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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우박, 대단한 장관_140610, 화

6월 초순 열흘은 참으로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청원에서 사다 넣은 우렁이 37kg이 활발하게 일을 해 주어 논의 상당부분에 풀이 거의 나지 않았다. 너무 풀이 없어서 어린 모를 먹어 버려 군데군데 논이 비어 있을 정도다. 모내기를 하고 5일째 되는 날에 기준량 보다 많은 우렁이를 넣었기 때문이다. 흑미논의 30%와 메벼논의 20% 정도에만 풀이 나 있어서 매일같이 조금씩 풀을 매면서 논일을 즐기고 있다. 이대로 가면 논일은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6월 항쟁의 날은 민주주의 승리의 날인데, 어찌된 일인지 하늘이 진노하였다. 일산에는 용오름으로 비닐하우스 21동이 날아가고, 음성에는 10분 이상 내린 크기 1~3cm의 우박으로 농작물이 초토화되었다. 꽃대가 올라온 옥수수, 고추, 참깨가 가장 두꺼운 줄기 부분만 남긴 채 잎사귀들은 우박에 완전히 찢겨져 바람에 날려갔다. 일부 지역의 차량들은 우박의 공격에 곰보가 되었다. 논의 물꼬에는 녹지 않은 우박들이 7cm의 두께로 쌓였다. 오후 6시에 시작된 우박과 바람과 비의 공격으로 인삼밭의 포장이 날아가서 큰 피해를 당한 농가도 있고, 복숭아와 매실 등도 수확을 눈 앞에 두고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무일농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밭 400평에 심어져 있던 고추, 마늘, 감자, 땅콩, 참깨, 고구마까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흑미논의 벼들은 얼음 아래 깔려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고, 벼잎들은 몇군데인지도 모르게 꺽여져서 물 위에 늘어졌다. 판단을 잘못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찬 얼음물을 빼야 한다는 생각에 물꼬를 터 놓았더니 얼음도 문제가 되었고, 뻘에 잎이 닿아서 더 피해가 커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11일 아침 물장화를 신고 흑미논에 덧쌓인 우박 얼음 덩어리를 걷어내었다. 메벼 논과 찰벼 논은 밤사이 얼음은 녹아 있었다. 흑미논과 메벼논 입구에는 길에서 쓸려 내려온 우박 덩어리까지 쌓이는 바람에 다 녹지 않았다. 세 시간 여 손을 녹여가며 우박 덩어리를 끌어내고 얼음 속에 묻혔던 모들을 일으켜 세우고 났더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지나 던 윗논 농부가 우렁이들이 일을 잘해서 논이 깨끗하다고 좋아하며 지나 다녔는데 이게 왠 날벼락이냐며 위로를 한다. 


어제 밤의 우박은 정말 장관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쏟아지는 우박은 처음 보았다. 관람료로 지불한 대가가 너무 크기는 했지만 한 여름에 거대한 얼음폭풍이 쏟아지는 자연의 힘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도 영광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재산 피해만 났을 뿐이지 다친 사람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11일이 삼성의 장날인데 이웃집에서 고추 모종을 사다 심으신다. 부리나케 수천을 모시고 장에 갔더니 다행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고추 모종이 남아 있었다.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한 번 고추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덮어 놓은 비닐은 우박 총탄에 의해 구멍이 송송 나 있지만 내일 쯤 날씨를 봐서 그대로 심기로 했다.


오후에는 꿀병들을 정리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택배로 보내고 왔다. 시원한 향악단에서 장구도 두드리고 쇠도 치고 났더니 기분은 상쾌하다. 지난 두 달 동안에 배워야 할 모든 장구 가락은 다 배웠다. 이제 몸에 익히고 외워서 눈 감고도 칠 수 있게 숙달하는 과정만 남아 있다. 연습으로 몸에 쌓이는 것들은 어디에 빼앗기지 않는 것이니 부지런히 갈무리해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