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시원하구나_140703, 목

매일 아침이 늦으니 일찍 일어난 날이 특별하다. 오늘도 늦게 일어났지만 밤에 내린 비로 날이 시원해서 일하기 좋다. 장마에 대비해 논에 있는 펌프를 비닐로 덮어두기 위해 논으로 갔다. 겨우 3타임 그러니까 9시간 정도 일했는데도 논에는 풀이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낫질을 하기에 손이 너무 아파서 30여 미터 정리하지 않은 논둑을 제외하고는 깨끗하다. 우박 피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터 두 개를 잘 갈무리해 두고 깨끗한 논을 바라보며 즐기고 있는데, 키다리병에 걸린 모들이 제법 눈에 많이 띈다. 흑미가 제일 심하고 메벼와 찰벼 순이다. 농업대학에서 들은 바로는 이렇게 바이러스에 의해 창궐하는 병들은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해서 몇 년 동안 전체 농가를 휩쓸다가 스스로 사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키다리병이 문제가 되면서 다른 병충해의 피해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것도 그 말들을 뒷받침한다. 마치 유행병처럼 강한 병이 농지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키다리병이 특효약이 없어서 그런지 농약을 뿌리는 일도 없어져 버렸다. 특히 우리 동네처럼 경지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다랭이 논들은 더더욱 농약을 치지 않는다. 제초제만 뿌리지 않으면 좋겠는데, 농민들은 제초제가 냄새도 나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입씨름을 할 일도 아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밭으로 가서 어제 마치지 못했던 세 개의 이랑에 풀을 뽑고 부직포를 까는 작업을 계속했다. 날이 시원하니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하는데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관절이나 허리에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일어나서 먼 산을 바라보며 쉬었다. 날이 좋지 않으니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지난 번 우박이 내렸을 때 제비집이 피해를 당했는지 작년부터 보였던 제비 한 쌍이 더 이상 보이지를 않는다. 집 앞에서 멋진 비행을 선보이던 제비 부부가 사라져 벌이니 매우 마음이 허하다. 새끼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부부라도 무사하여 강남 갔다가 내년 봄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구멍난 비닐과 부직포를 뒤덮은 흙더니 그리고 무릎 높이까지 자란 풀들과 이제 막 새순을 내기 시작하는 작물들이 좁은 밭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맘때면 참깨와 고추가 보라색과 하얀색 꽃을 한참 피워내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카톡으로 도시에 사는 가족들에게 도움 요청을 하고 천천히 작업을 마무리해 갔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라 더욱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고, 가족들이 큰 힘은 되지 않더라도 마음의 위로와 격려는 될 것이다.


새끼 고양이 열 마리 중에서 두 마리는 죽었고 두 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여섯 마리는 거실 창밖에 어미들과 함께 모여 제법 장난을 치고 논다. 처음 보는 유리창에 자꾸 머리를 대보고 손을 대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정말 귀엽다. 그래서 만져주려고 하면 후다닥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버린다. 씩씩하게 잘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