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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만나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구나_130930, 월

징검다리로 내리는 비 때문에 특별하게 일을 할 것이 없다.

물론 벌 작업장으로 쓰이는 컨테이너 지붕에 녹을 벗기고

칠하는 작업을 해도 되고,

닭과 오리들이 처분해 주었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통도 만들고,

현판 조각도 해야 하니 일거리는 널려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과 처자식과 함께 있는 것은 참 다르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면,

언제나 과거와 함께 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어 드려야 한다.

연세도 높으시니 새로운 생각을 교류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지난 세월을 잘 정리해 드리고 싶은데,

과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좋아하시지만

삶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과거 속에 사시면서도 여전히 먼 미래를 꿈꾸신다.

 

여전히 젊게 사시니 든든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처자식과 함께 있으면,

일단 현재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게 된다.

현재의 상황들을 함께 의논하면서 자연스럽게 미래도 이야기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도록 노력하게 되니

이야기도 일방적이지 않아서 편안하다.

수십년 전이 아니라 수 년 전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 것을 모의하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나면 우리도 과거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 사랑과 추억과 지식을 나누어야겠다.

 

오랜 만에 서울에서 벗들을 만났다.

 

쉽지 않은 생활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들 힘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만나자 마자 다들 얼굴 표정이 행복해지면서

술잔이 즐겁게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특별히 서로에게 해 준 것이 없더라도

의지하고 믿으며 살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다 보니

몸과 마음의 아픔들이 전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모여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지만

각자가 걸어가는 길이 많이 달라져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울려서 흥겨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좋은 세월이 흐를 것이다.

 

 

베란다의 난꽃이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있다.

작년에도 열심히 꽃대를 올렸었는데,

개미들이 달콤한 꿀을 빨아 먹으며 진액을 소모시켜서

단 하나의 꽃도 피우지를 못했다.

 

지난 여름 관리실에서 개미를 유인해서 몰살시키는 가루를 살짝 뿌려주고 갔더니

기승을 부리던 개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리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화학의 승리다. 놀라웠다.

 

인생도 그러한 모양이다.

몸과 마음의 진액을 스트레스로 소모시키게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 때, 좋은 만남으로 진액을 보충해야 향기로울 수 있다.