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정신차리고_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_140110, 금

겨우 서른 여섯의 나이에 자신이 겪은 108개의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얼마나 험난한 인생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움으로 뭉쳐진 나라에서 태어나 대학교육까지 받은 여성 지식인에게 무슨 고생스런 일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백 년 동안 온갖 굴레 속에 갇혀있는 한반도에서, 오십이 넘도록 살아오고 있는 우리는 108개가 아니라 1,080개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말이 많아진다. 


여행기를 읽다 보면 눈에 띄게 인용되는 책이기에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도서관 책장에서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108개의 염주알 이외에 109번째의 염주알이 염주가 망가졌을 때를 대비한 비상용 단추라고 작가인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생각한다. 길버트는 염주가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고단한 인생 살이에도 그런 비상 장치가 있다면, 언제고 원하는 순간에 불안해진 인생을 정상상태로 되돌리는 장치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것은 비상용이 아니라 처음과 끝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없다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끝이 나야 하고, 끝이 나지 않는 기도를 원하지 않는다. 미로 속을 헤매이는데 지쳐서 언제나 해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모양이다. 


젊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짐작한 데로 사랑 이야기였다. 그래서 수많은 여행자, 특히 여성 여행자들에게는 꿈처럼 다가오는 환상적인 사랑이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다면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대략 한 달에서 두 달 사이에 둘 만의 시간을 되도록 많이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은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로 참아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넘길 수 있게 하는 것은 돈을 매개로 하는 비즈니스 관계이거나 사랑 또는 우정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발견, 남자와 똑같이 여자도 열 살이나 어린 이성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모성과 사랑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지오반니가 내게 키스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 하지만 그게 왜 끔찍한 소망인지 말해주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우선 지오반니는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데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이십대 남자들처럼 아직도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18쪽)

 

나는 내 소원을 들어주는 신(조상님들, 하느님, 예수님, 알라, 부처 등)을 믿는다. 그 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자주 소원을 들어주지 않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기도한다. 신에 대한 사랑이나 원망이 없이 기도를 통해 의지한다. 신은 소원들을 전부 이뤄주지는 못해도 잘 들어주기는 한다. 한 번도 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들을 사랑한다. 가장 가까운 아내를 비롯해서 여러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리미를 제외하고는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동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큰 불만은 없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잘 들어주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신이고 가족이고 친구다.

 

"당신은 어떤 신을 믿죠? 라고 물으면 나는 그냥 편하게 대답한다. 난 위대한 신을 믿어요." (29쪽)


 


확인은 해 봐야 하겠지만 이런 지식은 재미있다. 왜 사람은 친한 사람의 노예가 되고 싶어하는 것일까. 정말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 몸에서 나온 배설물도 기꺼이 처리해 줄 수 있다. 내 몸에서 비어져 나온 소화기관을 기꺼이 보고 밀어넣어 준 여인과 나는 함께 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문명을 이어받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깨어있는 민족이며,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벌써 인사말에서부터 남다르다.

 

"차오는 중세 베니스인들이 사용하던 친밀한 인사말인 'Sono il suo schiavo!'란 구절을 줄인 말이다. 뜻은 '나는 당신의 노예요!'" (43쪽)


100쪽 가까이 읽는 동안 답답했다. 모레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야 하는데도 이 책만은 다 읽고 가려고 여행 준비하는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읽고 있는데, 나오는 이야기라고는 이혼과 우울증과 외로움 등 우울한 이야기들 뿐이다. 이런 이야기는 100쪽 중에서 한 열 쪽 쯤 나오면 괜찮은데, 정신과 상담일지 같은 이야기를 귀한 지면에 이렇게 주욱 늘어놓는 것은 몹시 불만스럽고 싫다. 그래서 그녀가 감동받았다는 이탈리어를 함께 외우기로 했다. 훨씬 재미있다.


Dolce Vita(돌체 비타, 달콤한 인생) / bel far niente(벨 파 니엔테, 빈둥거림의 미덕). 


이태리어 사전 앱도 찾아서 깔고 찾아 보았다. sono = are / il = the / suo = your, his, its, hers / schiavo = slave) sono il suo schiavo -> ciao (챠오) = hello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어라는 것이 라틴어에 기원을 둔 현대 라틴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1320년대 플로렌스의 시인인 단테의 글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한다. 16세기에 몇몇 이탈리아 학자들이 단테의 시어를 중심으로 이태리 반도에서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과 글을 제정했고, 그것이 실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다. 지루한 단테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다시 한 번 관심을 기울여 봐야겠다.


"단테는 라틴어가 타락했으며, 엘리트들만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진지한 산문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학을 창녀로 전락시키는 꼴'이라고 했다. 귀족 교육이라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를 (버리고, 중략) 단테는 거리로 돌아가 그의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사용하는 진정한 플로렌스어를 수집해 그 언어로 이야기를 썼다." (74쪽)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다. 특히, 여자들의 세계는 더욱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마음은 한 번 가져볼 만한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다음 여행부터는 한 번 실제로 실천해 볼까 한다. 지난 세월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우리 둘 중 하나가 비행기를 타게 되면 항상 상대방에게 전화를 한다. '방정맞은 소리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 혹시 몰라서 .....' 그러면 상대방 역시 늘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알아 .....  혹시 모르니까." (139쪽)


그 지루한 책 바가바드 기타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쨋든 다시 읽어 보도록 하겠다. 실패한 돈 뀌호테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불완전하더라도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완벽한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흉내내며 사는 것보다 더 낫다"(149쪽)


불행하게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읽기를 포기한다. 234쪽에서 더 이상 읽지를 못하겠다. 이혼과 실연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한 여인의 고된 노력이 하나도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랑이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렸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치료를 받았으며, 여행을 통해 그것을 치유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 서술되고 있다. 정말 지루하다. 뒷부분에 기대한 무엇인가가 나올까. 영화를 보자 차라리.


최근 1년 사이에 읽기를 포기한 두 번째 책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거나 누군가 꼭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이 생겼을 때, 그 때 다시 읽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