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백일 동안 풀을 뽑다_130925

모내기를 하고 3주 정도 지나서 논 김매기를 시작했는데, 

오늘까지 거의 백일 동안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작업을 해왔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지겨운 일이었다. 


오늘 드디어 큰 논의 풀매기 작업을 끝냈다. 

앞으로 20일 전후로 벼베기를 위한 준비작업을 하기 전까지 

큰 논은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지난 십년 동안 김매기를 해 왔지만 올해처럼 길게 해 본 적은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일을 하면서

농사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논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서 일을 줄여야겠다고 그리미와 의논하기도 했다.

온 가족을 불러 모아 적어도 두 번은 김매기를 함께 하는 방법도 고민했다.

더 나아가서 아예 제초제 뿌리는 관행논으로 전환할 음모까지도 꾸몄다.

화학농법을 이루어 낸 화학의 위대함을 찬양하면서.


백일 만에 일을 끝내놓고 나니,

묘하게도 노동의 고통이 바로 잊혀졌다.

백일동안 기도를 드리면 소원도 이루어지고,

백일동안 풀을 매면 먹을 것도 생기고 고통도 잊게 되는 모양이다.


농부로 정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덜 고생스럽게 해낼 방법도 떠오른다.

작은 논이나 큰 논 중 하나를 우렁이 농법으로 다시 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 모든 생각이 다시 한 번 해 봐야겠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생각이다.


정농의 끈기가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

정농께서는 혼자서 이 노동을 어떻게 감당해 내셨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작은 찰벼논의 피사리 작업을 한다.

이번 주 중으로 일을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두 분 모두 서울로 친구분들을 만나러 가신다.

즐거운 시간을 가지시기를  빈다.


내일은 외로운 농부다.

아무려면 어떤가, 농부만 될 수 있다면. 


샤워를 하고 마당가에서 붉게 흔들리는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