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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타이인들은 우리와 다른가_극락타이생활기, 다카노 히데유키_131222,일

하필 시공사다. 135쪽이나 읽고 나서 정리를 시작하려는데 출판사가 들어온다. 빼돌린 재산이라고 추정되는 돈으로 만든 출판사.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불쌍도 하다. 그 곳에서 출판된 책을 읽는 나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본이 흔들리고 국격이 떨어지는 일이다. 이 나라와 한민족의 자존심은 어디로 가서 절을 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하는가.

농한기다 보니 출근하는 그리미와 아이들을 보내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고 있자니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를 묻는다.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과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사는 것,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는 것, 지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잘 비벼져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타이인 남성은 '남자의 의욕이나 생활력'과도 무관한 존재로, 상대를 찾아내면 안도하고 더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도 부인에게 매달려서 소위 '기둥서방' 같은 생활을 하며 노는 사람이 많다. (중략) 도대체 이런 삶의 어디가 나쁘다는 것인가. 반대라면, ...... 나쁘지 않다는 것인가." (135쪽)


군과 경찰은 무고한 시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들만의 군대가 된다. 군과 경찰이 시민들로부터 공권력으로 인정받는 것은 시민의 평화와 안녕을 지킬 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력을 차지한 집단은 오만해지고 그것을 태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왕에 의해 적절하게 견제되는지 알 수 없으나, 방송국까지 소유하며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태국 군대와 경찰은 꼴물견이다. 독립군과 광복군이 아니라 만주국과 일본국의 장교 출신들이 만든 군대를 가진 나라도 태국처럼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의병이나 독립군도 좋지만 시민들과 함께 하는 군대를 가져야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물론 전쟁이 없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오전 8시와 오후 6시에 모든 채널에서 방영되는 국가 장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화면에는 '왕실' '불교' '군'이라는 국가를 결집시키는 세 요소가 계속 투영된다. (중략) 그중에서도 군과 관련된 장면이 압도적으로 길다. (중략) '우리가 국민을 지켜주는 거야' 하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것 같다. 실제로 타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 후에도, 한 번도 군이 외국의 공격을 막아낸 역사가 없고, 오로지 국내 반란분자 색출에 힘을 쏟았다. 1972년, 1992년 민주화 운동의 무력진압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72쪽)


우리의 애국심은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에 의해서 끊임없이 주권을 빼앗기고 유린당하면서 시민들은 피폐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애국심이 절대가치가 되었다. 그래서 애국심은 고결한 마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월드컵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4년에 한 번씩이거나 종북몰이를 해서 정적을 살해할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비정신은 없고 부유하기만한 지배층들은 언제든 이 나라를 포기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은 이 나라를 뒤로 하고 떠날 능력이 없는 평범한 시민들만이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타이는 더욱 열악하다.


"(타이의 부자들은) 모두가 풍요로워지면 물가가 오르고, 인건비가 상승해 종웝원의 임금도 올라가고 민주적인 사고가 확산되면 임금투쟁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호소하게 된다. (중략) 그러니까 '타이는 더 발전하지 않아도 돼' (중략) 보통 사람은 자신의 생활만으로도 힘들어서 나라를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어요. (그렇다면 지식인은) 개인이 있고 나서 국가지. 출세욕이 있고 나서 애국심이고." (45쪽)


음, 너무 비슷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점은 말하지 않나. 작가인 일본인이 타이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양이다. 다 믿어서는 안되겠다. 


사회인이 되면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 중의 하나는 친구들과의 돈거래였다. 모두 세 번이었고 소중한 추억을 나누었던 친구들에게 안그래도 없는 돈을 느닷없이 받쳐야 했다. 첫번째는 캐드를 급하게 사야 한다는 친구에게 두 번째는 내일이면 입금이 되는 설계비가 안나와서 급하다는 친구에게 세번째는 알아서 갚아나갈테니 명의만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배신까지는 느끼지 않았을지 몰라도 관계는 끊어져 버렸다. 사과의 말 한마디도 듣지 못했고, 사과라도 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 이럴까. 마음 속에 찌꺼기가 남아 있는데 어떻게 털어내야 할까. 먼 훗날 그들이 변제할 능력이 생겨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자. 그런 면에서 태국인들은 훌륭하다.


"경제발전이 눈에 띄는 타이라 하더라도 이런 시골에서는 냉장고가 상당한 사치품이다. 대금은 할부로, 보증인은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 서게 되었다. 그 친구가 실종됐다. 냉장고와 함께. (중략) 주인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한테 자신이 얼마나 궁색한지를 또박또박 설명했다. (중략) 그는 갚아야 할 돈 얘기밖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친구의 배신'은 어떻게 된 것인가? (중략) 타이에서는 이 정도의 사건은 '신뢰관계의 파탄'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103쪽)


일본인들이 정리하는 틀은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내용은 역시 군국주의 교육의 산물처럼 인간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글쓴이도 군국주의 교육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일 조선인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차별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심하다. 게다가 정신적 외상이라고. 일본의 근대화 역사는 폭력에 살육, 강간에 살인, 강도에 도살, 문화말살에 참살이다. 책을 확 던져버리고 싶다. 참자, 내 책도 아닌데.


"국내의 소수민족이 미약해서 민족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중략) 결국 오랫동안 비슷한 사람들끼리 태평스럽게 살아와서 가치관이 다른 집단이나 개인과 대결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중략) 단지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의 정신적 외상이 깊어서 실제로 지금도 국내와 중국, 한국 사이에서 논의가 그치지 않는다."


처가집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단골 메뉴는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거의 이십여 년 동안에 집안 사람들이나 지인들을 거둬 먹인 이야기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아지트가 바로 처가집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온 집안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며 뒤치닥거리를 해야 했지만 그렇게 쌓은 덕이 오늘날의 편안한 노후로 되돌아 온 것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우리집도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지만 규모가 남다른 것만은 사실이었다. 태국인이었다면 아무렇게나 받아들였을 일이 우리에게는 매우 특별하고 힘든 일이었다.


"타이인의 집에 찾아가면 자기 집이 있으면서도 특별한 용건 없이 '혼자 있으면 쓸쓸하니까'라는 이유로 장기체류를 하는 사람이 왕왕 있다. (중략) 누가 진짜 가족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중략) 대체로 타이의 가옥 자체가 불특정 다수를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반적인 타이식 주택은 재미있다고 느껴질 만큼 방의 개수가 적다. 확보되어 있는 것은 부부와 아이의 침실 정도이고, 나머지는 오픈 스페이스다. (중략) 침실이 따로 없는 멤버는 낮이나 밤이나 졸리면 그곳에서 같이 잔다." (152쪽)


소나 말 조차 사라져 버린 이상한 나라들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풍경이 평화롭고 즐겁다. 냄새가 좀 심하게 나려나. 가능하다면 자동차와 공생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그저 꿈일 뿐이다.


"대학의 뒷문 앞으로 코끼리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찻길을 당당하게 걷고 있는 것이었다. 오토바이로 뒤따라갔더니 코끼리는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167쪽)


에필로그에 가서야 타이에도 코끼리는 꿈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1992년 이후에 치앙마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코끼리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국왕, 타이인이 존경하는 신격화되지 않은 존재다. 1992년 5월의 민주화 운동 당시 쿠데타로 집권한 수친다 크라프라윤에 맞서서 시민들이 피흘리는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국왕이 한마디 했다고 한다. "수친다여, 너는 언제 물러날 것인가" 그랬더니 국왕의 발밑에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와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앙이 동시에 엎드렸다고 한다. 쿠데타를 말 한마디로 잠재운 놀라운 권위의 소유자인 현 푸미폰 국왕은 클라리넷 연주자이며, 요트 선수이고, 사진 작가였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지위와 배경을 이용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점점 존경을 받게 되었고, 그를 닮지 않은 왕자로 인해 태국의 미래는 더욱 갑갑해진다. 그의 현명함과 유연함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하니 사람은 나름대로 다 행복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표지에 미소녀의 사진이 실려 있기에 누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영복 정도의 섹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잡지를 펼쳐보았더니.... 갑자기 피투성이 시체 사진이 나타나 놀랐다. 표지에 연예인, 첫 장에 시체는 타이의 대중잡지의 기본적인 구성 패턴의 하나인 것이다. 타이에 있다보면 이 정도에 놀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아주 일반적인 신문에도 컬러 시체 사진이 실려 있고, 시체만을 다룬 잡지도 있다. 텔레비전 뉴스에도 종종 나온다." (187쪽)


이런 방식은 멋있다. 잘 생각해 보고 유언으로 남겨야겠다. 뼛 조각 하나만 그리미와 함께 하고 훨훨 날려 보내라. 쉽지 않겠다. 그렇게 높고 시원하게 쏘아 올릴 수 있을까? 가벼운 내 영혼을 담았던 무거운 육신의 재를.


"대체로 타이인은 무덤을 만들지 않는다. (중략) 북부지방에서는 폭죽으로 하늘로 쏘아 오리는 호쾌하면서도 화려한 방법도 사용하는 모양이다." (199쪽)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저주를 받아야 마땅할 일인데도 이런 일을 버젓이 감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책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 상식이 있어야 한다.


"(치앙마이) 이 도시 최대의 수입원인 관광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시가 적당한 장소에 불법투기를 감행하게 된다. 그래서 몇 년 전 이야기지만 그 임시 쓰레기 투기장으로 선택된 곳 중에 공동묘지 '빠차'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타이인이 삐(영, 악령, 귀신)를 몹시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아무도 다가가려고 하지 않아서 쓰레기를 덤프트럭으로 매일 우르르 갖다 버려도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장소로 삐의 주무대인 빠차는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타이는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정부의 불법적인 선거 지원으로 당선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비판하면, 국회의원이라도 종북 빨갱이나 무례한 사람으로 지탄받지만, 타이에서는 국왕과 불교에 관한 농담이 금기라고 한다. 우리는 온 국민이 등산복을 입고 등산을 하는데, 태국인들은 땀을 흘리거나 살을 태우지 않으려고 하며, 외부 활동은 주로 폭포에 앉아 쉬는 것이고, 일상적인 오락은 백화점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 방콕의 파라다이스 엣 더 몰은 5층 높이의 시원한 폭포를 가진 백화점이다. 타이는 일본 보다 먼저 휴대전화가 보급될 정도로 휴대전화가 일반화되어 있으며 아무 곳에서나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친해지고, 술이 취하면 술값을 서로 계산하려고 하지만, 타이인은 처음 보는 사람과는 술을 마시지 않으며, 친한 사이에는 술을 마음껏 마시고 말 다툼도 쉽게 하며 술값도 내지 않고 달아 두라고 한단다. 저녁에 머리를 감아야 탈모 예방에 좋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타이인 교수나 회사원들은 아침에 수염을 깨끗이 깍고 비누나 샴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 냄새나고 더럽고 무섭다는 공격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는 일에 대해서는 놀라운 협상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음, 협상력이라. 가장 큰 차이는 이동일 것이다. 타이인들은 한 곳에 정착하려 하지 않으며, 언제나 편리하고 안락한 곳으로 떠난다. 돈을 벌면 잘 되는 가게도 접어 버리고 번 돈으로 쾌적한 생활을 하려고 한다.


"타이인은 이동이 심한 사람들이다. 아는 사람이나 친구가 어느틈엔가 자취를 감추고, 아무도 그 행방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략) 그래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 아는 사람이 축적되지 않는다. 축적은 커녕 1년 반 정도 공백을 두면 아는 사람이 줄어버린다." (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