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죽을 고비를 넘기다_140428~29, 화

5월 연휴에 그리미와 함께 제주 걷기 여행을 떠나기 위해 주초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비가 오는데도 일요일 밤에 출발하여 무일농원에 도착했다. 처남이 사서 보내 준 와이퍼가 유리창을 시원하게 닦아주니 어둡고 비가 내리는데도 시야는 훤했다. 고마운 마음에 조카딸의 통장에 용돈을 보내 주었다. 사랑은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좋다.


비가 계속 내려서 월요일은 하루 종일 장구를 쳤다. 채편을 쥔 손이 부르트는 느낌이다. 그래도 원하는 느낌의 가락이 나오지를 않는다. 스무 가지도 넘는 가락들을 한 번에 익히려다 보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진 것을 보면 꾸준히 연습한 보람이 있다. 장구 실력은 늘고 있지만 대금은 다시 원래 상탤로 돌아가 버렸다. 학교에서 대금연주를 듣고 온 아들이 평하기를 무일의 대금 소리는 숨소리가 너무 크고 악기 소리는 작다. 전문연주자들은 악기소리만 들린다는 것이었다. 마이크라는 것의 조화일 수도 있을텐데. 어쨌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는 상황은 맞다. 매일 꾸준히 시간을 내어 연습을 하지 못하니 당연한 결과이다. 초조해 하지 말고 다시 여유를 찾아서 연습에 들어가자. 음악은 운동이다.


향악단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신나는 가락으로 신명을 돋우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단장님이 쇠의 상수가락을 연주해 주며 가락을 익히거너 굿거리 장단의 암기상태와 연주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연습을 마무리했다. 살아있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다.


죽음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다. 화요일 아침에 날이 제법 개이고 일이 할 만 하다고 판단해서 그동안 정비하고 준비해 둔 경운기를 끌고 논으로 향했다. 긴장이 되었지만 생각 보다 잘 굴러가 주는 경운기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어제밤에 일을 논의 하면서 트랙터는 큰 기계라 논둑 가장자리를 제대로 작업해 주지 못할테니 작은 경운기로 가장자리 작업을 해 두자고 정리했었다. 그것이 커다란 판단 착오였다.


철바퀴는 매우 단순한 구조였지만 뒤에 달린 로터리 기계와 연동되니 물에 흠뻑 젖어있는 논에서는 매우 위력을 발휘한다. 로터리기계를 너무 깊게만 운용하지 않으면 앞으로 죽죽 잘 나간다. 급한 회전을 포함해서 좁은 공간에서의 회전도 부드럽게 잘 되고, 흙도 평탄하게 잘 골라진다. 다만, 논 전체의 수평을 잡기 위해서 높은 곳의 흙을 끌어다가 낮은 곳에 메워야 하는데, 흙을 끌고 갈 도구가 없어서 그런 작업은 불가능하다. 넓은 곳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 논둑 옆을 여유있게 걸으며 조심스럽게 작업을 해 보았더니 그런데도 안전하게 작업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 보자.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평탄한 곳에서 로터리를 끄고 후진 작업을 해 보았다. 후진 기어가 들어간 순간 조종간이 하늘로 높이 들려지면서 기계를 정지시킬 수 없었다. 논에 발이 10cm 정도 빠지는데다가 경운기의 앞머리도 그 이상 흙속으로 빠져 들어가니 조종간의 높이가 30cm는 올라가 버린다. 게다가 논에서는 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어서 경운기의 속도보다도 느려진다. 역시 후진은 위험하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논둑에 의지해서 간신히 세울 수 있었다. 


본 작업에 들어갔다. 논둑 옆을 돌면서 작업 높이도 맞춰 보고 작업 내용도 점검하면서 큰 논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도 원활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작업하기 어려운 곳은 우회해 갔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났더니 자신감도 붙고 일도 재미있었다. 뒤를 따라 걷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번째 바퀴도 조심해서 돌았다. 중간 쯤 돌았는데, 갑자기 논둑 옆에 작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잡초들이 눈에 거슬렸다. 다시 작업해야겠다. 순식간에 그 생각이 들면서 두 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전을 고려해서 로터리를 정지시키고 바로 후진기어를 넣었다. 그리고 클러치를 붙이지 힘차게 엔진이 돌며서 조종간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논둑으로 올라가 클러치를 잡으려는 순간 경운기가 논둑으로 올라오면서 나를 밀어붙인다. 조종 불능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 잡을 수가 없구나. 어떻게 하지. 그 순간 이미 경운기는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경운기를 잡아서 쓰러지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조종간을 놓친 무일의 힘은 10마력의 디젤기관과 1톤 가까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경운기는 무일을 덮칠 듯이 쓰러지면 논바닥에 처박혔다. 푸득푸득 힘차게 돌아가던 엔진이 멎으면서 검은 기름이 논물 위로 퍼진다. 피는 아니다. 경운기의 머리나 로터리 쪽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잡지 못한 조종간과 씨름을 했던 것이 그나마 사고를 피하게 했다. 만일 저 기계 밑에 깔렸다면 꼼짝없이 기계에 눌려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죽음을 피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친 곳이 없으니 이제 경운기와 논이 걱정이 되었다. 빨리 끌어내 않으며 기계에 물과 흙이 차서 수리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이장댁으로 달려가 포크레인 지원을 요청하고 마음이를 끌고 논으로 달려왔다. 정농께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논둑에 허망하게 앉아 계셨다. 트럭이 도착하자 다시 힘을 내셔서 일을 하신다. 쇠줄을 꺼내 경운기 몸체에 연결하고 트럭을 천천히 움직여서 논에서 논둑으로 건져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시동만 걸린다면 오늘의 사고는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겠는가.


외관을 살펴보니 부셔지거나 망가지거나 진흙에 파묻힌 것이 없어서 시동이 걸릴 수 있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들을 돌려보니 제법 소리도 정상적으로 보인다. 다만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몇 번 더 시동을 걸어 보았으나 힘만 빠질 뿐 엔진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 사이에 위 공장으로 가는 차를 위해서 마음이를 비켜주어야 했고, 통나무도 가져다가 경운기의 머리에 받혀 흙속에 빠지지 않게도 작업해 두어야 했다. 모든 일이 힘들었다. 긴장한 몸과 마음에서 힘이 쭉쭉 빠져 나간다. 그 때 마침 포크레인이 온다.


이장이 와서 기계를 움직여 보라 했지만 되지 않았다. 굴삭기에 쇠줄을 걸고 경운기를 들어 올렸다. 도로에 올려진 경운기를 다시 한 번 시동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농로는 막을 수 없으니 낚시터 앞의 공터까지 들고 가기로 했다. 물로 좀 더 진흙을 씻어내고 기계를 살펴 보았다.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에어도 빼 보았다. 역시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동은 여전히 걸리지 않는다. 지켜보던 정농께서 공기정화기를 분리해 보셨다. 세상에나. 진흙이 한 가득 들어있었다. 논으로 쓰러지면서 외형은 손상이 없었는데, 공기가 흡입되는 공간 사이로 진흙이 잔뜩 빨려 들어간 것이다. 최하 30만원이겠구나.


우리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장은 제 할 일만 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경운기 옆으로 온다. 마음이 위에 경운기를 올려놓았다. 작아 보였던 경운기가 화물칸을 넘칠 듯이 다 채운다. 그런 거대한 쇠덩이를 사람의 힘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조종간을 붙들고 있는 정상 상태에서만 기계는 나의 것이다. 조종간을 놓쳤으면 도망가야 한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지나가던 송사장이 사건의 정황을 듣더니 한 마디 한다. 거저 배우는 것은 없단다. 다치고 돈 들이고 부셔지고 수리해야 겨우 익숙해 진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 논밭 규모의 농사는 경운기와 관리기, 보행이앙기로 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작은 상처가 나서 후시딘과 빨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만 다치고 돈 10만원 들여서 수리할 수 있을 만큼만 부셔진다면 다행이지만 그 이상의 부상과 손상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리 농촌에서 경운기가 사라져버린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고를 피할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서 일단 물로 세척을 할 곳들을 세척했다. 정농께서 공구를 챙기시더니 분해를 하자 하신다. 이십 여 년을 기관사로 일하셨고 디젤기관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지만 손에 기름때를 다시 묻히고 싶지 않으셔서 그동안 손을 대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한 번 해 보시겠다고 한다. 하다 안되면 돈을 들이기로 마음을 비우고 보조 작업을 했다. 힘든 나사 푸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전부 분해하고 났더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다. 일단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소주 한 잔으로 몸을 위로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쉬는 동안 근육은 아프다고 한다. 그래도 나가야 한다. 2시 반부터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경유와 휘발유로 부품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엔진의 실린더 헤드까지 완전히 분해했다. 엔진의 피스톤 상태는 괜찮아 보여서 더 이상 분해는 하지 않고 다시 조립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점검을 하다가 이상이 있으면 다시 뜯어서 조립을 했다. 세 차례나 분해 조립을 반복했다. 거의 완벽하게 조립된 느낌이다. 시동은 내일 걸어 보기로 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온 몸이 아프다고 했다.


밥도 먹지 못하고 감곡면사무소의 웃음치료사 교육을 받으러 갔다. 한 시간을 웃고 왔더니 정신이 더욱 맑아진다. 웃음은 참 좋은 것이다. 농원에 돌아 왔더니 두 분도 편안하게 하루를 마감하고 계셨다. 다행이다.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