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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벌써 7월이구나_140702, 수

농사일기를 충실하게 기록하려 했으나 조금만 다른 일에 집중하게 되면 일기를 쓸 여유가 없어진다. 향악단에서 장구와 북과 꽹가리를 동시에 배우고, 각각 가락을 외워야 하니 잠시도 연습을 쉴 수가 없다. 게다가 장구에서는 '기닥'이 안되고, 쇠에서는 '지갠'이나 '그랑'이 잘 되지 않아서 연습을 하다 보니 책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다. 써 두었던 농사일기에 들어갈 사진도 편집하고 배열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더욱 없다. 열심히 해서 파워 블로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관심사만 많은 ADHD라 집중하지 못한다. 겨울이 오면 시간이 좀 나겠지.


웃기게도 영화 볼 시간은 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영화 '역린'을 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잤더니 새벽 일을 못했다. 다행이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덥지 않았다. 논 앞에서 오리 한 마리가 푸드득 거린다. 마치 다리를 다쳐 날지 못하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논으로 달려가 숨는다. 조금 있다가 다시 논둑으로 올라와 힘겹게 나는 연습을 몇 번이나 반복 하면서 내 주의를 끈다. 논옆 배수로에 새끼 오리 세 마리가 삐약거리며 숨을 곳을 찾는 동안 어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대한 생물체를 향해 제 몸을 던져 유혹하는 것이다. 동물의 모성이란 위대하다.


8시 반에 논에 도착해서 어제 작업하던 메벼 논의 풀들을 제거하고, 흑미논과 찰벼논의 풀도 같이 제거하였다. 지난 번 우박으로 많은 우렁이들이 폐사했는데도 워낙 많은 개체를 집어넣어서 그런지 아직도 풀이 자라지 않는다. 논에 올 때마다 정말 뿌듯하다. 매년 이렇게 우렁이들이 도와준다면 논농사가 한층 더 즐거울 것이다. 우박으로 피해를 입었던 모들은 완전히 되살아나서 다른 피해가 없다면 평년작의 절반 이상은 충분히 거둘 수 있겠다.


논일을 마무리하고 밭으로 갔다. 역시 지난 번 우박의 피해로 비닐은 모두 구멍이 나고 쓸려 온 흙에 묻혀버린 부직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해서 엄청나게 많은 풀이 돋아나 있었다. 부직포에 쌓인 흙을 털어내고 풀을 뽑아내고 다시 깔아주어야 하는데 일이 굉장히 더디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 더 손을 보아야 밭의 풀을 잡을 수 있겠다. 날이 너무 가물어서 고구마는 절반 이상이 타 죽었다. 작년 보다도 훨씬 상태가 나쁘다. 2년 연속 고구마는 흉작이다. 고구마가 죽은 자리에는 들깨를 다시 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풀만 기르게 될 것이다. 날은 시원했지만 습도가 높으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좀 열심히 일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호흡이 어려워진다. 천천히 쉬엄쉬엄 한다.


일하는 내내 무엇을 쓸까를 고민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바라보는 자연은 언제나 좋은 글감을 준다. 모든 것이 힘들고, 새롭고, 신기하다. 조용한 듯 변화무쌍하며, 거친 듯 아름답고, 싸우면서도 조화롭다. 사람보다도 더욱 욕심 사나우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빗소리가 제법 요란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