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소설은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느낌이다.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쉬운 문투로 죽죽 써내려간다. 구조는 치밀하고 아름답다. 생각할 것도 많고 반성할 것도 많으며 배워야 할 지식도 많다. 수십년 간 발행된 신문의 핵심 내용들을 옮겨놓은 느낌이다. 매우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매우 쉬우면서도 무겁다. 노벨상을 열 개쯤 받는다해도 그 위대함을 다 칭송하지 못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정글만리를 대출하려고 계속 검색을 하는데도 언제나 대출중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어렵게 대출을 했다. 열심히 읽어야 한다.
중국, 풍요롭게 지저분한 철학의 나라다. 글자 한 자로 의미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소유한 나라가 과연 있을까. 아들들에게 중국어 교육을 시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다 보니 만들어진 결과이지만, 아름답고 심오한 지식 한 가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으니, 세상 사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를 잊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커피도 참 대단한 문화다. 쓰거나 달거나 혹은 이것저것을 섞어서 만드는 뜨겁거나 시원한 음료에 불과한 것이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것도 동양의 것도 남미의 것도 북미의 것도 아닌 것이 그 모든 것에서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는 묘한 특성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 조정래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은 어차피 동양식의 차 문화가 어떻게 흐지부지되어 보잘 것이 없었으니까 커피가 안하무인으로 깽판을 친다고 쳐. 근데 일본은 그게 아니었거든. (중략) 근데 말야. 몇 년 전부터 한 가지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젊은 사람들이 커다란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유행을 일으킨 거야. (중략) 4천 년이 넘는 중국차의 아성 앞에서 커피 제까짓 게 꼼짝 못할 줄 알았지. 헌데 중국차의 만리장성마저 커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거야." (67쪽)
삶과 죽음에 초탈한 철학을 갖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지만 이렇게 천한 마음으로 내뱉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중국이 문화민족이라는 것에 의문이 든다. 인도나 중국은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양이다. 그렇게 핍박받고 쉽게 죽임을 당했으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과 연민을 갖는 우리나라의 인식으로는 그들의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런타이둬(人太多)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하는 불만에 찬 부정적인 말이었다. (중략) 사람들이 런타이둬 할 때마다 '나 빼고 한 3억은 없어져야 돼' 하는 생각을 하는 셈이지." (127쪽)
사랑에 대한 묘사도 매우 강렬하고 직접적이다. 몇 개의 문구를 병렬함으로써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 속에는 또한 반드시 자연의 아름다움이 들어있다. 쉽게 이해하지 못할 세대의 도시인들에게도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하는 세대들에게 은근하면서 분명하게 가르친다.
"강하게 끼쳐오는 그녀의 체취를 들이켜며 부르르 떨었다. 톡 쏘는 꽃향기 같기도 하고, 풋풋한 풀향기 같기도 하고, 배릿한 갯내음 같기도 한 체취가 그의 남성을 뒤흔들며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뜨겁게 더듬어 내리고 있었다." (136쪽)
마오쩌뚱에 대한 중국인들의 믿음이 그를 신처럼 흠모하고 있다는 서술은 충격이다. 당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특수계층이기는 하지만 젊은 대학생들까지도 그렇다고 한다. 정말로 그것이 가능할까. 가장 넓은 중국 영토를 통일했고, 소작인들 모두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했으며, 신분제도를 철폐한 공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 중국의 발전의 원동력과 출발점이 모두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인정하고 있으니 더욱 놀랍다. 베이징대와 공산당원이라고 하는 지배계층의 논리가 아닐까.
김일성가를 신격화시키고 있는 북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과 같은 자본주의 기업과 시장을 100여 개 정도만 만들어 놓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겠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넓게 퍼지면 역사의식도 종교관도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했던 모양이다.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을 신격화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인도, 중국, 북한,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 등등. 통일의 길이 점점 더 험난해 질 모양이다.
적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 현실에서 제대로 활용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또 새로운 적이 생겼을 때, 이 말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시 추스려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기자의 질문) 중국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베이징대 학생의 답변)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입니다." (317쪽)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중에서 유의해야 할 것도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다.
"한국은 도자기점에서 쿵후를 하고 있다." (302쪽)
중국의 정글은 부패한 관리들과 부정한 기업인들의 합작품이라 할 것이다. 꽌시라는 말을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결국은 돈의 뒷거래일 뿐이다. 시진핑이 들어서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부패한 실력자인 보시라이를 단죄한 일인 것을 보면 중국 사회의 앞날은 부패의 청산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런 부정부패 속에서도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처럼 중국도 건실한 인재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졸부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농민공을 비롯한 인재들이 중국의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당당함과 뻔뻔함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것을 좋게 해석하면 높은 자부심과 자존감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수 있다면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중국의 뻔뻔함에 가까운 당당함을 받아들이자.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단속을 방기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선진국은 지적재산권을 가질 정도로 이미 누릴 것은 다 누렸다. 그러니 개발도상국가들이 지난 수 십 년 동안 부등가 교환으로 치른 희생을 기술을 복사하는 것으로 보상받는 것은 순리에 가깝다 할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것이 80년대 후반이었어. 그전 10여 년은 내부 이론투쟁과 기반구축 과정이었지. (중략) '죽의 장막'으로 불렸던 중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으니 어떻게 됐겠니. 전 세계 사람들이 그야말로 물밀듯이 중국으로 밀려들었지. (중략) 자금성을 비롯한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를 외국인한테 3배 비싸게 받는 거였어. (중략) 그 입장료가 언제부터 중국사람들과 똑같아졌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어쨌거나 3배씩 더 받은 그 돈이 개혁개방 초기의 GDP 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했을 거야." (332쪽)
중국은 중국의 방식으로 그들의 생활을 살아간다. 자랑스러운 일도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평가하더라도 그 평가를 중국 전체로 확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 여전히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이해하도록 하자. 똑같은 마음으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불합리한 일들도 중국에 비하면 월등히 발전된 모습인 것이니 감정이 격해지지 않도록 하자. 좋은 쪽으로 삶의 방향을 틀어가면 되는 것이다. 짧은 세상이니 웃으며 행복하게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도록 하자.
- 정글만리 1권 / 조정래 / 해냄 / 2013년 7월~10월(1판 4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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