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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몸살이 날 듯 종횡무진 서두르다_131122, 금

대략 8가구에서 10가구가 먹을 김장을 담궈야 하니 배추 200포기는 준비해야 한다.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궁금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두 분께서 준비하셨다. 올해 처음으로 무일이 합세해서 셋이서 배추 절이기를 한다. 300포기 배추를 뽑아서 다듬어 이동하는데도 다섯 시간이 걸렸으니, 200포기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데도 그 이상의 시간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말복이 지나서 배추와 무를 심고, 배추에 무려 4번의 농약을 뿌려야 했고, 무를 뽑아서 이동하는 시간이 무일 없이 두 분이 하셔서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를 모르겠다. 오월 초에 고추 모종을 심어서 무려 두 번의 탄저병 농약을 뿌리고 간신히 내년까지 쓸 고추가루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점점 농약에 의존하는 작물들이 늘어나서 걱정이다. 어쩔 수 없다. 두 분이 계신 동안에는 두 분이 원하시는 데로 해드리고, 언젠가는 완전 무농약 무비료의 농사를 짓고야 말겠다. 지난 십년 동안 많은 실험을 해서 벼농사는 퇴비와 함께 최소 두 번의 비료는 뿌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셨고, 콩과 배추도 적어도 한 번은 농약을 쳐야지만 수확을 할 수 있다. 들깨나 참깨는 수확량은 적지만 비료와 농약의 도움없이 키워낼 수 있다. 땅콩은 까치로부터 보호할 그물망만 잘 치면 좋은 수확을 기대해도 좋다. 마늘도 퇴비를 충분하게 넣고 짚과 비닐을 이용한 보온만 잘 하면 1년 먹을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다. 감자도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오래 두고 먹을 수는 없지만 퇴비가 넉넉하면 약간의 비료만으로도 농약의 도움없이 충분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쥐눈이콩이나 돈부는 참 잘 자라주어서 1년 내내 맛있는 콩밥을 제공해 준다. 옥수수는 비료없이는 불가능하다.


거대한 통과 그룻들을 7, 8개 준비하고 미리 사 둔 천일염 소금까지 수도가에 위치시키고 나니 햇살이 등짝을 따스하게 비춰준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일손이 많이 가는 소금에 배추넣기를 시작했다. 정농께서 배추가르기를 하시는데 칼질 하시는 것이 힘겨워 보여서 작업을 바꿨다. 두 분이 소금 넣기를 하시고 배추 짜개기와 절여진 배추 통안에 옮기기 작업을 무일이 하기로 했다.


한 시간여를 해도 배추더미는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맑았던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덮이자 등줄기로 한기가 스윽 스쳐지나가면서 몸살기운이 몰려왔다. 제일 편안한 신발을 신으신 정농께서 따뜻한 커피를 타 오셨는데, 수천께서는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맹탕이라고 타박을 하신다. 귀가 어두우신 정농께서는 이런 소리를 듣지 못하시고, 마침 해가 등짝을 따뜻하게 비추니 커피도 맛있고 일도 재미있다고 하신다. 두 분이 일하시다가 셋이서 하게 되니 몹시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제발 정신 없으니 천천히 하라 하신다. 그리미를 퇴근시키기 위해 부천으로 가려면 늦어도 2시까지는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무일로서는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배추를 짜개다가 절인 배추를 옮기다가 소금도 뿌리고 배추도 옮기고 종횡무진 바쁘게 움직이니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허리와 허벅지가 뻣뻣해지면서 몸살기가 더욱 강해진다. 안돼. 김장이 끝날 때까지는 버텨야 해.


다행스럽게도 일은 1시 반 정도에 끝낼 수 있었다. 예상시간 보다 1시간은 빨리 끝낸 것이다. 장모님께 드릴 김장배추와 무까지 차에다 전부 실어 놓았으니 대단한 속도로 일을 해냈다. 막걸리와 소주를 나눠 마시며 배추절이기를 마무리하고 잠깐 눈을 붙인 후에 부천으로 출발. 그리미의 퇴근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었다. 그리고 몸살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