350엔으로 좀 비싼 편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모,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는다. 우리 가게의 경영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6쪽)

 

저자 이타루는 할 일을 못 찾고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며 빈둥거리다가 헝가리에서 맛 본 와인들이 각 가정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할아버지의 꿈이었던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지만 성적이 미치지 못해서 농대를 가게 되었고, 시골살이를 꿈꾸며 또 다른 세균의 세계인 발효빵을 만드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청년들과 이 부분을 함께 읽었더니 매우 감동을 받는다. 아무런 꿈이 없던 사람이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좋은 동반자를 만나게 되고, 마침내 꿈도 이루는 과정이 좋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시골의 작은 빵집이고, 몸에 해로운 빵이 아니라 자연농으로 얻어진 곡물에 천연 발효를 거쳐 만드는 빵이니 더욱 마음에 다가오는 이야기가 되었던 모양이다.

 

"엄청나게 넓은 밭 가득 채소를 재배 중이었다. 푸른 푸성귀와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검은 흙이 아름다웠다. 풀과 흙이 어우러진 냄새는 기분 좋게 콧속으로 파고들었고, 채소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 세사에 이런 데가 다 있었구나.' 가슴속에 쌓이고 쌓였던 열등감을 깨끗이 날려주는 상쾌한 바람이 들판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166쪽)

 

이타루는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동네의 여러 빵집들에서 일을 했다. 식사시간도 따로 없이 하루 열 다섯 시간을 일했는데도 급여는 적었고 기술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즈음에 이타루는 학자인 아버지로부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읽고 있었다. 놀랍게도 마르크스가 묘사한 19세기 영국의 빵집도 좀 더 잔혹할 뿐 현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좋은 제도 아래에 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잔혹한 상황을 걷어내는 빵집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풍요로움, 자유로움을 발전시키고, 가혹한 노동착취로 휴식과 여유를 모르는 상황을 개선해 나간다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희한한 빵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휴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는 주 4일을 영업하고 수요일은 재료를 준비한다. 직원들은 주 5일 근무제(월, 화 휴무)로 일한다. 그리고 연중 한 달은 장기휴가다. (중략) 경제가 발전해 생산력이 높아지면 하루 십 수 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사회와 생활이 굴러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라 몸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휴일이 많은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지금보다 빵을 더 잘 만들기 위해 빵을 안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224쪽)

 

교환가치를 갖는 돈과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으로서의 돈이 혼재되어 자본주의 경제를 부패시킨다는 생각 때문에 자본이라는 돈을 부패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이타루는 생각한다. 자본을 일정한 순환이 끝나고 난 뒤에 부패하게 해서 사멸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윤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투자된 돈의 무한순환을 멈추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방법도 간단하다. 좋은 원재료를 농부들이 원하는 가격에 사주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경영상태를 공개하고, 기술과 감성을 연마하게 하여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시킴으로써 충분한 임금을 지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 이윤을 늘리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을 벌지 않는다. 대기업이라면 실현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빵집 정도의 '소상인'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시간도둑'이라는 캐릭터로 유명한 [모모]를 쓴 판타지 작가 미하엘 엔데는 나에게 '부패하지 않는 돈'이라는 생각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중략) 돈은 '부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이윤을 낳고 금융을 매개로 하여 신용창조와 이자의 힘으로 점점 불어난다. 형태가 있는 물질은 언젠가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계의 거스르기 어려운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돈은 애초에 그 법칙에서 벗어나 한없이 몸집을 불리는 특수한 성질을 가진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사회에 다양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엔데는 생각했다." (82쪽)

 

이 책에서는 두 가지 점에서 공감이 가는 사유와 실천이 있다. 첫째는 노동자가 기술과 감성을 연마하여 자신의 기술력을 최대로 끌어 올림으로써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틀이 노동자가 이런 기술력의 연마가 어려운 단순 노동력화 하는 안타까움을 전하면서 해결책으로 소상인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상인 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을까. 있다고 믿는다. 생활의 달인을 봐도 그렇고 일본 기업들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이끌었던 제안제도를 보아도 모든 노동자들이 부품화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유한 킴벌리가 끊임없이 노동자를 교육시키고 사업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최고의 기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경영하는 자세와 노동하는 자세가 변화하면 얼마든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노동자들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경영자도 노동자이고 노동자도 경영자다. 서로가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서로를 믿고 지원해 준다면 자본주의 틀을 깨지 않고도 기술력은 확보될 수 있다고 본다.

 

두번째는 빼기다.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을 하는 농부들이 현대 농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노동자나 경영자들도 빼기를 통한 노동과 경영이 가능해지도록 노력한다면 자본주의의 틀을 깨지 않고도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22년 동안을 도시의 노동자로 살면서 최저임금 5천원으로 살아가는 많은 노동자들을 보면서 안스럽고 죄스러웠다. 그들과 비슷하게 분배되어야 할 임금이 나에게 지나치게 많이 분배되기 때문이었다. 월급봉투를 받아들면서도 하는 일도 없이 돈 참 많이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했다. 뭔가 불필요한 많은 것들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 불필요한 투입비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에게 불공정한 임금이나 생계비 이하의 임금이 지불되는 것이다. 각각의 사업장에서 무엇을 빼서 버리면 기업 이윤이 좀 더 개선되어 최저 임금을 상승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제일 첫 번째는 부패한 구조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비용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임금이나 이윤을 축적하려는 사람들의 임금을 축소하는 일일 것이다.

 

"순수 배양균(대량생산용 빵을 만들 수 있는 배양균, 무일 주)의 힘을 빌려 쓰지 않겠다는 생각과 통하는 원칙이 또 있다. 우리는 설탕, 버터, 우유, 계란을 배제한 '뺄셈' 방식으로 빵을 만든다. (중략) 쌀이나 밀은 단맛의 원천(전분)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 잠재능력을 끌어내는 길은 설탕을 '빼는' 방법이다. 이때 전분을 당화시키는 누룩균은 큰 역할을 한다." (144쪽)

 

얼마 전 누군가가 귀농을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일년에 현금 500만원씩 손해를 보고도 살 수 있으시면 귀농하셔도 좋다고 답했다. 그분은 그러면 안된다고 돌아서셨다. 사실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귀농을 해서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제일 먼저 돈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가 말이다. 이타루처럼 주제를 가지고 귀농을 해서 성공을 거둔다면 가장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음부터는 이렇게 이야기해야 겠다. 귀농을 하려면 첫째로 생명을 존중하는 철학이 바탕이 된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둘째로 경제 자립이 이루어질 때까지 일년에 현금 500만원 이상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면 귀농할 수 있다고. 이타루는 요코하마의 어느 빵집에서 그런 철학을 완성하고 시골의 빵집에 도전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것이다.

 

"(요코하마의 히가시카와)선생님은 '빵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고,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우리 몸이 된다. 그러니까 빵은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물질인 셈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빵을 만드는 자세부터 시작해 빵 굽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철저하게 주입시켜주셨다. 덕분에 나는 진짜 천연효모를 발생시키는 법, 밀가루를 선택하고 반죽하는 법, 레시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중략) 궁목수인 오가와 미쓰오 씨가 '장인은 월급쟁이가 아니니 생활이 삶이고 삶이 직업이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삶 그 자체가 직업이다." (223쪽)

 

제목을 보고 기대에 차서 읽은 것에 비하면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아주 멋진 해결책은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이타루가 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축소된 것과 과장된 것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경제생활을 유지하며 좋은 빵을 만드는 기술을 유지해 간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의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이 시골살이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는 것은 좋지만, 철학과 기술력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모두가 이타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골살이는 여유롭고 즐거운 반면에 매우 어렵다. 쉬운 인생은 없다.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 더숲(201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