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의 긴 휴가를 끝내고 어제밤 무일농원으로 복귀하면서 마음 속은 벌써 불안에 떨고 있다. 과연 15km가 넘는 곳에서 캐빈(운전석을 감싸주는 유리방)도 없는 트랙터를 안전하게 끌고 올 수 있을까. 작업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두 번이나 엎어진 경운기 때문에 온몸의 겁먹는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21번 국도 새로난 큰 길로 가기로 했다. 아직 한 번도 트랙터가 이 길을 달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승용차와 트럭들은 시속 100km로 쌩쌩 달린다. 트랙터 처음 빌리는 것이니까 작동 설명을 해달라고 했더니 자세하게 안내를 해준다. 그런데, 결국은 엑세레이터 기능에 대해서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지난번 굴삭기 때도 이 기능을 잘 활용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농원으로 끌고 오는 동안에 오른발이 뻐근하도록 엑셀을 밟고 와야 했다. 원하는 회전수에 맞춰놓고 왔으면 훨씬 운전이 편했을텐데.
게다가 긴팔이기는 하지만 달랑 셔츠 한 장 걸치고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15km를 달렸더니 두려움과 서러움이 동시에 일어난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야 웃으며 가자. 지금까지 잘하고 있지 않느냐. 걱정했던 21번 국도도 차들이 많지 않아서 사고 없이 잘 지나왔잖아. 준비가 약간 부족했을 뿐이지 큰 문제는 없었던 것이야.
다시 옷을 더 갖춰입고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다행이 동네 미스터 김이 작업감독을 나와주었다. 정농께서 아무래도 불안하셨던지 특별히 부탁하셔서 내려오셨다고 한다. 모든 기계를 수리와 운전이 가능한 재야의 엔지니어 고수다. 마음이 한결 놓였으나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미스터 김의 설명과 시범, 시범을 빙자한 위험한 부분의 대신 작업 등등이 없었다면 도저히 작업은 불가능했다. 아침 9시 반부터 시작해서 해가 지는 7시 반까지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트랙터와 씨름했다. 로터리도 치고 논의 수평작업도 함께 했다. 어느 한 가지 제대로 작업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미스터 김의 시범으로 잘 다듬어 놓은 곳도 무일이 들어갔다 오기만 하면 울퉁불퉁 말이 아니다. 그래도 조심조심 논이 보일 때까지 열심히 작업을 했다.
정농께서 그만하면 잘했다고 하신다. 다른 사람에게 맡겼으면 30만원도 더 들었을 일을 우리가 15만원 정도에 해냈고, 품질도 처음하는 작업치고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이 행여 기가 죽을까봐 격려해 주시는 것이다. 덜덜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저녁을 먹었다. 그래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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