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힘들어서 장구도 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미와 아이들과 평화롭게 영상전화를 하고 났더니 더욱 긴장이 풀어졌는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7시도 되기 전에 아침을 먹고 경운기에게로 갔다. 정농께서 벌써 소음기까지 부착을 완료하셨다. 오일을 점검하고 공기를 뺀 다음에 시동 핸들을 잡았다. 첫 번째 시동은 당연히 실패였다. 연기가 없는 것을 보니 가망이 없어 보였다. 잠시 쉬었다가 두 번째로 핸들을 돌렸다. 충분한 회전을 주었는데도 역시 실패했다. 정농께서 살짝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아,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 손목은 가까스로 한줌에 가깝다. 얇은 종이장이나 넘기고 가벼운 키보드나 두드리면 살던 몸이다. 여행도 좋고 자전거도 좋아하지만 근육을 많이 만들어내는 운동이 아니며 타고 난 얇은 뼈도 더 이상 두꺼워지지 않는다. 그런 손으로 경운기의 시동 핸들을 돌리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두 번의 시동을 걸고 나면 가쁜 숨을 고르고 근육의 통증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길어야 3분이겠지만 쉬고 난 후에 세 번째로 시동핸들을 돌렸다. 이번에는 좀 더 오래 눈으로 연기를 확인할 때까지 힘차게 돌리다가 초크 밸브를 넣었다. 펑펑.
너무 감격스러워 정농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정말 이러다가 농기계 수리점도 내야 할 모양이다. 이제 다시 논으로 이동해서 어제 끝내지 못한 작업을 하면 된다. 이제 트럭에서 경운기를 내리면 된다. 정농께서 시동을 걸지말고 끌어내려 보자고 하신다. 발판을 깔고 끌어 보았다. 쉽지 않았다. 시동을 걸기로 했다. 높이는 불과 1미터다. 길이는 총 3미터인데 2미터만 내려와도 충분히 내릴 수 있다. 발판에 올라서는 경운기를 바라보면 잘 된다고 기뻐할 사이도 없었다. 경운기가 휙 왼쪽으로 돈다. 오른쪽 클러치를 잡았다. 잠시 안정이 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휙 돈다. 정농이 다급하게 외치신다. 변속기 끊어. 들리지 않는다. 오른쪽 클러치를 놓았다. 경운기가 힘차게 마음이에서 추락한다. 무일의 몸 앞으로 정농의 몸이 쓰러진다. 순간적으로 정농의 몸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시동꺼. 부리나케 시동을 껐다.
기적적으로 다시 몸을 구해낼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조종간 쪽에서만 놀았다. 그것이 몸을 구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발판이 철바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구멍이 나면서 왼쪽 바퀴가 걸려버리니 경운기가 회전을 시작한 것이었고, 회전 때문에 흔들린 발판이 미끄러지면서 경운기가 1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일하던 이장님과 양선생님을 모셔다가 함께 경운기를 세웠다. 손잡이가 많이 휘어졌다. 손잡이는 펼 수 있다고 한다. 완전히 진따이가 되어 버린 경운기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가슴이 미어진다. 이장은 시동을 걸어보라고 한다. 좀 더 진정을 시키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시동을 걸었다. 힘차게 돌렸다. 말이 힘차게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갔으니 힘은 빠져 있었다. 그래도 시동은 무난하게 걸렸다. 땅 위에 내려져 돌고 있는 경운기는 말 잘 듣는 착한 머슴 같았다. 금방이라도 논일을 해 줄 것 같은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정농께서는 이장댁 비료 뿌리는데 트럭 운전수로 지원을 해 주시러 가셨다. 이틀 동안의 이 무시무시한 싸움은 완전히 패배했으나 몸은 무사히 건져냈으며 수리기술을 습득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일이 된 것은 아니다. 다시 저 무시무시한 기계로 일을 해야 한다. 아니다. 일단 빌려 둔 트랙터로 작업을 하고 경운기는 잠시 세워 두기로 했다. 마음이와 공구들을 정리하고, 경운기에 짓밟인 어린 나무들도 다시 심어주고 나서 쇠파이프를 이용해 비뚤어져 버린 경운기의 조종간을 70프로 정도 바로 잡아 주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힘을 쓰면 90프로까지는 수정이 가능할 것 같았다. 작업하는데도 지장이 없겠지.
정신상태야 어떠한지 알 수 없으나 몸이 멀쩡하니 일을 정리하고 논 갈러 가고 싶은 마음도 욕심이라 눌러 앉히고 나서 농기계 임대센터에 접속해서 승용 이앙기를 8만원에 12일 날자로 예약했다. 수천께서는 반갑지 않다고 하신다. 차라리 돈 주고 맡기자고 하신다. 맞는 말씀이다. 송사장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다치고 돈들이고 부셔지고 수리해야 겨우 적응할 수 있다. 어느 조건에서 이 도전, 아니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마음은 이미 포기하고 있는 것일까. 멀쩡한 몸이 정신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번의 고비는 경고일까 성공으로 가는 계단일까. 농부가 될 수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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