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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중국 운남성 여행

한적한 돌숲 산책_쿤밍 석림 여행_110121, 金

6시 40분에 기상하도록 시계를 맞춰 두었더니 요란하게 벨이 울린다. 잠을 따뜻하게 푹 자고 났더니 머리는 개운해서 좋았는데, 걷느라 지친 몸은 아직 움직여지지 않는다. 십 여 분 뒤척이다가 아이들 방에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중이다. 수화기를 잘못 내려놓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방으로 가서 7시 15분까지 식사하러 오라고 전달했다. 7시 30분. 의화국제상무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다.


식사를 하는 동안 혹시나 차를 얻어탈 수 있을까 해서 단체로 오신 한국분들의 일정을 물어 보았더니 석림 쪽은 아니라고 한다. 음,,, 원래 처음 계획대로 움직여 보자. 체크아웃을 하고 가방을 맡긴 뒤에 택시를 잡았다. 동부버스터미널로 가는데, 30분도 안되어서 불과 28위안에 도착했다. 호텔에서는 40위안이라고 했는데. 돈을 써서 시간을 샀다.


도착하자마자 석림행 버스표 사는 곳을 물었다. 안되는 중국어 발음으로 '스린, 스린' 외쳐 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종이에 한자로 石林이라고 쓰고 보여주었더니 친절한 공안이 매표소와 탑승구까지 알려준다. 이런 공안은 처음이다. 고맙습니다. 우리 앞자리에는 프랑스에서 온 듯한 청년들이 커피와 햄버거를 아침으로 먹고 있는데, 그 냄새가 역겹다. 물론 중국 사람들도 예의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어린 사람들이 예의를 좀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1시간 30분 만에 석림 입구에 도착했으니 예상보다 1시간이나 빠르다. 아침을 40분이나 늦게 먹은 것에 비하면 2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쥬샹동굴 보다 훨씬 도로와 대중교통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엄청난 입장료 수입 때문일 것이다. 1년 유효한 입장권은 200위안, 1회 입장권은 175위안이란다. 140위안이라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었는데, 그 사이에 35위안이 오른 모양이다. 당국자들도 일회성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텐데도 1년 입장권을 내건 꼼수가 기가 차다. 홧김에 1년 입장권을 사서 여름에 다시 올까 하다가 참기로 했다. 스린(석림)이 기대한 것보다 별로라는 사람들도 있어서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렇더라도 평생 한 번은 보아야 할 곳이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계획과 다르거나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나쁘지만 안 살 수 없게 하는 중국인들의 뛰어난 상술이라고 해 두자.

 

입구에서는 소수민족 복장을 한 여자 가이드들이 전기차를 끌고 손님들을 부른다. 한국어 가이드가 있었으면 혹시 모르겠지만 전혀 고민없이 그냥 들어간다. 가이드가 없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버스가 석림 쪽으로 들어오면서 벌써 보이기 시작했던 돌무더기들이 정말 거대하게 무진장 쌓여있다. 완전히 무질서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몇몇 가이드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첫걸음을 떼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야말로 발길 닿는데로 돌 숲을 헤매기 시작했다. 가다 지치면 도란도란 둘러 앉아 과일과 음료수를 나눠마시고, 다리가 아프면 누워서 쉬기도 했다. 겨울 햇살이 따사로워 산책하기 그만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우면서도 거대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게다가 좁은 통로를 지날 때는 머리 위의 돌기둥들이 무너질 듯해서 두렵기도 하다. 두려움을 떨치려고 후다닥 뛰어서 지나가기도 했다. 관광객들과 떨어져서 석림의 거대한 숲속을 우리 식구들만의 안내와 격려, 지원을 받으며 걸었다.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며, 좁은 길들과 험한 언덕을 지나며 적막한 돌 숲을 한가로이 거닌다. 이 거대한 아름다움은 아무리 사진으로 남겨 놓아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장장 4시간여를 헤매고 다녔다. 이제는 출입구를 가르키는 화살표만 나와도 반갑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경관은 사라질 줄을 모른다. 정문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쿤밍으로 돌아가는 차를 기다리면서 한국으로 엽서를 한 장씩 썼다. 1장당 4.5위안이란다. 하드도 두 개 사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예상보다 비싼 입장료들 때문에 300위안을 더 찾고, 그래도 부족한 돈은 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120만원이면 정말 저렴하게 잘 운영된 여행이다. 항공료 240만원, 중국내 항공과 숙박 200만원, 체제비 120만원 총 560만원으로 우리 가족의 8박 9일 쿤밍 여행이 잘 마무리 되고 있다. 오늘이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만 잠에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동부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치기와 가로치기, 밀어내기를 해대고, 간신히 잡은 택시는 기사들이 승차거부를 하면서 가고자 하는 방향의 승객들만 골라서 태운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와 저녁 식사 장소로 가는 버스를 물어서 - 식당이 위치한 신문로를 한자로 써서 정류장에서 일보는 사람에게 물었다 - 22번 버스를 탔는데, 만원이다. 한 할머니가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면서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는데 그저 웃으면서 한국인이라고만 말한다. 답답하신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비닐 봉다리로 그리미의 목에 걸린 카메라를 동여매시더니 그렇게 하고 다니라고 하신다.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감동이다. 그 고마운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둬야 했는데, 카메라가 비닐 봉투 속에 안전하게 묶여 있으니, 그 감동만이 진하게 가슴에 남아 있다.

 

도저히 다리가 아파서 서서 버스를 탈 수가 없어서 중간에 내려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도 8위안 기본 요금 거리에 우리가 찾던 골탕집이 나타난다. 이곳 택시들은 1.5위안의 서비스료가 붙는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그동안 내딴에는 챙겨준다고 1위안씩 더 주고 내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텐데.

 

입구에서부터 말이 통하지 않는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검정테 안경을 쓴 영어를 조금하는 여종업원이 우리를 담당한다. 돼지고기 근육뼈탕을 시키고 한참을 기다리니 커다란 사기냄비에 하나 가득 돼지뼈들이 담겨져 나온다. 양배추와 쑥갓, 감자를 추가로 주문하고 - 주문하는 방법은 주변을 쓰윽 둘러보고 저거, 저거, 저거를 외치면 된다 - 우리 가족의 필수음식인 흰밥도 주문한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입맛에 맞는 음식이었다. 모두들 기분이 좋아진다. 160위안이니까 지금까지 먹은 식사 중에서 제일 고가의 음식이었다. 메인 메뉴를 제대로 먹지 못해 한 번도 남긴 일이 없는 흰밥을 남길 정도로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쇼핑을 까르푸에서 하기로 했다. 마침 식당 앞에서 영어를 겁나게 잘하는 멋쟁이 아가씨를 만나서 아주 잠깐이지만 즐거운 대화를 했다. 한국 사람이라니까 정말 반가워 한다. 까르푸는 미어 터진다. 춘절을 앞두고 선물용품으로 가득하다. 하다 못해 에스컬레이터의 옆공간에도 물건이 잔뜩 쌓여있다. 아이들에게 줄 쵸코렛 종합상자와 고량주 4병(1+1), 보이차, 장미꽃차, 레몬차 등을 사고 62달러를 결제했다. 참 저렴한 쇼핑이다.

 

호텔에서 짐을 찾는데, 없단다. 잠깐 혼란. 새벽에 맡긴 짐을 9시가 넘도록 찾으로 오지 않으니 창고에 보관한 모양이다. 서둘러서 다시 짐정리를 하고, 택시를 타러 나왔는데, 택시가 잡히지를 않는다. 아마도 귀가 시간이라서 너도 나도 택시를 잡는 모양이다. 이길로 저길로 한참을 왔다갔다 하다가 드디어 잡았다. 기분이 좋아서 팁을 3위안이나 주었다.

 

짐을 부치고 면세점에 들어섰는데 살 것이 없다. 결국 마일드 세븐 한 보루 사고 나니 남은 돈으로 음료수 한 잔을 사먹고 자선 모금함에 잔돈을 넣음으로써 준비한 모든 돈을 다 쓰게 되었다. 다시 국적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만세를 부른다.

 

우리나라가 깨끗하고 편리하고 말이 통하는 나라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