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역시 그곳에 어떤 이유로 사람이 모여드는지를 몰랐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생 장 피드 포트라는 마을이 존재하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여행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언제나 우리 여행의 목적지 후보로 떠오른다. 은퇴후 첫번째 여행지. 더욱 새롭고 매우 흥미로우며, 쓰러질 정도로 아름다운 그 무엇이, 모르는 그곳에 숨어 있을 것이다. 태국과 앙코르왓 여행이 새롭고 흥미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해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예술가들의 삶은 먹고 마시고 놀고의 연속이다. 이런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진지한 여행도 접수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작업실에서 고통스런 창작의 과정을 밟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와 똑같이 여행을 즐기려 한다. 더욱 멋있게.
윈도우 페인팅. 참 좋다. 언제든 그려놓고 즐기다가 시들해지면 지워버리고 다시 작업할 수 있다. 기록은 사진으로 남겨두면 된다. 무일농원의 거대하고 심심한 거실 유리창을 윈도우 페인팅으로 장식해 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 것이다. 마음에 안들면 그냥 지워버리고. 이 독후감을 그럴싸하게 잘 쓰면 그들이 와서 작업을 해 줄 것도 같은데, 사서 읽어야 할 책을 빌려서 번개처럼 읽어 버리고 도서관에 반납해 버렸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안타깝지만 농부가 책을 읽는데까지 돈을 쓸 수는 없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다니는 산티아고의 순례길이 사람들에게 왜 감동을 주는 것일까. 사람, 경치, 명상. 뭐가 되었든 반드시 들어가는 것은 고생일 것이다. 모두들 편안한 삶을 추구하면서 고생스런 삶을 감동적으로 즐긴다. 도시에서 찌든 삶이 고생스러워 산티아고의 고생길에서 온갖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위로받는다. 고생을 고생으로 위로받는다.
술과 예술과 유머는 만국 공통의 즐거움이다. 이 책은 끊임없이 그것을 이야기한다. 그리미는 돈이 떨어져서 한국 사람을 찾아 돈을 부치고 받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모양이다. 문제와 해결과정이 똑같기 때문에 공감하기가 쉬워서일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을 초대하고 파티를 즐기는 젊은 친구들의 넓은 마음은 정말 부럽다. 물론 출판을 위한 기획과 자금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언제고 이 길을 걷게 된다면 우리도 한 번 해 봐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닭을 한 마리 사서 푸우 삶은 뒤, 국물로는 미역국을 끓인다. 그리고 닭고기는 건져내어 감자와 양파를 잔뜩 썰어놓고 닭도리탕을 만든다. 그리고 밥을 듬뿍해서 접시 위에 퍼 나르면 적어도 열 명은 먹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꼭 한 번 해 보자. 음식을 나눠먹어야 사랑이 이루어진다.
책의 이미지를 검색하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미술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바닥이 너무 좁다.”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조금만 알아보면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약간의 정보 정도 얻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연, 지연과 얽혀서 자신의 포지션을 수월하게 자리잡는 경우도 많다.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이들도 다수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이경욱은 한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미술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에 비하여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적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제도의 교육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호주, 일본, 스페인 등을 여행하면서 쌓은 감각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로우핸드스튜디오'의 공동 대표이자, '(주)문화강진'에서는 CD(Creative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다. (아트데이옥션(http://www.artday.co.kr), review 중에서) "
이 책을 읽고 나서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가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40일 이상을 걷기 위해서 백만원이 넘는 비행기 삯을 지불해야 하고, 저렴하지만 험한 숙소에서 거칠게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자전거를 타고서 열흘 만에 해낼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다. 효율적이지 않은가. 만남이 좀 부족하게 느껴지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언어의 한계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술 마시며 낄낄거리는 일이 매일 필요하지는 않다. 가끔이면 된다.
오카리나로 세계인이 알 수 있는 아름다운 곡들을 스무 곡 정도만 불 수 있다면 이 지루한 여행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릴 수 없다면 불자. 필요하다면 모자를 벗어서 잔돈을 구걸할 수도 있으리라.
- 어찌됐든 산티아고만 가자 / 이경욱, 권순호, 조명찬 / 청하(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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